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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문장은 타동사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2026.09.09 09:20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

문장은 필자의 의도와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영어 문장에서 그 그릇의 형태와 무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동사다. 한국어에서는 부사와 어미를 활용해 상황의 뉘앙스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에서는 동사 하나를 달리 선택함으로써 행위의 방식과 강도, 결과까지 압축해 나타낼 수 있다. 적확한 동사 하나가 여러 수식어의 몫을 대신하는 셈이다.

기본적인 주어-타동사-목적어의 구조에서 문장은 상황에 맞추어 타동사라는 옷을 갈아입는다. 이는 단순히 동의어나 유의어를 바꾸어 쓰는 일이 아니다. 동사의 선택에 따라 문장의 강도와 격식, 화자와 청자의 관계, 심지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직관적인 변화는 물리적 행위와 그 결과를 묘사할 때 나타난다.

재난 상황에서 The storm damaged the city라고 하면 폭풍이 도시에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damage 대신 ruin, destroy, obliterate를 선택하면 손상의 정도뿐 아니라 결과의 성격도 달라진다. ruin에는 도시가 본래의 기능이나 가치를 잃었다는 뜻이, destroy에는 구조가 파괴되었다는 뜻이, obliterate에는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뜻이 담긴다.

The storm obliterated the city라는 문장에는 completely 같은 수식어를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다. 동사 자체가 파괴의 철저함과 시각적 이미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동사는 문장을 짧게 만들면서도 오히려 묘사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동사의 선택은 화자의 의지와 메시지의 긴급성을 조율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말할 때 suggest는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고, request는 특정한 행동을 정중히 청한다. urge는 그 행동이 필요하거나 시급하다고 강하게 권하며, demand에 이르면 반드시 응할 것을 요구한다.

이 동사들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강도만으로 층위가 구분되는 관계는 아니다. 각각 전제하는 관계와 뒤따르는 문장의 구조 역시 다르다.

비즈니스나 외교의 현장에서 동사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동사는 문장의 격식도 좌우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문제를 고쳤다라고 할 때 쓰는 fix는 친숙하고 폭넓다. 그러나 공식 보고서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의 resolve가 어울릴 수 있고, 잘못된 상태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면 rectify를 선택할 수 있다. fix가 실제적인 수리와 교정을 폭넓게 나타낸다면, resolve는 문제나 분쟁이 해소되었다는 결과에, rectify는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행위에 무게를 둔다. 뜻과 쓰임을 살피지 않고 동사를 바꾸어 쓰면 문장의 자연스러움과 정확성을 모두 잃을 수 있다.

의사에게 이러한 동사의 차이는 작문상의 기교에 그치지 않는다. 의사는 논문과 가이드라인을 읽고, 환자의 말을 해석하고, 의무기록을 작성하며, 진단과 예후를 설명한다. 논문에 나타난 관련성을 인과관계로 확대하지 않고,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기록하며, 치료의 효과와 한계를 알맞은 무게로 설명하려면 표현을 세심하게 가려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The biomarker predicted the disease라는 문장은 그 생체표지자가 질병의 발생을 예측했다는 뜻이다. 이를 The biomarker caused the disease로 바꾸면 예측에 관한 진술은 인과관계에 대한 주장으로 달라진다. The treatment reduced the risk of disease는 치료가 질병 위험을 낮추었다는 뜻이다. 한편 연구 결과가 위험의 일부 감소만을 보여주었는데도 이를 The treatment eliminated the risk of disease로 바꾸면,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주장이 된다. 동사도 근거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동사 하나를 잘못 갈아입은 문장은 연구 결과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 그 문장을 받아든 환자에게는 지나친 기대나 불필요한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

환자를 목적어로 삼을 때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fix한다고 말하면 환자는 고장 난 기계처럼 들릴 수 있다. 환자를 manage한다고 하면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불편함이 남는다. 그래서 manage the disease, modify the risk, support the patient처럼 동사에 맞는 목적어를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동사의 대상으로 놓았는지에는 질병과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의 관점이 담긴다.

영어 문장이 타동사라는 옷을 갈아입는 과정은 어휘력의 과시가 아니다. 상황과 감정, 행위의 방식과 결과를 하나의 단어에 압축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화려하고 어려운 동사가 언제나 좋은 옷도 아니다. 문맥과 맞지 않는 정장은 잘 맞는 일상복보다 어색하다. 근거보다 강한 동사를 입은 문장은 사실을 과장하고, 환자를 부적절한 동사의 목적어로 삼은 문장은 한 사람을 질병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제 몫을 다하는 문장은 가장 강한 동사를 고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 상황에 가장 정확한 동사를 고르는 데서 나온다. 환자의 증상과 징후에서 중요한 단서를 가려내듯, 문장에서도 사실에 가장 잘 맞는 동사를 찾아야 한다.

문장의 옷장을 채우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타동사를 외우는 것보다, 각각의 옷이 언제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알아보는 안목이다. 이러한 언어적 안목은 의사가 환자의 말을 증상 목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한 사람의 경험과 삶의 맥락 속에서 읽게 한다.

의사의 언어 훈련은 의료를 문학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기른 감각은 문학을 읽을 때도 작동한다. 작품 속 통증과 쇠약, 의사와 환자의 대화에서 질병을 살아 내는 인간의 경험을 읽게 된다. 문학의 의료화는 작품 속 병명을 다투는 일이 아니다. 문학 속 몸과 질병, 고통과 죽음을 의학의 지식과 경험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작품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문학을 읽으며 익힌 언어와 서사의 감각은 다시 진료실로 돌아온다.

의료의 문학화와 문학의 의료화는 한 벌의 젓가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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