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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아픈 사람 곁으로 반세기…사랑을 처방한

이경희 (주) 보령 사보 기자2026.09.10 08:01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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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진료실은 환자를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최경숙 전 고대교우의료봉사회 전 단장에게 진료실의 경계는 없었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도, 한센인들의 삶터인 소록도도, 재난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해외의 낯선 땅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진료실이었다.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부터 시작한 의료봉사가 반세기를 넘어서는 동안 그가 한결같이 바라본 것은 사람이었다. 아픈 사람 곁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믿음. 그는 그 믿음을 삶으로 지켜왔다.

마음에 먼저 아픔이 들어왔다

최경숙 단장의 본격적인 의료봉사는 1970년대 고려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시흥 지역의 전진상가정복지센터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꼭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무료진료에 나섰다. 혜화동에서 시흥까지 버스를 서너 번씩 갈아타야 했고 전공의 생활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좀처럼 마음도, 발길도 돌리지 못했다.

최 단장에게 사실 그 마음의 씨앗은 훨씬 이전부터 가슴 속에 있었다. 스스로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던 그는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보면 어쩌다 저렇게 힘들게 살게 됐을까 궁금해하면서 자신이 더 많이 가진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 조숙한 꼬마였다. 중학생 때는 봉사반에 자원해 학교 마당을 쓸고, 빵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훗날 그는 신앙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그 마음이 컴패션(compassion), 즉 타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는 의료봉사를 하면서 힘들었다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것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제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었겠어요. 큰돈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에게는 의술이라는 재산이 있었으니까 그걸 이용한 거죠.

최 단장의 그 작은 측은지심은 의술을 만나 평생의 길이 됐다.

1975년부터 시작한 그의 의료봉사는 1998년 고대대여자교우회에서 2014년 고대교대의료봉사회로 이어지며 그 영역을 더욱 확장했다. 국내에서는 사회취약계층,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 장애인을 만났고 해외로 시선을 돌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환자들을 찾아 의술을 펼쳤다.

그런 와중에 최 단장은 자신의 삶과 의료봉사를 가장 깊숙이 바꿔놓은 한 곳을 만났다. 바로 소록도였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고, 환자가 의사를 살린 소록도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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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와의 인연은 뜻밖에도 딸에게서 시작됐다. 중학생이던 딸이 먼저 교회 집사님과 함께 소록도 봉사를 다녀온 것. 딸을 보내면서 최 단장은 의사로서의 관점으로 한센병을 생각해 장갑과 소독약부터 챙겼다. 그런데 돌아온 딸의 가방에는 장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 장갑을 끼지 않았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딸은 한센인들을 장갑 낀 손으로 대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답했다. 순간 최 단장은 표현하기 힘든 부끄러움을 느꼈다. 환자를 치료해온 의사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센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딸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딸은 소록도를 다녀온 뒤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의사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학창시절 연기의 꿈을 버리고 가업을 잇고자 의사가 된 저와 다른 듯, 같은 행보를 보인 거지요.

두 달 뒤 최 단장은 소아과 전문의인 남편 최병한 원장과 직접 소록도를 찾았다. 자신이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셋째 아이를 낳은 직후 원하던 공부를 하라며 유학을 보내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남편과 함께 하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도착한 날, 부부는 그곳에서 병보다 더 깊은 상처를 보았다. 오랜 세월 질병뿐 아니라 사회의 편견과 단절까지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눈과 코, 입과 손발이 병으로 손상된 그들이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본 최 단장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눈물을 흘렸다.

제게 의사로의 길을 권유한 어머니께서는 늘 너는 시작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한번 시작하면 놓지를 못하니까요. 결과적으로 그 말씀이 맞았어요.

한번 시작한 인연을 쉽게 놓지 못하는 부부는 그렇게 지인들과 함께 1993년 소록밀알회를 만들었다. 이후 매년 두 차례씩 의약품을 챙겨 소록도를 찾으며 한센인들과의 약속을 이어갔다.

의사로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며 소록도와 인연을 이어가던 시기, 그 관계가 뒤집힌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환자가 의사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1999년 최 단장에게 큰 병이 찾아왔다. 죽음을 생각해야 할 만큼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때 삶을 붙잡도록 용기를 준 사람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소록도에서 돌보던 한센인 할아버지였다. 평생 질병과 편견을 견디며 살아온 환자가 오히려 의사에게 살아갈 힘을 건넨 것이다. 소록도 사람들은 그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고, 수술과 항암치료 끝에 건강을 되찾은 최 단장은 자신에게 다시 주어진 시간을 덤으로 얻은 삶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삶을 더 많이 나누기로 했다.

소록도는 그렇게 최 단장에게 봉사하는 사람과 봉사받는 사람의 경계를 허문 곳이 됐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자신을 일으켜 세운 사람 역시 환자였다. 그래서 최 단장에게 소록도는 수많은 봉사지 가운데 한 곳으로 남지 않았다. 평생의 소록도가 됐다.

암을 이겨낸 뒤 그의 발걸음은 더욱 넓어졌다. 소록도를 넘어 세계의 한센인을 위한 의료진을 꾸려 필리핀과 인도, 아프리카 등으로 향했고, 북한과 이라크, 스리랑카, 케냐 등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찾아다녔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같은 해외 재난 현장에도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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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사랑을 다시 사람에게

최 단장의 봉사는 시간이 흐르며 개인의 선행을 넘어 함께하는 의료로 발전했다. 여러 진료과 의사와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가 함께 움직이며 진료부터 검사와 투약까지 현장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환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료가 필요한 사람을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산수(傘壽)를 앞둔 최근까지도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2025년 11월 서울 양천구 밝은내 어르신복지센터에서 지역 주민 70여 명을 진료한 데 이어, 2026년 2월에는 구로구 지구촌사랑나눔과 중국동포교회에서 제145차 의료봉사를 펼쳤다. 3월에는 모교인 고려대학교 SK미래관에서 교우회와 성북구청, 재학생 등 40여 명과 함께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 등 의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만났다. 지난 4월 11일에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을 찾았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 버스를 서너 번씩 갈아타며 시흥의 가난한 이웃을 찾아갔던 젊은 전공의는 이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병원에 오기 힘든 사람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후 최 단장은 고대교우의료봉사회 단장 자리를 후배에게 넘겼다. 봉사를 멈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온 의료봉사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건넨 셈이다.

그가 오랜 봉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함께하는 의료진에게 하루의 진료로 환자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신 그 하루만큼은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자고 했다. 그에게 의료봉사는 치료에 앞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무료진료소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 있어요. 바로 자존심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요. 나는 무료로 치료해주는 사람이고 당신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환자입니다. 제가 말하는 컴패션도 결국 거기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그는 반세기의 봉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제가 오히려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의료봉사의 기쁨은 내가 무엇을 해줬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제 그의 시선은 후배 의료인들을 향한다. 오랫동안 이끌어온 고대교우의료봉사회 단장 자리는 올해 초 후배에게 넘겼지만, 의료봉사 현장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앞에서 이끄는 단장이 아니라 봉사팀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묵묵히 힘을 보태고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배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한발 뒤에서 응원하고 함께하는 것이다.

그가 후배 의료인들에게 바라는 것도 거창하지 않다.

의료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자신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에도 눈을 돌려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진 의술이 어디에 필요한지, 병원까지 찾아오기 어려운 사람은 없는지, 의료의 혜택에서 멀어진 사람은 없는지 넓게 바라봤으면 한다. 반세기 동안 한 방향으로 걸어온 의사가 이제 그 길을 이어갈 후배들에게 건네는 당부다.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가난한 동네의 작은 무료진료소를 찾아가던 젊은 전공의는 이제 백발의 노의사가 됐다. 하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려운 이웃을 보며 품었던 측은지심은 전진상가정복지센터에서 의술이 됐고, 소록도에서 사랑과 존중으로 깊어졌으며, 다시 세상 곳곳의 아픈 이들을 향한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고,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살렸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일으켜 세우며 이어온 반세기. 최경숙 단장이 평생 써 내려온 처방전에는 어쩌면 단 하나의 약 이름이 적혀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향한 사랑.[글(주) 보령 이경희 작가]

보령의료봉사상은 대한의사협회 의협신문과 (주)보령이 1985년에 제정한 상으로, 숨은 곳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계신 의료인 혹은 의료단체를 분기별로 1분씩 발굴, 취재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령의료봉사상은 묵묵히 헌신하며 인술을 펼치는 대한민국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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