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약을 주지 않는 진료가 가장 어렵다
오늘(3일) 오전 열 명 남짓한 아이를 보았다. 처방전은 한 장도 쓰지 않았다. 코막힘, 마른기침, 맑은 콧물. 약이 필요한 아이는 없었다. 마지막 진료에서 약은 필요 없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미국에서 오신 어머니가 답했다. 한국에 와서 항생제를 이렇게 많이 쓰는 걸 보고 놀랐어요. 약이 필요 없다고 말해준 의사는 처음입니다. 부끄러운 칭찬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 우리 소아의료 정책은 접근성이라는 한 축에만 자원을 쏟고 있다. 야간휴일 진료기관 확충은 필요할 수 있으나, 수요 관리와 질 관리를함께 설계하지 않은 접근성 확대는 결국 과잉 진료와 항생제 남용을 제도적으로 보조하는 것으로 끝난다.
숫자를 보자. OECD Health Statistics 2025 기준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외래 이용은 18회로 회원국 1위이며, OECD 평균 6.5회의 2.8배다. 같은 통계에서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2.7명으로 평균 3.9명에 못 미친다. 수요는 세계 최고, 공급은 평균 이하다.
처방 지표는 더 나쁘다. 관계 부처 합동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26~2030)]에 따르면 2~5세 소아의 항생제 사용량은 110.30 DID(인구 1000명당 1일 의약품 사용량)로 전 연령대 최고다. 급성 하기도 감염 항생제 처방률은 2022년 54.06%에서 2024년 61.86%로 올랐다. 급성 상기도 감염 처방률도 2024년 진료분 기준 전체 평균 43% 수준으로 제2차 대책이 내걸었던 목표치 22%의 두 배다. 반면 코크란 리뷰 최신판(2025년 11월 개정)은 감기와 급성 화농성 비루에 항생제의 이득은 없고 이상반응만 늘어난다고 다시 결론지었다. 근거는 20년째 같은 자리에 있는데 처방만 반대로 간다.
반론은 분명하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수행한순천향대 연구(2026)는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지역의 경증 소아 응급실 이용률이 인구 1000명당 52.67건으로 미운영 지역(95.06건)의 절반 수준이며, 약 76만 8천명의 응급실 수요를 외래로 대체해 연 982억 원을 절감했다고 추계했다. 응급실 과밀 완화라는 목적은 달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추계는 두 가지를 증명하지 못한다.
첫째, 지역 단위 관찰 비교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소아 인구와 의료 공급이 많은 지역에 우선 지정된다. 배치 자체가 결과와 얽혀 있다. 둘째, 더 결정적으로 이 계산은 응급실 1건이 외래 1건으로 치환된다고 가정한다. 원래라면 집에서 하룻밤 지켜봤을 아이의 새로 생긴 방문, 즉 유발수요는 분모에 들어 있지 않다. 국내에서 야간 소아진료 확대의 순수 유발수요를 분리 추정한 연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근거 없음이다. 근거 없는 항목을 0으로 놓으면 절감액은 언제나 커진다.
질(質)은 더 불편하다. 야간휴일 진료의 항생제 처방률은 국제적으로 주간보다 낮지 않다. 스웨덴 연구는 연령성별진단을 보정한 뒤에도 야간 진료의 처방 위험비가 1.09였고, 영국에서는 야간 진료 건수가 줄어드는 동안에도 항생제 처방은 늘었다. 주목할 것은 덴마크 자료다. 같은 야간 진료체계 안에서 대면 진료의 항생제 처방률은 26.1%, 전화 상담은 10.7%였다. 분류(triage)가 처방을 절반 이하로 줄인 것이다. 유럽의 야간진료는 전화로 먼저 걸러내고, 필요한 사람만 대면한다는 설계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설계 없이 문만 열었다.
그런데 정부는 더 늘리겠다고 한다. 달빛어린이병원은 2023년 말 57개소에서 2026년 150개소 안팎으로 3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6년 4월 정부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없는 취약지 14개소에 기관당 연 1억 2천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별도 사업을 시작하며 하반기 추가 공모를 예고했고, 6월에는 병원급에 약 5만원의 소아전문관리료를 신설하고 소아 인구가 적은 시군구에는 야간진료 수가를 30% 가산하기로 했다. 5월에는 응급의료법을 고쳐 지정 권한을 시장군수구청장까지 내렸다.
나는 이 확대가 시간이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고 본다. 이유는 넷이다.
첫째, 되돌릴 수 없다. 지정 권한이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간 직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확충은 곳곳의 공약이 됐다. 의료자원 배치가 임상적 필요가 아니라 선거 주기로 결정되기 시작하면, 한번 연 문은 닫지 못한다. 축소는 언제나 의료 후퇴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둘째, 스스로를 강화하는 고리가 돌기 시작한다. 접근성 확대 이용 증가 여전히 부족 추가 확대. 1인당 외래 18회라는 세계 1위 수치는 이 고리가 수십 년 작동한 결과물이다. 지금 소아 야간진료에서 우리는 같은 고리를 처음부터 다시 돌리고 있다.
셋째, 인력 총량은 늘지 않는다. 기관 수는 3년 만에 2.6배가 됐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그만큼 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는 원장이 혼자 야간을 감당하는 사례가 보고된다. 야간에 사람을 배치하면 주간이 얇아지고, 피로한 진료는 설명이 아니라 처방으로 수렴한다. 안전과 질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넷째, 재정은 누적되는데 질 지표는 비어 있다. 운영비 지원심야 가산관리료 신설이 겹겹이 쌓이지만, 지정재지정 요건에 항생제 처방률 같은 질 지표는 들어 있지 않다. 성과지표가 개소 수뿐이면 늘어나는 것도 개소 수뿐이다. 합계출산율은 2025년 0.80명으로 2년 연속 반등했으나 여전히 OECD 최하위다. 기관은 늘고 아이는 크게 늘지 않는 구조에서 각 기관은 생존을 위해 진료량을 확보해야 한다. 그 압력의 종착지는 다시 과잉이다.
지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진료 역량이 아니라, 늘어난 뒤에는 줄일 수 없는 고정비와 기대치다.
제언은 넷이다. 확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자는 것이다.
첫째, 확대를 조건화하라. 지정재지정에 항생제 처방률 등급과 처방건당 약품목수를 연동해야 한다. 심평원은 이미 2026년부터 급성상기도감염 1등급을 20% 이하로 명시했다. 지표는 있는데 정책에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둘째, 대면 앞에 분류를 놓아라. 야간휴일 소아 상담비대면 분류 체계를 공적으로 운영하면 접근성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대면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설명에 값을 지불하라. 약을 주지 않고 5분을 설명하는 진료가 3분 만에 처방하는 진료보다 손해인 구조에서 처방은 줄지 않는다. 이것은 의사의 양심 이전에 수가 설계의 문제다.
넷째, 국민에게 정확히 말하라. 감기에 항생제는 듣지 않는다는 문장은 진료실이 아니라 국가가 반복해야 할 말이다.
문턱을 낮추는 일과 문턱을 없애는 일은 다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이 아니라, 그 문을 통과한 아이가 불필요한 약 없이 돌아갈 수 있는 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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