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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법 '설명의무 7일·중대과실 12개' 곳곳이 쟁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의료사고 설명 의무의 범위와 시점, 형사특례 적용 기준 등을 둘러싼 법적 쟁점이 잇따라 제기됐다.
법 개정의 취지는 고위험 필수의료에 대한 형사책임 부담을 덜어주고 환자와 의료인 간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하위법령의 세부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임상현장의 불안을 키우고 위험한 환자를 기피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한국조정학회는 11일 고려대학교 CJ법학관 베리타스홀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과 발전방향을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개정법의 세부 쟁점과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7일 이내 설명 기산점범위 논란안 날 해석 두고 의견 분분
개정법은 사망이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중증장애,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관련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사고 발생 사실을 안 날부터 7일 이내 사고의 경위와 내용, 사후 조치 등을 설명하도록 의무화했다.
백경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료분쟁조정위원장)는 발제에서 이번 설명 제도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위한 기존의 사전 설명의무나 요양지도 설명의무와 달리, 사고 이후 소통을 통해 의료분쟁을 예방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짚었다.
백경희 교수는 사고 발생 즉시 그 사실을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사망이나 장애가 의료행위에 기인한 것인지 불가피한 질환 경과인지 판단하려면 임상적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며 어느 시점을 안 날로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말했다.
설명 범위인 사고 경위내용사후 조치에 대한 불확실성도 제기됐다. 사고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 어느 수준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다.
패널토의에 참여한 이동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조정위원은 해외 디스클로저 제도가 조사사과보상재발방지까지 포괄하는 것과 달리, 국내법의 7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고려하면 초기 단계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강윤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은 제도 취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개정법은 설명 과정에서 표한 위로나 유감이 민형사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규정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법적 책임 인정으로 해석될까 우려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백 교수는 의료인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의료기관 지원팀의 역할은 무엇인지 세부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용어 정립부터 재검토해야중대과실 12개 확대 적용 경계
현장 전문가들은 법 개정의 핵심 취지인 필수의료 인력 보호를 위해서는 의료사고와 의료과실을 구분하고, 중대한 과실의 판단 기준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동현 차의과대학교 차병원 원장은 패널토의에서 특히 의료사고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에서는 의료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error), 과실(negligence), 의료과오(malpractice) 등을 구분해 사용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의료사고라는 표현이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과 좋지 않은 결과를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의료인의 잘못을 전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차동현 원장은 우리나라는 의료사고라는 말 자체가 의료인이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의료행위의 결과만으로 의료사고와 의료과실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행위에는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과 위험이 존재하는 만큼, 의료진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 당시 임상 상황에서 허용될 수 있는 위험과 오차의 범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원장은 아주 숙련된 의사가 수술할 수도 있고 숙련되지 않은 의사가 수술할 수도 있다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는 의대생이나 전공의가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면서 배우는 과정도 필요하다며 그런 오차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개정법의 중대한 과실 12개 유형과도 연결된다.
개정법은 기본적 안전관리 의무의 중대한 위반, 의료기구나 이물질의 체내 잔존, 전공의 등에 대한 감독의무 위반, 진료지침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 잘못된 투약수혈수술 등을 중대한 과실의 구체적인 유형으로 규정했다.
차 원장은 12개 항목은 너무나 확대 적용될 확률이 높다며 이것을 줄이지 않으면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필수의료 붕괴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진 고려의대 교수(소화기내과) 역시 중대한 과실 12개 항목과 환자안전 시스템 간 충돌 가능성을 문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감정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12개 중대과실 항목에 있는 내용들은 병원에서 환자안전 지표로 상당히 많이 보고받는 것들이라며 이런 것들이 환자안전을 위해 개선해야 할 지표이지, 이것을 중대한 과실로 처벌할 항목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이 사고를 자율적으로 보고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환자안전 시스템과 형사책임을 묻는 제도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비처벌 원칙 아래에서 보고를 열심히 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놨는데, 이것이 법으로 중대과실로 규정된다면 보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안전을 위해 적극적인 보고를 유도해온 상황에서 동일한 행위가 형사책임을 묻는 중대한 과실로 해석될 경우,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자율적인 사고 보고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하위법령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위험한 환자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상황을 막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이런 결론에 이르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하위법령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의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중증도 분류 기준만으로는 실제 임상현장을 충분히 포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교수는 실제로 현장에서 과연 K-TAS나 K-PAS에 적용되는 환자들만 문제가 될 것이냐고 반문하며 계획된 수술이나 응급상황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의료행위를 고려한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행위를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는 결과를 알고 난 뒤의 판단과 당시 의료진이 실제로 마주했던 임상적 상황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심의 과정에서 행위 당시의 임상적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책임보험감정위원 확대 등 과제 산적보건복지부 11월까지 하위법령 확정
개정법에는 책임보험 의무가입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범위 확대, 조정 절차의 자동개시 대상 확대 등도 담겼다.
보건의료기관 개설자는 책임보험 또는 책임공제에 가입하도록 하고,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대상도 기존 분만에서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따른 사고까지 확대했다.
다만 책임보험 가입 대상과 보장 범위, 보험료 부담 등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기존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폐지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보상 공백을 어떻게 보완할지도 과제다.
감정위원 확대에 따른 전문성 확보도 쟁점으로 꼽혔다.
개정법은 감정위원 확대와 함께 의료사고의 발생 원인이 2개 이상의 진료과목과 관련된 경우 관련 진료과목의 감정위원 또는 자문위원 의견을 듣도록 하는 등 감정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중대한 사실관계 변경이나 새로운 자료 제출 등이 있을 경우 재감정이나 추가감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감정위원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감정 결과가 형사책임과 민사상 책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위원별 전문성과 경험 차이에 따른 판단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절차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현장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하위법령을 통해 세부 기준을 다듬겠다는 방침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에는 의료사고 지원팀을 구성하도록 하고, 중소 의료기관에는 설명 의무 이행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보미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사무관은 구체적인 조문 작업에 들어가면서 7일의 기산점, 설명 완료 및 입증 기준, 사망의식불명 시 설명 대상자 설정 등 수많은 쟁점이 확인됐다며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의 의료사고 지원팀 구성 및 중소 병원 대상 멘토링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는 11월까지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제정하고, 중대한 과실 12개 유형의 구체적 판단 기준과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 책임보험 보장 범위 등에 대해 의료계와 환자단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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