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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정치 과잉과 행정 빈곤

임민식 동대문구의사회장(대한병원의사협의회 고문)2026.10.16 11:19
대한의사협회 중앙회는 회원 가입률, 회원 정보 갱신율, 회비 수납률, 반 모임 개최율, 회원 민원 접수 건수와 응답률, 대정부 정책 제안 건수와 반영 실적 등을 지표로 정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부와 분회는 이런 중앙회의 각종 지표를 지부와 분회 차원에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실질적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직역단체는 해당 직역의 현안 파악과 정책 제안 실적을 지표로 정할 수 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중앙회는 회원 가입률, 회원 정보 갱신율, 회비 수납률, 반 모임 개최율, 회원 민원 접수 건수와 응답률, 대정부 정책 제안 건수와 반영 실적 등을 지표로 정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부와 분회는 이런 중앙회의 각종 지표를 지부와 분회 차원에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실질적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직역단체는 해당 직역의 현안 파악과 정책 제안 실적을 지표로 정할 수 있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원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으뜸은 의협은 왜 무기력한가? 또는 왜 강력한 의협이 되지 못하는가? 일 것이다. 의협이 무기력한 이유를 꼽자면 100가지도 넘겠지만, 필자는 정치 과잉과 행정 빈곤이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흔히 조직을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은 정치와 행정이라고 한다.

정치는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나아갈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하고, 외부와 협상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반면에 행정은 그렇게 정해진 방향을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바꾸고, 사람과 예산을 배분하며, 결과를 점검해 다음 결정에 반영하는 기능을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행정은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떤 자원으로 할 것인가를 묻는다.

행정학은 일찍부터 이 둘을 구분해 왔다. 프랭크 굿나우(Frank Goodnow)는 1900년에 출간한 Politics and Administr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치를 공동체 의지의 표현(expression of will)으로, 행정을 그 의지의 집행(execution of will)으로 정의했다.

물론 현실에서 둘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2000년대 James Svara가 체계화한 현대 행정학 이론인 상호보완 모델(Complementarity Model)에 의하면 정치와 행정은 서로 겹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중요한 것은 둘을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분명히 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둘의 차이는 시간 축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의 정당성은 주권자의 선택을 받는 선거에서 나오므로 임기마다 바뀌어도 된다. 그러나 행정은 집행부가 바뀌어도 어느 정도의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정치의 산출물이 투쟁, 성명서와 협상이라면, 행정의 산출물은 회원 정보 관리와 정책 자료 생성, 상세한 업무 매뉴얼과 회원에 대한 서비스이다.

의협에 정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의사의 권익을 지키고, 정부 정책에 대응하며, 지역, 직역과 세대의 이해를 조정하는 일은 대표 단체의 본질적 기능이다. 문제는 정치의 존재가 아니라 정치 과잉에 의한 불균형이다.

의협의 빈약한 대외 정치력을 고려할 때, 필자가 의협의 정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다고 말하면, 많은 회원은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치 활동의 범위를 의협 내부로 한정하면 이해하기 쉽다. 3년마다 찾아오는 의협 내부 선거철이 되면 정치에 관심이 없는 회원들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각종 성명서, 회원들이 관심 가질만한 주제에 대한 기자회견, 투쟁 결의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이 이어진다.

물론 선거가 끝난다고 끝은 아니다. 어쩌면 다음 3년 후의 선거를 위한 움직임이 새롭게 시작되기도 한다. 후보들이 윤리적이고, 능력 있고, 자기희생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지켜진다면, 어떤 조직에서 회장이 되고 싶고, 임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의협의 문제는 출마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3년마다 반복되는 정치가 아무런 행정의 축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협회 선거는 3년에 한 번이지만, 어떤 회원은 매일 협회의 무능함에 좌절한다.

의협 내부에서 활발한 정치 활동과 달리 그 정치 활동을 뒷받침해야 할 행정은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정치의 성과는 밖으로 드러나고, 박수로 돌아오지만, 행정의 성과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조용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직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행정에서 나온다.

행정 빈곤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회원 정보 관리와 회비 수납률이다. 의료법 제28조 제3항에서 의사는 당연히 중앙회의 회원이 되고, 정관을 지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의협 정관에는 회원은 지부와 분회를 통해서 중앙회에 가입하라고 되어 있지만,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많은 분회에서 의료법상 중앙회에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회원의 수가 몇 명이고, 그중에서 몇 퍼센트(%)가 가입하고 있는지에 관한 정확한 통계조차 관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의협의 현실이다. 회원이 몇 명인지를 모르니, 그 회원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하고, 회비 수납률이 저조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의 비협조 속에서, 의협 회원 정보는 제때 갱신되지 않고, 개원이직폐업 같은 기본적인 변동조차 중앙회와 지역 조직이 일관되게 파악하지 못한다. 정부의 비협조를 탓하는 것은 어쩌면 무능을 포장하는 쉬운 방법일 수 있다. 남이 주지 않는 정보를 기다리기 전에, 우리 손으로 모을 수 있는 정보부터 모으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회비 수납률의 하락은 지역의사회 행정의 미비와 함께 협회에 대한 실망의 표현일 수 있다. 수납률 하락을 회원의 무관심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회원관리 체계와 서비스, 소통 방식과 책임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협 행정 구조에 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중앙회지부(시도의사회)분회(시군구의사회)로 이어지는 행정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회의 결정은 지부와 분회를 거쳐 회원에게 닿아야 하고, 회원의 목소리는 분회와 지부를 거쳐 중앙회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통로는 공문 한 장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앙회는 지부와 분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고, 분회는 중앙회의 결정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지 충분히 설명받지 못한다. 회원 현황, 회비 납부 상황, 지역 현안이 하나의 체계로 모이지 않는다. 개원의봉직의전공의교수 등 직역 단체와 중앙회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각 조직이 따로 움직이며 활동과 성과를 공유하지 않으니, 의협 전체의 역량은 개별 조직의 합에도 미치지 못한다. 투쟁 국면이 되면 회원의 결집을 호소하지만, 평소에 다져진 행정의 뿌리가 없으니, 회원의 참여는 부진할 수밖에 없다. 의협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자료와 대응 논리가 혼선을 빚고, 중앙회의 의견과 지부, 분회의 의견이 다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행정은 어디서부터 세워야 하는가. 필자는 그 출발점으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를 제안한다. KPI는 조직이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를 정리해서 수치로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무엇을, 얼마나, 언제까지 해냈는가라는 숫자로 바꾸는 도구다. 좋은 KPI는 흔히 SMART 원칙을 따른다.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 가능하며(Measurable), 달성 가능하고(Achievable), 조직 목표와 관련 있으며(Relevant), 기한이 정해져 있어야(Time-bound) 한다.

활용 방법은 어렵지 않다. 조직의 목표에 맞는 측정 가능한 지표를 선정하고 해당 지표의 현재 수준을 측정하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치를 정한다. 이후에는 일정 기간마다, 즉 분기, 반기 그리고 회기마다 측정하고 결과를 공유하고 그 결과를 다음 계획에 반영한다. 계획실행점검개선의 순환 사이클이다.

의협에 적용하면 이렇다. 중앙회는 회원 가입률, 회원 정보 갱신율, 회비 수납률, 반 모임 개최율, 회원 민원 접수 건수와 응답률, 대정부 정책 제안 건수와 반영 실적 등을 지표로 정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부와 분회는 이런 중앙회의 각종 지표를 지부와 분회 차원에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실질적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직역단체는 해당 직역의 현안 파악과 정책 제안 실적을 지표로 정할 수 있다. 이때,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할 수 있다.

첫째, 지표는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분회의 지표가 모여 지부의 지표가 되고, 지부의 지표가 모여 중앙회의 지표가 될 때, 끊어졌던 연결고리가 비로소 숫자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지표의 정의와 산출 방식은 표준화하되, 목표치는 조직의 규모와 여건에 맞게 정해야 한다.

둘째, KPI는 통제와 서열화의 도구가 아니다. 목표에 못 미친 조직을 질책하기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인력과 예산, 전산 시스템 같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KPI는 조직이 어디서 막혀 있는지 보여주는 진단 도구이며, 집행부가 바뀌어도 협회의 일이 이어지게 하는 행정의 기록이다.

결론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세우는 것이 강력한 정치력의 기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협이 강한 전문가 단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거센 구호가 아니라 단단한 행정이다. 정부와 국민을 설득하는 힘은 결국 데이터와 논리, 그리고 회원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에서 나온다. 의협의 신뢰 회복은 회비를 내는 회원이 늘고, 회원이 스스로의 정보를 갱신하며, 중앙회의 결정에 공감하는 회원 수가 더 많아지는 것으로 측정될 수 있다.

임민식 동대문구의사회장(대한병원의사협의회 고문) ⓒ의협신문
임민식 동대문구의사회장(대한병원의사협의회 고문) ⓒ의협신문

강한 의협 건설의 첫걸음은 거창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중앙회와 지부, 분회, 그리고 각 직역 단체가 각자의 KPI를 정하고,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일이다. 측정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 업무들은 관리하기 어렵고, 관리되지 않는 조직은 정치의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는 조직의 방향을 정하지만, 행정은 그 방향을 조직의 능력으로 만든다. 이제 의협은 정치의 과잉을 덜어내고 비어 있는 행정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2027년, 의협 중앙회시도의사회시군구의사회가 새 리더십을 뽑는다. 이번 선거가 구호의 경쟁이 아니라 지표의 경쟁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 후보가 더 거세게 싸우겠다고 말하는지가 아니라, 회원 가입률과 회비 수납률을 몇 퍼센트에서 몇 퍼센트로 올리겠다고 약속하는지를 묻는 선거. 그것이 2027년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다.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행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의협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치 활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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