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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사전 지시했더라도, 간호사 EMR 처방 '무면허 의료행위'

송성철 기자2026.09.29 17:07
대법원은 최근 A 한방병원을 개설·운영하는 B 학교법인이 관할 보건소를 상대로 낸 10억 원 상당의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항소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대법원은 최근 A 한방병원을 개설운영하는 B 학교법인이 관할 보건소를 상대로 낸 10억 원 상당의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항소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한의사의 사전 지시가 있었더라도 간호사가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에 한약 처방을 직접 입력해 발급한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최근 A 한방병원을 개설운영하는 B 학교법인이 관할 보건소를 상대로 낸 10억 원 상당의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항소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인이 주장하는 상고 이유가 법률이 정한 특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아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사건의 발단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한방병원 소속 한의사 C씨는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져 외래환자들의 항의가 빈발하자, 진료실 간호사들에게 장시간 대기하는 환자가 청인유쾌환, 쌍화탕, 공진단 등 특정 한약을 원할 경우, 한의사의 진찰 없이 환자의 요구대로 전자의무기록에 처방전을 발행하고 사후 보고하라는 사전 약속 처방을 내렸다.

A 한방병원에서 한의사의 진료 없이 처방전 발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서울특별시 민생사법경찰단 D 수사관은 2022년 11월 3일 환자인 것처럼 가장해 A 한방병원을 방문, E 간호사에게 청인유쾌환을 처방받기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E 간호사는 EMR에 청인유쾌환 기본 처방을 입력한 후 원내탕전실로 전송했다. 원내탕전실에서는 해당 처방에 따라 D 수사관에게 청인유쾌환 30정을 인도했다. 같은 날 E 간호사로부터 청인유쾌환 처방 사실을 사후 보고받은 C 한의사는 EMR에 자신이 D 수사관을 직접 진찰한 것처럼 허위로 외래초진기록을 작성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C 한의사는 형사재판에서 의료법 위반죄(면허 사항 외 의료행위 지시 및 허위 진료기록부 작성)가 인정돼 벌금 7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이에 불복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형사 판결이 확정되자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에 따라 C 한의사에게 면허 자격정지 3개월 15일 처분을 내렸고, 이 역시 불복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후 관할 동대문구보건소는 C 한의사의 처벌 사실을 바탕으로 A 한방병원을 운영하는 B 학교법인에 의료법 제27조 제5항(무면허 의료행위 지시 금지) 위반을 적용, 업무정지 3개월에 갈음하는 과징금 10억 원을 부과했다. B 학교법인은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쟁점은 E 간호사의 EMR 처방 입력 행위를 간호사의 독자적인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한의사의 불법 행위를 도운 단순 전산 보조로 볼 것인지였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B 학교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E 간호사의 행위를 한의사 지시에 따른 단순한 기술적 보조행위로 보았고, C 한의사 개인의 진찰 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본질적인 위반 사항은 한의사가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한 행위(의료법 제17조의2 제1항 위반)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현행 의료법상 의사가 직접 진찰 의무를 위반하면 한의사 개인은 자격정지 처분을 받지만, 병원(법인)에 업무정지나 과징금을 부과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관할 보건소의 10억 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인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의료법 제27조 제5항이 금지하는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의료법 제64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병원 법인에도 업무정지나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2007년 9월 7일 선고 2006도2306 판결)를 인용해 간호사도 의료법에서 정한 의료인이지만,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시행할 수 있을 뿐이고, 이를 넘어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찰, 처방 등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며, 이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시나 위임을 받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C 한의사의 사전 지시 행위와 관련해 불특정 다수의 환자에 대해 개별적 증상 고려 없이 간호사가 알아서 처방하는 것은 의료법상 허용될 수 없는 위법이라며 간호사가 청인유쾌환을 처방한 행위는 의사 또는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고, 간호사에게 면허된 의료행위인 간호, 의사나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등의 범위를 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무면허 의료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대형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원고가 소속 직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게을리해 불법행위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한방병원의 연간 총수입액(300억 원 초과)과 업무정지 3개월(90일) 기간을 기준으로 시행령상 과징금을 산정하면 21억 4,524만 원에 달하지만, 법정 최고 한도액 규정에 따라 10억 원만 부과된 것이라며 처분 기준이 부당하거나 비례의 원칙을 위반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이 적용한 관련 법령 및 기존 판례 해석에 아무런 법적 오인이 없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의료 현장에서 대기시간 단축이나 편의성을 이유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의사의 사전 지시 및 간호사의 전자의무기록 대리 입력처방 행위에 엄격한 사법적 잣대를 적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의사의 직접 진찰을 생략한 상태에서 간호사가 처방을 전산에 입력하도록 위임을 했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 소속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의료기관 개설자(법인)에게도 중대한 행정적재정적 책임을 부과한다는 점을 확고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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