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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의료화, 의료의 문학화"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2026.08.31 12:55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
이호준(더베스트내과 심장클리닉)

문학의 의료화는 필요한가? 의료의 문학화는 무슨 의미이며 과연 가치 있는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 오늘의 의사를 생각해 보자. 그 의사는 이반 일리치의 정확한 진단명과 사망 원인이 궁금할 것이다.

커튼을 달다 옆구리를 부딪힌 일과 그가 호소한 옆구리 통증, 입안의 이상한 맛,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를 근거로 오늘의 의학이라면 어떤 진단을 내릴지 헤아려 볼 수 있다.

작품 속 의사들이 거론한 충수염, 만성 카타르, 유주신(floating kidney) 대신 혈액암이나 췌장암 같은 악성질환을 잠정적인 병적 실체로 추정할 수 있다. 나아가 이반의 신체적 통증에 죽음에 대한 공포, 가족의 외면, 의료진과의 소통 단절과 실존적 고립이 겹쳐 있었다는 점을 들어 그의 고통을 총체적 고통(total pain)의 전형으로 읽어 낼 수도 있다.

이처럼 문학 작품 속 질병의 모습을 오늘의 의학으로 해석하는 것, 이것은 문학의 의료화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작품 속 의사들은 왜 환자의 고통보다 진단명에 관심을 두었는가? 오늘의 의사는 과연 다른가? 죽음을 앞둔 사람과 죽음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은 과연 배려인가? 환자는 왜 가족과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철저히 혼자였는가? 문학이 그 시대와 오늘의 의료 관행을 함께 되돌아보게 한다면, 그것은 의료의 문학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의료화는 필요하다. 질병과 통증, 노화와 죽음은 오래전부터 문학의 중요한 소재였다. 결핵과 역병, 광기와 중독, 장애와 치매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당시의 지식과 사회적 편견, 무엇보다 환자가 처했던 구체적 현실이 드러난다. 문학은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진단 가설을 확정된 사실로 여기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과거의 의학에 경멸이나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폭력이며 문학에 대한 훼손에 다름 아니다. 문학 속 인물들의 질병을 추정할 수는 있지만, 해석이 아닌 판결을 한다면 선을 넘는 것이다.

반대로 의료의 문학화란 의료인이 환자와 질병을 좀 더 문학적으로 읽자는 의미다. 검사 결과를 수치로만 소비하지 않고, 그 수치 속 인간과 시간, 그리고 맥락을 함께 읽어 내자는 것이다.

같은 혈압, 같은 혈당, 같은 콜레스테롤 수치라도 그것이 각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같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 약 한 알은 예방의 수단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제 환자가 되었음을 상기시키는 표식이 된다. 의사가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라고 설명하는 수술을, 환자는 자신의 고유한 생활 방식을 포기하는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 의사가 모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히 아니다. 환자 말의 뉘앙스를 이해하며, 의학적 사실이 그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헤아릴 수 있으면 될 것이다. 환자가 말한 증상뿐 아니라 말하지 못한 두려움까지 헤아리고, 자신의 설명이 환자에게 어떻게 들릴지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으면 족하다.

의료에서 문학적 감수성이란 환자를 섣불리 단순화하지 않는 능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문학화는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첫째, 질병 뒤의 사람을 보게 한다. 의무기록에는 흉통, 호흡곤란, 불면 같은 증상이 적힌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는 몇 개의 항목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문학적 감수성은 환자를 질병의 보유자가 아니라 저마다 사정이 있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둘째, 의료의 언어를 경계하게 한다. 예후가 나쁘다, 치료에 순응하지 않는다, 더 해 줄 것이 없다는 말은 진료에는 편리하지만 환자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의사가 무심코 선택한 단어가 사실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환자를 침묵시키거나 때로는 절망하게도 만든다.
의료의 문학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떤 후과를 남기는지 돌아보게 한다.

셋째, 불확실성을 견디게 한다. 의학은 완전할 수 없는 지식으로 개별 인간에게 특정한 행동을 권해야 하는 일이다. 임상시험의 평균적인 결과가 눈앞의 한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선의로 시작한 치료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문학은 명쾌한 결론을 서두르지 않은 채 모순과 양가성을 인정하고 사고와 실천을 이어 가는 훈련이 된다.

넷째, 임상을 넘어 과학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데이터가 쌓인다고 발견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결과 앞에서 느끼는 의아함과 궁금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조절 T세포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카구치 시몬은 면역을 공격과 방어만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병원체를 공격하는 면역계가 왜 자기 몸의 정상 조직은 공격하지 않는지, 이미 시작된 면역반응은 어떻게 적절한 선에서 억제되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는 공격과 자제의 균형을 조절하는 세포가 따로 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게 면역은 전쟁이라기보다 협상이었다. 발견이 비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비유로 말미암아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난 질문이 가능했다.

의료의 문학화가 근거를 서사로 대신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럴듯한 이야기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치료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문학적 감수성이 과학적 검증에서 벗어나는 순간, 의료는 미신과 선동이 된다. 의료의 서사는 항상 근거에 기반하고 반론에 열려 있어야 한다.

문학은 의학이 치료해야 할 환자가 아니다. 작품 속 인물을 진단하고 작가의 삶을 병력으로 재구성한다고 해서 더 깊은 해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의학은 문학에 인간의 몸과 질병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작품의 의미를 판결할 수는 없다.

문학의 의료화가 작품 속 질병을 의학으로 읽는 것이라면, 의료의 문학화는 질병 속 인간을 문학으로 읽는 것이다. 전자는 문학을 더 풍부하게 하고, 후자는 의료를 더 섬세하게 한다.

문학의 의료화와 의료의 문학화는 한 벌의 젓가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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