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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이력 공개? 법학계서 '법체계 정합성' 지적
환자가 의료인을 선택하기 전 해당 의사의 의료사고 관련 확정판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의료사고 이력 공개제 도입 논의가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이 같은 입법이 최근 우리나라 의료법제가 지향해 온 방향과 충돌할 수 있다는 법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환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와 별개로, 의료사고를 형사처벌 중심으로 다루기보다 책임보험과 분쟁조정, 사고 보고와 재발 방지를 통해 해결하려는 최근의 법제 흐름과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병현 고려대 로스쿨 교수(한국조정학회장)는 지난 8월 8일 법률신문 기고를 통해 의료사고 이력 공개제 논의를 단순한 정보공개 차원이 아니라 우리 의료법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민의힘 이소희 의원은 최근 의료사고 이력 공개제 도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법원의 확정판결을 통해 중대한 과실이 확인된 경우에는 환자가 해당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제도 도입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유병현 교수는 최근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을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의 대응 방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짚으면서, 이소희 의원이 추진 중인 법안이 최근의 법제 흐름과는 배치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27년 시행되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공소 제기를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위험 필수의료의 경우 책임보험 가입과 사후 설명의무 이행 등을 전제로 공소 제기를 배제하고, 일반 의료행위에서도 책임보험 가입과 설명의무 이행, 의료분쟁조정 성립 등을 전제로 환자의 의사에 반한 공소 제기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유 교수는 이 같은 제도 변화가 의료사고를 무조건 형사절차로 연결하기보다 보험과 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보상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법정책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봤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료사고를 곧바로 형사절차로 연결하기보다 책임보험과 분쟁조정, 성실한 설명을 통해 해결하도록 법정책의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의료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사고 발생 이후 국가 대응에서 형사처벌보다 환자의 신속한 권리구제와 분쟁의 합리적 해결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환자안전 분야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현행 환자안전법은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를 보고하고 원인을 분석학습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 체계를 두고 있다. 사고를 숨기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집중하기보다 의료현장에서 사고를 공유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환자안전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접근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환자안전 정책의 핵심 원리로 공정문화(Just Culture)를 제시했다.
공정문화는 의료인의 잘못을 무조건 면책하는 개념이 아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에는 책임을 묻되, 선의의 실수는 사고 보고와 원인 분석, 시스템 개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안전법의 보고학습시스템과 함께 2027년 시행 예정인 환자기본법 등을 통해 이 같은 환자안전 중심의 법체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의료분쟁조정법과 환자안전법, 환자기본법을 개별적인 제도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신속한 권리구제와 환자안전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하나의 법정책적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인의 의료사고 확정판결 이력을 별도로 공개하는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존 법제와 어떤 관계를 갖게 될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유 교수의 핵심 진단이다.
유 교수는 의료사고 이력 공개 입법은 단지 정보공개의 범위를 넓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형사처벌 중심에서 조정과 회복, 보고와 학습으로 전환한 국가 법정책의 일관성을 흔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알권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미 국회가 의료분쟁조정법을 통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하고 분쟁조정보험을 통한 피해구제를 강화한 상황에서 별도의 공개제도를 추가할 경우 정책적으로 상반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환자의 알 권리와 생명신체의 보호는 매우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고 전제하면서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개별적인 정책 목적뿐 아니라 기존 법체계와의 조화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입법의 일관성과 체계정당성은 법치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라며 기존 의료법제가 구축해 온 분쟁조정환자안전 중심의 체계와 새 제도가 충돌하지 않는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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