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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지키라고만 하지 말고, 지킬 수 있게 하라

조원영 의협 보험이사2026.10.18 17:53
ⓒ의협신문
ⓒ의협신문

25년 전 진로를 정할 무렵, 부모님은 입을 모아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만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선친은 산부인과 교수로 대한산부인과학회장을 지냈다. 어머니는 소아과 교수로 일하다 개원해 30년을 진료하고 은퇴했다. 평생 그 현장을 지킨 두 사람이 자식에게는 같은 길을 권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두 분은 의학의 꽃이라는 내과를 권했다. 의약분업 파동이 막 지나간 무렵이었고, 나는 내과의사가 됐다.

그로부터 25년, 그 꽃마저 시들고 있다. 요즘 의대생들 사이에는 내과 공부를 잘해야 내과 의사를 안 한다는 말이 돈다. 병을 제대로 알수록 그 병을 평생 붙들고 사는 일에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도 보인다는 자조다. 진로를 고르는 수험생들도 교과서보다 뉴스를 먼저 읽고, 누구나 그렇듯 위험은 낮고 보상은 높은 쪽을 고른다. 필수의료를 지키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남은 사람이 감당할 위험과 부담은 줄지 않았다. 현장을 떠나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그곳에 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지난 9월 30일 경찰이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를 압수수색했다. 그곳에서 치료받던 아기가 숨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진료 과정과 책임은 밝혀져야 하고, 의료계도 그 규명을 피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수사의 방식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소아응급의학회에 따르면 당시 중증구역에서는 한 시간 넘게 경련이 멈추지 않는 생후 6개월 아기에게 약물을 투여하며 기관삽관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은 처방을 입력하던 의사에게 컴퓨터를 확인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우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경찰은 진료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환자가 눈앞에 없다고 해서 그 진료실의 컴퓨터와 의료진이 치료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자의무기록은 고치면 수정 이력이 남는다. 영장이 나온 뒤 집행까지 두 주 가까운 시간이 있었는데도 경찰은 임의제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경찰 책임자는 강제수사가 나중에 제기될 의혹을 해소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과 지금 치료받는 아이를 지키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소아과 의사는 아이를 진찰하면서 보호자의 불안과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와 태아를 함께 살피며 순간의 판단을 내린다. 이 설명과 결정, 위험 부담은 수가에 제대로 반영된 적이 없고, 그 빈자리는 사명감으로 메워져 왔다. 사명감에 기대는 구조에서는 경험 많은 의사부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게 된다.

이번 압수수색은 그 계산에 무게를 하나 더 얹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사건 뒤 소아청소년과 지원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의사들은 기억한다. 소아응급센터는 지금도 한두 명만 그만둬도 24시간 문을 열 수 없는 인력으로 버틴다. 그 우려는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압수수색 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전문의 한 명이 사직서를 냈고, 다른 소아응급센터에서도 전문의 두 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일부 병원이 센터 지정 반납까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의사에게 그 자리에 남으라고, 새로 들어오라고 강제할 방법은 없다. 2024년에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산부인과학회장을 지낸 사람이 자식에게 자기 과를 말리던 시절부터, 정부는 이 신호를 모르지 않았다. 의사들이 환자를 두고 떠나지 못하리라는 믿음 하나로 수가를 묶었고, 결과가 나쁘면 의사를 법정에 세웠다. 이번에는 그 믿음 위에 경찰의 발자국까지 얹혔다.

돈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3년 연 3000억 원을 들여 분만 수가를 건당 최대 110만 원 올리고 소아 진찰료에 정책가산을 붙였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는 수련보조수당도 얹었다. 모두 무너지기 시작한 뒤에야 지어 온 약이었다. 소 잃고 고친 외양간에 소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달 기준 전국 수련병원에 남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113명이고, 강원경북경남전남세종 등 6개 시도에는 한 명도 없다. 분만을 하는 의료기관은 2015년 620곳에서 지난해 436곳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가 6.8% 늘며 반등했지만, 줄어든 분만 기반은 그대로다.

정책이 번번이 빗나간 이유는 단순하다. 현장의 목소리는 피하고, 지표와 수치만 들여다보는 이론가의 설계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명분과 선의로 포장된 정책이 오히려 붕괴를 앞당겼다. 의사 부족 추계라는 숫자 하나로 밀어붙인 2024년 증원 사태 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임용대상자 236명 가운데 194명이 병원을 떠났다. 이달 국회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개정안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겠다며 지정된 병원에 환자 수용 의무를 지웠다. 형사책임 감면을 함께 담았지만,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설문에서 응답자의 92%는 이 법으로 미수용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수용 의무와 책임 완화만으로 없는 전문의가 생기지는 않는다.

내과라는 꽃이 시들고 있다는 것은 숫자로도 보인다. 내과 전공의 자리는 아직 대형병원에서 채워지지만, 그 뒤를 잇는 분과 수련에서 사람이 빠져나가고 있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가 대학병원 40여 곳을 조사한 결과, 중증 폐렴과 호흡부전 환자를 맡는 호흡기내과 전임의는 2023년 88명에서 2025년 25명으로 줄었다. 한밤중 위장관 출혈 환자에게 응급내시경을 해야 할 소화기 분과 전문의는 신규 배출이 2015년 202명에서 2023년 97명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소화기학회는 해마다 같은 경고를 내놓지만 듣는 곳이 없다. 올해 1~8월 응급실 진료제한 메시지의 68.4%가 인력 부족 때문이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도 입원과 중환자 치료, 응급내시경을 맡을 사람이 없으면 진료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 배후진료의 한가운데에 내과가 있다.

대학병원 밖이라고 다르지 않다. 동네 내과는 고혈압과 당뇨 환자를 오래 돌보며 합병증을 막는 일차의료의 최전선이다. 검체검사 개편은 원래 수탁검사기관의 과도한 할인 경쟁을 바로잡겠다며 시작됐다. 그런데 국무조정실의 국가정상화 프로젝트 과제에까지 오르며 속도전이 되자, 불똥은 엉뚱하게 검사를 맡긴 동네 의원으로 튀었다. 12월 시행을 목표로 검사 수가 인하와 위탁검사관리료 폐지, 위수탁기관 간 지급구조 변경이 한꺼번에 추진된다. 의료계는 1단계에서만 의원급 검체 수가가 4분의 1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 관리료 폐지와 배분 변경까지 겹치면 실제 감소 폭은 더 커진다. 그 대상은 만성질환자를 관리하는 데 쓰이는 바로 그 검사들이다. 만성질환을 관리해야 할 내과 의사들이 지금 폐업을 걱정한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깎은 돈이 또 다른 필수의료를 흔드는 셈이다. 지난 18일 대한내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 모인 회원들은 개편으로 줄어드는 재정을 진찰료와 만성질환 관리 수가로 온전히 보전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병원에서는 분과 선배들이 떠나고, 개원가에서는 폐업 걱정이 들린다. 수련을 앞둔 젊은 의사가 내과를 고를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올해 하반기 대구 지역 상급종합병원 다섯 곳은 레지던트 72명을 모집해 5명을 받는 데 그쳤고, 내과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전 수련이사는 검체 개편이 확정되면 2027년 내과 전공의 모집이 썰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검사 대신 진찰의 가치를 높이겠다며 진찰료 인상과 심층진찰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흡수율이다. 환자가 추가 본인부담을 감수할지, 짧은 진료에 맞춰 짜인 외래가 충분한 진찰 시간을 감당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정부 스스로도 그렇게 본다. 필자가 확인한 심층진찰 재정 추계에서 정부는 처음에 대상 환자의 10%가 참여한다고 가정했고, 수정안에서도 15%로 잡았다. 열에 여덟 이상은 처음부터 보상 밖에 두고 짠 셈이다. 앞서 시행된 수술 전후 교육상담 시범사업도 기관 등록 비율이 13.3%에 그쳤다. 삭감은 12월부터 확정이다. 반면 보상은 지금보다 더 오래 진찰하고 더 많은 요건을 갖춰야 받을까 말까다. 정부 스스로 널리 쓰이리라 기대하지 않은 제도를 충분한 보전책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심층진찰은 현장에서 쓸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필자는 이미 복지부에 내과 심층진찰 대상을 복합상병 중심으로 묶지 말고, 단일 질환이라도 충분한 평가와 설명이 필요한 환자까지 넓히며, 환자 본인부담과 의료기관의 행정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전달했다. 처음 당뇨병을 진단받아 치료와 생활 관리를 배워야 하는 환자에게, 다른 병이 하나 더 있어야 충분한 진찰을 해 주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참여율을 낮게 예상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 제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참여를 가로막는 조건부터 걷어 낸 수용성 높은 제도로 고쳐야 한다.

보상이 엇나간 곳은 또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배상보험료 지원 대상을 내과를 포함한 8개 과 전공의와 일부 응급의료기관 전담 전문의까지 넓혔다. 그러나 이 요건에 들지 않는 내과 교수와 전문의는 중증환자를 치료하고 전공의를 지도하는데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필자가 복지부에 이를 지적했고, 확대하겠다는 답은 받았다. 문제는 답이 예산과 제도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현장은 그 시간을 이미 여러 번 겪었다. 외과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내과마저 무너지면 일차의료든 필수의료든 언감생심이다.

이탈을 막는 길은 남을 이유를 만드는 데 있다. 소아과의 보호자 상담과 산부인과의 산모태아 동시 관리, 동네 의원의 만성질환 관리와 검사 결과 설명처럼 의사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에 제값을 매겨야 한다. 검사 개편에 따른 손실과 대체 보상은 같은 기관, 같은 진료량을 기준으로 맞대어 검증하고, 추가 진료시간과 인력 비용까지 반영해야 한다. 먼저 깎고, 나중에 참여하면 돌려받으라는 방식으로는 현장을 설득할 수 없다.

수사도 마찬가지다.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은 형사절차 특례를 담아 내년 5월 시행된다. 하위법령과 운영 절차를 서둘러 정비해 그 보호가 실제로 작동하게 하고, 남은 공백은 메워야 한다. 시행 전이라도 진료 공간에 대한 강제수사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로 한정하고, 집행 시간과 처방 시스템 접근 방식은 진료에 지장이 없도록 정해야 한다. 복지부 장관이 약속한 경찰청과의 수사 가이드라인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자신들의 진료과를 말리던 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이제 내과의사인 나도 다음 세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묻게 된다. 지키라는 말만으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남아 있는 사람이 계속 진료할 수 있고, 다음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지키라고만 하지 말고, 지킬 수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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