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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의료 이원화 올바른 개혁의 전제조건

이재만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26.10.23 16:10
대한민국 의료는 70년 넘게 '의료 이원화'라는 구조 속에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어 왔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갈등 봉합을 명분으로 면허 체계의 통합이나 직역 간 업무 범위 확대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외형을 바꾸기에 앞서 반드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과연 우리의 이원적인 교육과 수련체계가 환자의 생명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국제 표준'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대한민국 의료는 70년 넘게 의료 이원화라는 구조 속에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어 왔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갈등 봉합을 명분으로 면허 체계의 통합이나 직역 간 업무 범위 확대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외형을 바꾸기에 앞서 반드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과연 우리의 이원적인 교육과 수련체계가 환자의 생명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국제 표준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① 총론-국제 표준 부합하는 전문가 주도 K-의학 통합
② 국제 기준 맞춘 의학교육수련체계 확립해야
③ 한방 ICD 분리 적용과 합리적 건강보험체계 구축
④ 불법비윤리적 의료행위 엄정한 법 집행 필요

의학은 인간의 가장 존엄한 가치인 생명을 지키고 고통을 덜어주는 학문이다. 좁은 의미에서는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예후를 살피고 예방과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임상과학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인체의 생리적병리학적 기전을 다루는 방대한 자연과학의 총체다.

현대의학은 생리학약리학생화학분자생물학기생충학미생물학병리학해부학유전학예방의학 등 폭넓은 기초과학의 성과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발전해 왔다. 약물요법과 정밀 수술, 첨단 의료기기 및 방사선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학제적 기술이 결집되어 있다. 34개 기간학회의 기초로 26개 전문과목을 중심으로 구축한 수련체계와 164개 세부융합 학회가 치열한 연구를 통해 축적한 학문적 성취를 발판으로 예방진단치료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증진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는 70년 넘게 의료 이원화라는 구조 속에서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겪어 왔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갈등 봉합을 명분으로 면허 체계의 통합이나 직역 간 업무 범위 확대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외형을 바꾸기에 앞서 반드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과연 우리의 이원적인 교육과 수련체계가 환자의 생명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국제 표준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양의학이라는 낡은 프레임 현대의학은 인류 보편의 과학
한의계는 종종 현대의학을 양의학이나 서양의학이라 부르며, 한의학과 대등한 서양의 지역의학인 양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

그러나 이는 의학의 현재적 성격과 과학적 발전사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표현이다. 현대의학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학을 서양공학이라 부르지 않듯, 보편타당한 검증에 기초한 현대의학을 출신 지역으로 명명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현대의학은 전통의학의 경험적 유산을 배척하지 않는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아스피린을,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팔각에서 타미플루를, 태평양 주목에서 항암제 탁솔(paclitaxel)을 발굴했듯 유효 성분을 끊임없이 수용해 왔다.

그러나 전통의학 고서에 적힌 전통약제를 그대로 치료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유효 성분을 추출하고 비임상 동물실험과 다단계 인체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작용 기전을 입증했을 때 비로소 현대의약품으로 승인한다. 개똥쑥을 달여 마시면 말라리아는 치료하지 못한 채 치명적인 간독성으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전통적 경험과 과학적 입증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명확한 선이 존재한다.

통계로 드러난 교육과 실습의 현격한 격차
한의계는 일부 현대의학 과목을 배운다는 이유로 의과 영역의 진료와 의료기기 사용을 주장한다. 그러나 두 대학의 교육과정과 수련 실태를 객관적인 수치로 들여다보면 그 간극은 메우기 어렵다.

한의과대학의 임상의학 강의 시수는 평균 52.7시수이나, 의과대학 내용과 실질적으로 일치하는 비중은 27.5%에 불과하다. 이를 환산한 실제 현대의학 강의는 약 14.5시수로, 의과대학 임상의학 강의(56.8시수)의 4분의 1(25.5%) 수준에 머문다. 교과서 내용 일치도 역시 평균 42.1%에 그친다. 정신과학은 79.1점인 반면 중증 응급을 다루는 신경외과학은 9.7점에 불과하다. 전신 질환과 특수 인구 대상 질환, 외과적 수술, 최신 의료기술에 관한 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

임상실습 환경의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의과대학의 임상실습이 평균 84.5시수인 데 반해 한의과대학은 64.5시수로 20시수가 적다. 병력 청취와 신체 진찰 등 기초 단계에서는 현대의학적 방식을 흉내 내지만, 치료 계획 수립이나 예방 교육은 한의학을 혼합한 형태를 보인다. 무엇보다 임상실습을 담당하는 한의사 교수진 가운데 현대의학을 정식 전공하고 수련받은 전문의는 단 한 명도 없다. 전임교원 1인당 담당 학생 수 역시 한의대가 의대보다 67배 많아 밀착 지도가 불가능하다.

의사면허는 인체의 복잡한 생리를 꿰뚫고 급박한 임상 현장에서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엄격한 수련을 전제로 한다. 단편적인 이론 수업 수강만으로 의학교육을 이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의과대학 명부 퇴출국제 사회가 내린 냉정한 평가
이러한 교육 체계의 한계는 국제 사회에서 이미 냉정한 심판을 받았다. 2007년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을 관장하는 외국의학졸업생교육위원회(ECFMG)는 한의대 졸업자의 응시 자격을 박탈했다. 2010년에는 국제의학교육 명부(IMED)와 아비센나 명부에서 국내 한의대가 제외했고, 2014년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가 통합 발간한 세계의과대학 명부(WDMS)에서도 한의대는 전면 배제했다.

2018년 정부는 한의학 세계화를 명분으로 WFME에 서한을 보내 한의사가 1차 의료를 담당하고 논문을 낸다는 점을 들어 등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WFME의 판단은 냉엄했다. 2019년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은 물론, 기존에 등재돼 있던 중국의 8개 중의대마저 명부에서 추가 퇴출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의학교육과정(BME)을 충족하지 못했고, 임상 전문과목 교육이 부족하며, 전통의학 교육은 현대의학 기반 교육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글로벌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KIMEE)의 인증기준(ASK2019)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는 동안, 한의학교육 인증기준(KAS2022)은 평가 부문기준 수교육 범위 등에서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국제적 통용성을 상실했다.

근거중심의학(EBM) 확립의료 개혁 유일한 전제
현대의학의 핵심 가치는 근거중심의학(EBM)에 있다. 이는 단순히 통계적 유의성이나 단편적인 약리 기전 하나로 치료 효과를 판단하지 않는다. 최선의 과학적 연구 근거와 임상 전문성, 환자의 가치를 종합해 의료 결정을 내리는 체계다.

역사적인 고서에 치료법과 약재의 효능이 적혀 있고, 권위자가 효과가 좋다고 주장하더라도, 정교하게 설계한 무작위대조시험(RCT)과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을 거치지 않으면 현대의학의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재만 의협 정책이사 ⓒ의협신문
이재만 의협 정책이사 ⓒ의협신문

통계적 결과가 나왔더라도 연구의 질과 효과의 정밀도, 부작용을 면밀히 따져 임상진료지침(CPG)에 반영한다. 특정 질환 A에 잘 듣는 약재가 있다고 해서 증상이 비슷한 질환 B에도 유효할 것이라고 자의적으로 유추해 처방할 수 없는 이유다.

의료기기와 신의료기술 또한 성능 검증과 다단계 임상시험을 거쳐 환자의 이익이 위해를 상회한다는 객관적 근거를 입증해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다.

이원적 의료제도의 개혁은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과학적인 검증을 받지 않고, 국제적으로 통용할수도 없는 교육체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허물고, 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는 것과 같다.

진정한 개혁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전통의학의 모든 행위를 과학의 잣대로 철저히 재검증하고, 진료 현장에 나서는 모든 예비 의료인이 WFME가 공인하는 국제 기준의 의학교육과 임상수련을 온전히 이수하도록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이원적 의료제도 개편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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