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2026 CMAAO 서울총회'가 한국 의료에 남긴 과제
아시아오세아니아의사회 연맹(Confederation of Medical Associations in Asia and Oceania, CMAAO) 총회가 9월 24일까지 2박 3일간 서울에서 성료됐다.
CMAAO는 이번 서울총회를 통해 다시 한번 전문직의 자율성(자주)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했다.
전문직의 자주와 임상적 독립성은 이미 2008년 세계의사회(WMA)가 선언문으로 채택한 바 있으며, 지난 2018년 서울에서 개최된 이사회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등 개정했다.
이런 사정에도 우리나라에서 전문직의 자주, 혹은 자율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으로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서양의 자주(Autonomy)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우리말로 번역이 쉽지 않고 자주와 자율성 등으로 혼재되어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전문직의 집단적(collective) 차원에서 보면 자주와 자율성에 대한 개념은 더욱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전문직 집단이 갖춰야 할 특성 중 하나는 전문직 스스로 합의 하에 결정한 전문직 표준(Standards, 수준 및 기준점)이다. 이것은 좋은 의료를 지향하는 전문직 고유의 중요한 가치와 의무를 행동양식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즉 의사로서 기대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의료는 전문직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적절한 개입이 요청된다. 좋은 의료를 지향하고 나쁜 의료를 방지하기 위한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전문직 기준(Standards)과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전문직 위법 행위를 비롯해 비리와 비행(Misconduct) 등 수준 위반에 대한 용어가 활용된다. 기준과 비위(리)의 차이는 자주(自主)와 의무(義務)라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명확해진다.
수준(Standards)은 전문직 스스로 좋은 의료를 정의하고 유지하기 위한 자주의 영역이 중심이고, 비위(Misconduct)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의 선을 강제하는 의무의 영역이 그 핵심이다.
■ 선진화하고 성숙한 사회는 획일적 법규제 아닌 전문직에 자율규제를 부여 역량 강화
단체적 혹은 집단적(Collective) 의(醫) 전문직업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자율규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주(autonomy)를 단순히 외부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라고 받아들이면 설명하기 어렵다.
전문직에서 자주(자율성)는 전문직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self-definition), 스스로 준수하며(self-governance), 그 결과를 책임지는(self-accountability) 능력을 모두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직의 자율규제를 도식으로 표현하면, 전문적 자율규제(Professional Self-Regulation)=자주(自主, Self-direction)+의무(義務, Professional obligation)+책임(責任, Accountability)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여기서 수준(Standards)은 자주에서 출발해 의무로 발전하는 영역이고, 비리(Misconduct)는 의무를 위반했을 때 책임을 묻는 영역이 된다. 그러므로 자율규제는 자주와 의무가 결합한 동일한 체계에서 작동한다.
전문직 수준(Standards)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자주(自主)에 기반한 전문직의 자기 규범인데, 법이 의사 집단에 일일이 명령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료 전문직이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직업에서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하고,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선진적인 법체계는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제공해 자율규제가 실현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좋은 의사는 환자와 충분히 의사소통하고, 최신 지식을 유지하며, 자신의 역량 한계를 인식하고, 동료와 협력하며, 환자의 안전과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등의 매우 당연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형법이나 민법으로 세밀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직 수준(Standards)의 본질은 하지 않으면 처벌한다가 아니라 전문직이라면 스스로 이렇게 해야 한다가 핵심적인 방향성이다. 즉 자주는 각자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다.
비리(Misconduct)는 의무(義務)의 최소 선을 위반한 상태 즉, 전문직에 부여된 의무 가운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소 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환자에 대한 성적 착취, 진료기록의 조작, 허위진단서 발급, 반복적이고 심각한 역량 부족과 무능함, 환자 비밀의 부당한 공개, 사기,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 등이 해당할 수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단순히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나쁜 의료에 대한 교육, 예방과 더불어 전문직 스스로 억제하고 제재를 위한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비리(misconduct)에 대한 규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사를 처벌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환자와 사회를 보호(public protection)하는 것이다.
■ 개인과 단체 스스로 길을 찾고 성찰 좋은 의료 구현 앞장 진정한 의미의 자율규제
중요한 것은 기준(Standards)과 비리(Misconduct)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임상 문제의 해결이라도 최고 수준에서 시작해 높은 수준, 평균 수준, 경계선, 평균 이하, 심각한 수준 미달 등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자율규제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모든 수준(Standards) 위반을 비리(Misconduct)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의사가 최신 임상 지침(clinical guideline)을 완벽하게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비리(misconduct)나 불법행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임상적 맥락을 살펴보고 교육, 피드백, 교정(remediation) 등의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 임상적 맥락에는 교과서적 진료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심각하거나(serious), 반복되거나(persistent), 고의적이거나(intentional), 환자에게 중대한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는 비리(misconduct)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비리에 대한 제재도 정도에 따라 경고, 서약, 견책, 벌금, 교육에서 면허 정지, 취소 등 다양한 조치가 가능하다. 재차 강조하는 중요한 개념은 수준 미달의 의료라고 모두 자동으로 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분이 없는 제도에서는 수준(Standards)이 사실상 처벌 규정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사회가 허용할 수 없는 최소 기준 이하의 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사와 징계를 통해 환자와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곧 의사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법적 규제와 전문직 자율규제는 서로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법률에서는 주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위반의 결과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데 방향이 서 있다. 즉 법은 최소 선을 설정하는 데 적합한 반면에, 전문직 자율규제는 그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법은 최소(minimum)를 요구하지만,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최적(optimum)을 지향한다. 법은 좋은 의료를 위한 질 향상의 역할은 매우 둔하고 약하다.
따라서 의료의 질 전체를 단순히 법률로 관리하려 하면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인 속칭 방어 의료와 기피 의료의 문제가 발생한다.
임상의학은 불확실성이 크고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임상 기준(clinical standards)을 법적인 의무로 명시적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전문직에서 자주(自主)는 의무로부터의 자유도 아니고, 자주와 의무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전문직이 스스로 의무를 만들어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가 전문직에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전문직 기준(Professional Standards)과 전문직 비리(Professional Misconduct)는 서로 경쟁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율규제를 지탱하는 두 가지 기본 축인 것이다.
기준(Standards)이 지니는 기본 철학과 개념은 우리는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규정하는 자주(自主)의 장치이고, 비리(Misconduct)는 전문직으로서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지켜야 하는 의무(義務)의 장치인 것이다.
성숙한 의료체계에서 자율규제의 핵심은 의료 수준(Standards)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기능과 비리(misconduct)를 공정하게 다루는 두 가지 기능의 연속선에서 집단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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