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자살예방, 법 개정 넘어 현장으로…고위험군 연계·예산 확충 과제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더라도 실제 치료와 지역사회 지원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등 일선 의료기관이 자살 위험 환자를 발견해도 경찰소방 외에 즉각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적인 만큼, 의료기관과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하는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와 함께 자살예방 정책이 법률과 계획 마련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정부의 재정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방자치단체 안에 자살예방 전담조직 설치와 인력 확충은 물론 범부처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살예방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여야 의원들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생명가족윤리특별위원회와 4일 오전 자살예방법 개정 및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국민의힘 김도읍조배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소병훈김윤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심포지엄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자살 고위험군의 치료 연계와 사후관리 체계, 자살예방 정책의 재정적 기반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조근호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의료기관이 자살 위험 환자를 직접 마주하지만, 의료기관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작은 의원 규모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환자가 죽겠다고 하면 경찰이나 소방과 연계할 수밖에 없고, 이후 모니터링 과정에서도 의료기관이나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연계망을 좀 더 강화해 주는 것, 실제 자살 사고를 겪은 당사자나 가족에게 다양한 지원이 이뤄져 정서적인 측면이 나아지는 것이 현장에서 바라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의료기관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만큼 의료기관과 지역사회가 역할을 나눠 고위험군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조 회장은 특히 자살 위험 환자가 의료기관의 치료 권유를 거부하거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청소년 환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호자가 자녀의 정신과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라도 보호자 동의를 받지 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화영 한국자살예방협회 연구교육센터장도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살에 이르는 과정에는 정신건강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 직장 문제, 가족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만큼 고위험군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신건강 상담을 권유해도 정작 본인은 자살 생각보다 돈을 어떻게 해결할지, 관계 문제를 어떻게 풀지 등을 더 심각하게 고민한다며 법률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까지 함께 도와줄 수 있는 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 전부터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단계에서 개입할 수 있도록 범부처 차원의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역사회 자살예방 사업을 담당하는 지자체의 역할도 강조했다. 지자체가 실질적인 예방 사업을 수행하려면 관련 조직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자살예방 사업을 담당하는 것은 지자체인 만큼 지자체에 대한 예산과 의무, 책임을 반영해야 한다며 자살예방 조직도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기획예산처 참여와 재정 투입 필요
전문가들은 자살예방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화영 센터장은 자살예방 정책의 법적 기반과 범부처 협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만들어지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어든 현상과 비교 설명했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90년대 교통사고 사망자는 1만 3000~4000명이었는데 당시 자살 사망자 숫자는 3000명 정도였다. 현재는 이 수치가 바뀌었다. 현재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예산은 1억 4000만원 수준인데 생명존주희망재단 예산은 300억~400억원 정도다.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가 1년에 600명 정도인데 예방을 위한 예산은 1억 3000만원 정도다.
그는 정책이 좋은데 현장에서 효과가 없는 것은 예산이 없는 것과 연결지을 수 있다라며 현재 예산으로 자살예방을 할 수 있는 수준은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자살 사망자 수를 더 줄이려면 엄청난 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획예산처가 꼭 들어가야 한다.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여러 부처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예산 편성 단계부터 자살예방에 대한 정부의 비전과 의지가 반영돼야 한다라며 기획예산처가 자살 예방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범부처 참여도 필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기획예산처라며 기획예산처가 자살예방에 대한 어떤 신념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회 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인 더불어민주당 김교흥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발의한 자살예방기금 설치 법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복권기금과 주세 등을 자살예방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복지부 자살 고위험군 연계 확대내년 예산 960억원
자살 예방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자살 고위험군 정보 연계와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자살예방 정책 범위를 빈곤채무고립 등 사회적 위기 요인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재우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한 제6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는 국가가 자살 시도자 등에 대한 정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지속해서 연계해야 한다는 방향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 연계 범위도 확대한다. 자살 시도자가 응급의료기관을 거쳐 치료받을 때도 해당 기관에서 확인된 정보가 자살예방센터로 전달되도록 하는 내용이다. 연계 이후 관리도 강화한다. 당사자가 서비스 제공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차례 거절로 관리를 끝내기보다는 안부를 묻고 관련 서비스를 지속해서 안내하는 방식으로 다시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정신의료기관의 역할도 확대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받는 환자에 대해 본인 동의가 없더라도 자살예방센터에 정보를 연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제6차 기본계획에 담았다. 의료기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지역 자살예방센터와 연계해 지원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서비스 이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이 환자 동의를 받아 자살예방센터로 연계하고 사례관리를 진행할 때 건강보험 수가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과제로 제시했다.
입시제도나 청소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등 사회 전반의 문제까지 자살예방 정책 영역에 직접 포함하는 데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 과장은 자살예방 정책의 범위라기보다는 범정부범사회적 정책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라며 각 부처가 개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생명을 살리는 정부의 국정 철학이 반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산은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과장에 따르면,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올해 약 700억원이었고, 2027년 정부 예산안 기준 약 960억원으로 증액했다. 약 25% 늘어난 규모다.
박 과장은 예산이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단일 사업 예산이 700억원 수준에서 960억원까지 늘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며 정책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 어느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군 관리와 사회적 위기 요인 지원을 중심으로 예산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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