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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몸의 변화를 헤아리고, 문학은 삶의 의미를 품는다"

이영재 기자2026.09.13 02:43
■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는 12일 오후 서울의대 동창회관에서 '늙음의 서사: 의학이 헤아리고, 문학이 품다'를 주제로 여덟 번째 세미나를 열어, 늙음을 쇠퇴가 아닌 삶의 정화이자 완결로 바라보는 의미를 되새기고,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서 늙음을 바라보는 통찰을 공유했다.
■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는 12일 오후 서울의대 동창회관에서 늙음의 서사: 의학이 헤아리고, 문학이 품다를 주제로 여덟 번째 세미나를 열어, 늙음을 쇠퇴가 아닌 삶의 정화이자 완결로 바라보는 의미를 되새기고,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서 늙음을 바라보는 통찰을 공유했다.

늙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발견하는 거대한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의학은 몸의 변화를 헤아리고, 문학은 그 몸에 깃든 삶의 의미를 품는다

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는 12일 오후 서울의대 동창회관에서 늙음의 서사: 의학이 헤아리고, 문학이 품다를 주제로 여덟 번째 세미나를 열어, 늙음을 쇠퇴가 아닌 삶의 정화이자 완결로 바라보는 의미를 되새기고,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서 늙음을 바라보는 통찰을 공유했다.

세미나에서는 ▲늙음, 의학이 헤아리다(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장) ▲늙음, 문학이 품다(유담 시인전 한림의대 교수) 등의 강연이 진행됐으며, 문미란 시인의 특별 시낭송도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조영중 대한노인병학회 이사장(국립중앙의료원 내분비대사내과), 하은주 서울의대동창회 함춘문예회장(신경외과 전문의전 인제의대 교수), 원장원 경희의대 교수(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이호준 더베스트내과의원장, 박성주 도서출판 지누 대표, 문학청춘작가회 회원, 남양주시인협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

노인은 젊은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 늙음에는 늙음만의 생리와 질병, 삶의 조건이 있다.

먼저 가혁 병원장은 늙음, 의학이 헤아리다 강연을 통해 늙음을 의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치와 진단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노인의학의 핵심은 한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과 생활환경, 사회적 관계까지 함께 살피는 데 있다는 얘기다.

의학은 혈압체중인지기능 등 객관적 지표를 측정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지만, 외로움과 상실감, 존엄과 삶의 의미는 단순한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문학과 인문학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늙음의 시작을 특정 연령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시력이 예전 같지 않거나, 이전에는 쉽게 넘겼던 질병이 반복되고,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순간 등 늙음을 감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병명보다 삶의 맥락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여러 변화와 상실이 겹쳐 나타난 늙음의 한 단면이다.

노인의학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약 100년 전 노인의학의 선구자들은 노인을 단순히 오래된 성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아가 작은 어른이 아니듯, 노인도 젊은 성인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노인에게는 노인만의 생리적병리적 특성이 있다.

노화 과정에서는 신체의 항상성, 즉 외부 환경이 변해도 몸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감각 기능과 면역력, 인지기능, 영양 상태, 수면, 사회적 지지도 함께 저하될 수 있다. 여러 질환을 앓으면서 복용 약물이 늘어나는 다약제 문제도 노인 건강을 위협한다.

특히 노인은 질병이 전형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인에게서 전형적인 증상만을 기다리면 질병을 놓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인지행동 변화도 중요한 의학적 신호로 봐야 하는 이유다.

노인의 건강을 이해할 때는 생리적 변화와 질병을 구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여기에 여러 질환과 약물, 경제적 어려움, 주거환경, 가족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노인의학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하나의 틀 안에서 살피는 학문이다.

나이를 일률적인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도 적절치 않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난 현실에서 나이만으로 노인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숫자 나이는 단지 연령을 표시할 뿐이며,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기능 변화와 노쇠 여부다. 혼자 걸을 수 있는 사람과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사람,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과 고립된 사람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노쇠한 노인에게서는 낙상과 요실금, 치매와 섬망, 근감소, 영양불량 등 다양한 노인증후군이 나타난다. 이들 문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근력이 약해지면 넘어지기 쉽고, 요실금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오가다 낙상할 수 있다. 치매나 섬망, 저혈당, 약물 부작용도 낙상의 원인이 된다.

■ 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장
■ 가혁 인천은혜요양병원장.

노인 환자는 질병별로 쪼개서 보기보다 여러 문제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질환 하나를 치료하는 접근이 아니라, 기능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의 독립성을 지키는 치료다.

전통적인 진료가 병력 청취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진단을 내리는 방식이라면, 노인의학은 포괄적 노인평가를 통해 환자를 전인적으로 살핀다.

포괄적 노인평가는 신체 기능뿐 아니라 정신심리 상태, 인지기능, 영양, 사회적 관계, 경제적 여건, 주거환경을 함께 평가한다. 의사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약사, 재활치료사 등 다학제적 접근도 필요하다.

노인 진료의 기준으로 4M 접근법을 소개했다. 환자의 마음과 인지기능, 복용 약물, 이동능력,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를 함께 살피는 방식이다.

요양시설에서도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집처럼 지낼 수 있는 요양원이라는 문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환자가 평소 어떤 생활습관을 가졌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관계와 기억을 지키고 싶은지를 알아야 한다.

기억을 묻는 게 돌봄이다. 의료와 돌봄은 생체징후를 관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를 기억하는 일도 돌봄의 일부다.

가혁 원장은 늙음은 질병의 목록이나 숫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의학이 늙음의 생리와 질병을 헤아리는 일이라면, 좋은 노인의학은 그 사람이 살아온 관계와 욕망, 생활환경과 마지막 바람까지 함께 살피는 일이라면서 노인은 치료의 대상이기 전에 고유한 삶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문학은 늙음을 생의 끝자락이 아니라,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깊은 삶의 자리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유담 시인은 늙음을 바라보는 문학의 시선을 통해 의학과 문학의 접경을 탐색했다.

유담 시인은 의사이자 시인수필가로 활동하며 의학 속 문학의 의미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그는 의학과 문학이 모두 인간의 고통과 생명의 의미를 헤아리고 치유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의학이 질병의 원인과 경과를 분별한다면, 문학은 질병과 늙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과 서사를 품는다는 설명이다.

늙음 문학이 품다 주제 강연은 ▲늙음을 직시하는 문학 ▲시든 꽃인가, 남은 꽃인가: 여백을 채우다 ▲성찰과 달관: 끝없는 오딧세이아 등에 대해 늙음 속 문학 이야기를 풀어갔다.

먼저 늙음을 바로봐야 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불멸의 종족 스트룰드브루그. 그들은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일까?

스트룰드브루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붉은 반점을 지닌 불멸의 인간들이다. 걸리버는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 지나간 모든 시대의 지혜를 간직한 현자들이 살아 있는 나라를 상상하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이들은 젊음이나 건강을 유지한 채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쇠약해지면서도 죽음에 이를 수 없는 인간들이다.

30세 이후 우울과 의욕 상실이 깊어지고, 80세에 이르면 독선과 탐욕, 허영과 고립이 두드러진다. 우정을 맺거나 자연스러운 사랑을 나누는 능력도 잃는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장례식에서조차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안식을 부러워한다. 기억 또한 젊은 시절과 중년기에 머물며 점차 부정확해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생명만 연장된 늙음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문학적 실험이라는 진단이다. 죽음이 제거된 삶에서 늙음의 육체적정신적사회적 불이익만 남는다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 될 수 있다.

이 문제의식은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초고령사회에서 연금 고갈과 세대 갈등, 노인 부양 부담이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를 그린다. 젊은 세대는 노인을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 비용과 부담으로 바라보고, 왜 늙었는데 죽지 않는가라는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두 작품은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늙음의 쓸쓸함과 비참함, 사회적 배제와 존엄의 훼손을 차갑게 응시한다. 그러나 그 차가운 시선은 노인을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니다. 늙음을 비용과 숫자로만 정리하려는 사회를 향해, 소외된 시간 역시 인간의 서사이며 존엄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되묻는다.

두 번째 주제는 꽃이다. 문정희의 시 늙은 꽃에 담긴 늙음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살폈다.

시 속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자신의 시간을 다 써버린다. 피어나는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가지만, 그 과정 자체가 꽃의 아름다움이다. 꽃은 장수의 유전자를 갖지 않았고, 주름을 말하지도 않는다. 대신 마지막까지 향기를 남긴다.

■ 유담 시인.
■ 유담 시인.

여기에서 의학과 문학의 역할을 무엇일까.

시 늙은 꽃 중 분별을 의학이라 한다면 향기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은 노화의 원인과 상태, 기능의 변화를 살피고 진단하며, 문학은 그 변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 관계와 의미를 발견한다.

특히 잔화(殘花)에 주목했다. 잔화는 남은 꽃인가, 시든 꽃인가. 남은 꽃이라면 아직 생명과 가능성이 지속되는 모습이고, 시든 꽃이라면 한때의 화려함을 지나 마지막 시간을 맞은 존재다.

그러나 두 해석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시든 꽃은 과거의 번성을 모두 품고 있으며, 한때의 아름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 삶의 전체가 드러난다. 꽃이 지는 순간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이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붉은 촛불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혀 시든 꽃을 바라보는 행위는 소멸을 향해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존재를 지켜보겠다는 문학적 의지이기도 하다.

붉은 촛불 아래에서 시든 꽃이 마지막 향기와 빛을 드러낸다. 인간의 노년도 마찬가지다. 젊음의 빛이 사라진 뒤에도 한 사람의 삶이 남긴 기억과 관계, 고유한 향기는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늙음은 남은 것이 적어진 시간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살아온 모든 시간이 응축되는 시간이다. 문학은 그 응축된 시간을 바라보며 늙은 몸 안에 남아 있는 생의 불꽃을 발견한다.

늙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은 성찰과 달관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늙음을 숨기거나 슬퍼하기보다 흰 머리와 흐려지는 시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삶의 멋을 찾았다.

백거이의 시에 나타난 늙음의 수용은 체념과 다르다.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는 일은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는 태도다. 얼굴의 주름과 희미해진 시력, 줄어드는 신체 능력은 삶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시간과 함께 살아왔다는 흔적일 뿐이다.

달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 상태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기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능동적 태도다.

유담 시인은 이를 순리를 따르는 홀가분한 능력, 순응이라고 표했다.

문학은 노년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노년의 욕망과 사랑, 고뇌와 창조성에도 주목한다. 늙은 사람 역시 사랑하고 상처받으며, 새로운 자아를 찾아 떠날 수 있다.

이런 관점은 의료 현장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노인은 치료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주체다. 의료가 노년의 기능 저하와 질병을 헤아린다면, 문학은 그 몸을 살아가는 사람의 기억과 자존, 관계와 꿈을 바라보게 한다.

문학은 늙지 않는 법이나 오래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문학이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어떻게 품위 있게 늙고, 어떻게 품위 있게 소멸할 것인가에 가깝다.

생명 연장 기술이 발전하고 고령 인구가 늘어날수록, 노년을 둘러싼 의료와 사회의 과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뿐 아니라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의학은 노화의 속도와 질병의 위험을 측정하고 치료의 가능성을 넓힌다. 그러나 수치와 검사만으로 한 사람의 늙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같은 진단명을 가진 두 사람도 서로 다른 기억과 상실, 가족관계와 삶의 태도를 지닌다.

문학은 바로 그 차이를 드러낸다. 문학은 노년을 하나의 통계 집단이 아니라 고유한 이름과 목소리를 가진 인간의 삶으로 되돌려놓는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어떻게 시간과 화해하고, 남은 날들을 새롭게 해석하는지 보여준다.

유담 시인은 늙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발견하는 거대한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의학은 몸의 변화를 헤아리고, 문학은 그 몸에 깃든 삶의 의미를 품는다라면서 늙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미래다. 노년의 존엄은 일부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문제다. 한 인간의 생이 마지막까지 인간의 서사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 의학과 문학,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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