닥플 플러스
의사들은 왜 '닥터X'가 불편할까 "실패하지 않는다"는 판타지
최근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얻고 있는 SBS TV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이 복잡하다. 의사들의 권력 다툼과 병원 내부의 부조리를 그린 드라마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전공의 사직 사태 등 실제 의료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까지 다루면서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불편함과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의료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수준을 넘어 의사 집단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복잡한 의료 현안을 선악 구도로 단순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드라마의 부제인 하얀 마피아의 시대부터 자리하고 있다.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제목 자체가 이미 의사들을 마피아에 빗대 악의적인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도 전에 의사 집단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규정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그 틀에 맞춰 풀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극 중 의사가 돈으로 의사가 됐다는 식의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하는 장면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의사 출신 시장의 등장과 의사들의 대표단체 수장을 희화화하는 듯한 장면 역시 의료계의 불편한 반응을 불러왔다.
일부 의사들은 의료계를 향한 사회적 불신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가 의사 집단을 악마화하는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계적으로 의사들이 이처럼 지속적인 비난과 박해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우리나라 외에 또 있겠느냐는 격앙된 반응까지 올라왔다.
실제 현직 의사가 드라마의 의료 묘사를 문제 삼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현직 의사는 지난 10월 13일 닥터X에 대한 방송 심의를 요청했다. 해당 의사는 회진을 불필요한 잡무처럼 묘사하고 의료진을 무능한 악역으로 단순화하는 장면, 의료행위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외면하는 연출 등을 문제로 꼽았다. 극적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의료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의료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드라마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사태와 전공의 사직 등 최근 의료계를 뒤흔든 현실의 갈등을 직접 서사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정책 추진 과정과 의료현장의 혼란, 전공의들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특정 집단의 이기심이나 부도덕성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대사도 의료계에서는 논쟁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사일 수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마주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진료과별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마취과와 응급의학과, 외과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랜 시간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두고도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는 반응이다. 각자 수술과 응급환자 진료, 당직 업무에 쫓기는 진료과 의사들이 그렇게 한가롭게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판타지라는 지적이다.
김대중 아주의대 교수(내과)는 최근 SNS에 올린 닥터X에 바라는 다섯 가지-한 내과 교수의 시청 메모라는 글에서 한국판 드라마가 일본 원작과 다른 지점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일본 원작이 교수 자리를 둘러싼 의국의 권력 다툼을 만화처럼 과장한 작품이었다면, 한국판은 518과 의대 증원, 전공의 파업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을 병원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의사로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드라마를 지켜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불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드라마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 역시 실패하지 않는다는 대사가 현실의 의료행위와 혼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하지 않는 의사는 없으며, 수술은 확률과 불확실성 속에서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주인공의 대사가 결과를 보증하는 선언이 아니라 끝까지 준비하고 도망치지 않겠다는 각오라는 점을 드라마가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통쾌한 대사 하나가 현실의 진료실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어려운 수술을 마친 뒤 보상을 받고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과 달리, 현실의 대학병원 의사들은 중증응급환자를 돌보느라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당직과 수련을 이어간다고 짚었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압수수색과 의료소송이라면, 의료현장을 떠나는 선택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결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진이 떠난 빈자리의 대가는 결국 환자가 치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인력의 양성과 보상 문제도 언급했다.
실력 있는 의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교수와 배우는 전공의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돼야 탄생한다. 하지만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수입은 적고 위험은 크며 존중은 줄어드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사명감 있는 의료진이 먼저 소진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의료현장에 남을 이유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공의 사직 사태를 다룰 때도 양쪽의 얼굴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비판받는 전공의 블랙리스트 문제를 숨길 필요는 없지만, 전공의들이 왜 수련을 포기하는 선택에 이르렀는지,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수련환경에 대한 절박함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악역 의사보다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돈을 밝히는 병원장 같은 인물을 악당으로 설정하는 것은 만화적 장치일 수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수가와 소송 위험, 인력 공백, 낮은 보수 등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의사가 먼저 의료현장을 떠나도록 설계된 시스템에 메스를 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의료계 역시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드라마를 향한 비판 성명보다 의료현장에서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드라마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극적 재미를 위해 인물을 과장하고 갈등을 부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현장의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면 그 이면에 놓인 구조와 맥락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의료계의 비판이 단순히 의사 집단을 긍정적으로 묘사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사의 권력과 부조리를 비판할 수 있지만, 의료현장의 불확실성과 책임, 의료진이 처한 구조적 어려움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는 호소다.
높은 시청률과 대중적 관심을 얻은 닥터X가 앞으로도 의료계의 불편한 목소리를 단순한 집단적 반발로 치부할지, 아니면 의료현장의 현실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을지 남은 회차 전개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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