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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사법 체계의 '인질'이 된 한국 의료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2026.09.02 10:24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사고로 인한 경찰의 검거 사례는 연간 700건이 넘는다. 다른 선진국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규모다.

환자단체나 일부 변호사단체는 검거 건 중 연간 2040건이 최종 형사 처벌로 귀결되기에 별것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제기한다. 활동 의사 수를 감안하면, 선진국의 50배 이상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의 위험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의료계는 현재의 우리나라 의료사고에서 민형사 동시 소송에 대한 법적,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강한 불만과 의구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민형사 투 트랙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로는 민사소송만으로 과실 입증이 어려워 형사고소를 먼저 또는 동시에 진행해 경찰과 검찰의 강제 수사력을 통해 의무기록, 관계자 진술, 감정자료 등을 확보하고 이를 민사 배상에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이미 의료분야의 형사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환자 측이 형사절차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분명 다른 어떤 나라도 이와 같은 독특한 방식의 해결책은 찾아보기 힘든데, 우리나라는 이를 의료사고 소송에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제적인 통상적 법조 관행에서도 크게 벗어난 것이다.

형사법과 민사법은 확연히 목적이 다르다. 민사는 누가 손해를 부담하고 피해자를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인데 반해, 형사는 국가가 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행위자를 처벌할 가능성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상을 위해 형사고소로 민사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국가의 수사권으로 확보하는 것은 형사사법의 본래 목적이 아닌 다른 특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형사절차를 악용하는 것이다.

국가의 형벌권을 개인의 증거 수집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의사에게 불리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소송 제도의 남용이라는 윤리적 문제가 결부해 있는 것이다.

■ 손해배상 청구용 국가 강제 수사권 악용 사법 시스템 어떤 의료인도 자유롭지 않아
경찰과 검찰은 압수수색, 소환, 조사 등 개인이 갖지 못하는 국가의 강제력(coercive power)을 행사한다. 그 자체만으로 가혹할 수 있는 강제력은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해 정당화되는 것이지, 본래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증거 수집을 대신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쉽게 하기 위해 국가의 형벌권과 강제 수사권을 동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사고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주장하며 형사소송의 당위성을 제기한다. 환자는 전문지식도 부족하고, 사고 당시 의료진의 판단 과정도 알기 어렵다. 즉, 정보와 증거 수집 능력에서 비대칭 면이 크다.

따라서 민사 절차가 환자에게 충분한 증거 접근권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환자가 형사고소를 이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제도에 대한 대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수사기관이 복잡한 의료사고에 대한 명쾌한 판단을 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는데 실제로 어떤 나라의 수사기관도 의료사고에 대한 판단은 정확하고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연구에서도 민사에서 환자에게 과실과 인과관계의 입증 부담이 있는 반면에 형사절차에서는 수사기관이 증거를 확보한다는 구조적 차이를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민사적 피해구제와 증거 개시제도가 불충분한지 환자에게 형사절차가 증거 획득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형사절차는 의사의 자기 방어권을 작동시킨다. 법적 면죄부를 위해 오히려 진실 발견을 방해하는 역설도 성립하는데, 이 점은 환자 안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환자 개인을 위한 행동이 추후 환자 집단의 해가 되는 것이고, 결국 공공의 복리와 안전의 증진과는 거리를 멀게 할 것이다. 의료진이 자신의 진술이 형사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동은 법적인 자기방어용으로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사고의 솔직한 보고를 통해 정확한 원인분석을 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책임의 우려로 변호사 자문에 의한 방어적 진술로 정보 최소화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임상 오류의 형사적 범죄화가 자발적 보고를 위축시켜 환자 안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의도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형사 수사를 이용했는데, 결과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방어적 의료 문화를 조장하는 예상치 못한 역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형사고소가 배상의 협상 수단이 되는 경우에는 더 큰 윤리적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합의를 전제로 형사고소를 취하하는 구조가 일반화되면 형사책임과 민사적 배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피해자는 신속한 보상을 얻는 현실적 수단이지만, 제도적으로는 형사처벌의 위협이 민사적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

■ 민형사 투 트랙 필요한 증거 획득에 매우 용이 결국 의료와 환자 안전지대 모두 붕괴
동일한 의료과실이라도 형사절차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배상액이나 합의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와 비례성(proportionality)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마치 의료인이 법에 의해 인질이 된 셈이다. 가장 중요한 윤리 원칙은 비례성인데 의료에서 모든 과실을 같은 수준의 도덕적 잘못으로 볼 수는 없다.

사고 내용은 단계에 따라 불가피한 부정적 결과(adverse outcome), 단순 실수(human error), 일반적 과실(ordinary negligence), 중과실(gross negligence), 무모한 행위(reckless conduct), 고의적 해악(intentional harm) 등 상황에 따라 모두가 다를 수 있는데, 이들을 하나의 형사책임의 틀로 처리하면 도덕적 비난 가능성의 차이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현대의 의료사고에서 Just Culture의 개념은 단순한 실수(human error)와 무모한 행위(reckless behavior)를 뚜렷하게 구분한다.

의료인의 모든 오류를 면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고의적이며 무모한 행동 등과 일반적인 의료 오류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다.

형사책임을 제한한다고 해서 책무성(accountability)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종류를 행위의 성격에 맞추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는 배상, 진상규명, 환자 안전, 전문직 규율, 형벌이 하나의 사건 안에서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선진국은 의료사고에서 환자의 신속하고 공정한 배상,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독립적 조사, 의사의 전문성과 직무 적합성 판단의 전문직 규제, 범죄적 행위 판단의 각기 다른 기능을 보다 정교화하고 분화해 형사소송은 극히 예외적인 사건에 국한한다.

민형사를 동시에 제기하면 배상과 증거 획득이 쉽다는 주장이 우리나라 의료분쟁의 현실과 제도상에서 정당화할 수 없다.

일반적인 의료과실까지 형사절차에 의존하게 되면 형벌의 비례성, 절차적 정의, 국가 강제력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의료인의 오류 보고와 조직의 학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억제하고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환자 안전이라는 더 큰 공익을 훼손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실제로 우리 사회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법 체계의 괴물과 급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의료 붕괴 현상이다.

과거에 일본 역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문제가 상당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2015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의료사고 조사 제도는 매우 명확한 철학을 채택했다.

이후 일본에서 의료 형사 범죄화는 매우 드문 일이 됐다. 후생노동성은 제도의 목적을 안전한 의료를 위한 의료사고의 재발 방지라고 분명하게 명시했다.

의료사고 조사를 하면 현장 의사의 책임 추궁으로 연결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후생노동성은 이 제도의 목적은 책임 추궁이 아니라 재발 방지라고 명확하게 답한다.

그리고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의료 종사자에게 귀속시키기보다 구조적인 원인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하고 답을 찾게 한다. 이것이 일본의 의료체계가 선진화된 모습임을 알게 해준다.

일본은 심지어 WHO의 학습 시스템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용해 후생노동성은 의료사고에 대한 보고 체계를 두 종류로 구분한다. 그것은 책무계(Accountability system)와 학습계(Learning system)인데, 일본의 의료사고 조사 제도는 후자인 학습계라고 명시하고 있다.

학습 시스템에는 비 처벌적(non-punitive), 비밀보장, 독립적이라는 성격의 중요성을 부연하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이웃 나라 일본의 선진 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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