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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이제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둘 수 없다

안상준 대한비만연구의학회 부회장2026.10.20 12:19

비만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건강한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비만 인구는 늘어나고, 비만과 관련된 당뇨병과 고혈압, 심혈관질환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정말 개인의 의지 부족에 있는 것일까?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상태가 아니다. 지방의 과도한 축적은 신체의 대사 기능과 장기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다양한 만성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비만을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로만 바라보는 접근으로는 이러한 질병 부담을 해결하기 어렵다. 이제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국가 보건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비만, 체중계의 숫자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나라 성인 비만 유병률은 2013년 30.6%에서 2022년 38.4%로 증가했다. 특히 중증 비만의 증가는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만은 더 이상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보건의료 문제다. 비만을 평가하는 기준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질량지수(BMI)는 비만을 분류하고 인구집단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BMI 하나만으로 개인의 건강 위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같은 BMI라도 허리둘레와 체지방 분포, 대사 상태, 동반질환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발표된 란셋위원회(Lancet Commission)의 제안은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준다. 비만을 임상적 비만(clinical obesity)과 전임상 비만(preclinical obesity)으로 구분하고, 체중이나 BMI 자체를 넘어 지방 축적이 실제 건강과 신체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자는 것이다.이는 비만의 범위를 무조건 확대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질병으로 인한 손상을 겪는 사람과 향후 건강 위험이 높아 조기 개입이 필요한 사람을 구분해, 각자에게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비만 치료의 성공 역시 몇 킬로그램을 감량했는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추었는지,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을 개선했는지, 장기적으로 건강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초고령사회에서는 체중 감량 자체보다 근육량과 보행 능력을 보존하고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비만 정책의 출발점은 체중계의 숫자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이어야 한다.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비만, 왜 관리로 이어지지 않는가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검진을 비롯해 국민의 건강 위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 위험을 발견하는 것과 그 위험을 실제로 관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건강검진에서 비만이 확인되었다면 그다음 단계가 분명해야 한다. 개인의 건강 위험을 평가하고, 필요한 상담과 생활습관 개선을 지원하며,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치료 이후에도 상태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검진 결과를 통보하는 것만으로 국가의 역할이 끝난다면 조기 발견의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위험을 발견하고도 적절한 관리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검진은 문제를 확인하는 데 그칠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비만 진단 기준과 관리 기준을 합리적으로 정립하는 일도 중요하다. 국가 통계와 건강검진에서 사용되는 기준은 목적과 적용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임상적 근거에 기반해 위험도 평가와 치료 연계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검진과 진료, 치료와 사후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체계다.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비만이 지속적인 건강관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비만은 개인의 선택인 동시에 사회적 환경의 문제다

비만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기는 접근이 한계를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능력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층을 생각해 보자. 불규칙한 근무시간과 학업 부담, 경제적 어려움, 주거 환경,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건강한 식생활과 규칙적인 운동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저렴하고 간편한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동과 청소년, 취약계층도 마찬가지다. 비만을 예방하고 관리할 필요성을 알고 있더라도, 건강한 식품을 선택하기 어렵거나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노력이 실질적인 건강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건강한 식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일상에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며, 경제적사회적 여건 때문에 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비만 예방은 개인에게 생활습관 개선을 권고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지원이 함께 작동해야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치료의 기회를 넓히되,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최근 비만 치료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약물치료를 포함한 의학적 선택지가 확대되면서 비만은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접근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일부 치료는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질환 등 임상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개선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정책에도 중요한 과제를 제시한다. 비만 치료를 어디까지 공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제한된 의료재원을 어떤 환자에게 우선 배분할 것인가? 치료 효과를 체중 감량으로 평가할 것인가, 장기적인 질병 부담의 감소로 평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뿐 아니라 경제성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중증 비만이나 동반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했을 때 향후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관련 합병증 및 의료비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치료와 급여 기준을 일시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임상적 위험과 치료 필요성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과학적 근거와 경제성 평가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장성을 확대하는 접근이 합리적이다. 치료 기회의 확대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반드시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다. 근거에 기반해 적절한 환자를 선별하고 필요한 시점에 개입한다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면서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향도 모색할 수 있다.

비만 정책, 이제는 국가가 책임 있게 연결해야 한다

비만은 식생활과 신체활동, 의료서비스, 정신건강, 사회경제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다. 따라서 어느 한 기관이나 단일 사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의료기관, 학교와 직장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하나의 관리체계 안에서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예방부터 진단과 치료, 지속적인 관리까지 각 단계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정책의 성과를 단순히 비만 유병률이나 사업 참여 인원으로 평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의 발생, 신체 기능과 건강수명, 의료비 부담, 취약계층의 치료 접근성이 실제로 개선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얼마나 많은 사업을 시행했는지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초고령사회에서 건강수명은 개인의 삶의 질을 넘어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은 의료비와 돌봄 부담을 줄이는 중요한 과제다. 비만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책 의제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를 조기에 발견하고,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제공하며, 치료 이후의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구체적인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단 기준과 치료 지침, 재정 지원, 데이터 기반의 정책 평가, 부처 간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비만을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두는 사회에서는 건강관리의 책임과 결과가 모두 개인에게 집중된다. 반면 국가가 예방과 치료, 지속적인 관리를 연결하는 사회에서는 더 많은 국민이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비만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체중을 줄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는 비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서 나아가, 그 관점에 걸맞은 국가의 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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