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약 배송, 약계판 의대증원" 권영희 약사회장 최대 시험대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정부가 약 배송 확대 가능성을 공식 논의하면서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이 취임 이후 최대 현안과 마주하게 됐다.
약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향후 약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의약품 유통조제복약지도 체계와 약사의 역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약계판 의대증원에 비유하기도 한다.
다만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약 배송 확대 방안을 확정한 것은 아닌 상황. 이에현 단계에서부터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약사회의 대응을 극단적인 내부 갈등으로 연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취임한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선거 당시부터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을 약사직능을 위협할 수 있는 핵심 현안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대응을 공약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강한 약사회를 내건 만큼, 향후 정부와 플랫폼 업계의 논의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회원들의 의견을 결집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정부, 약 배송 확대 논의 공식화플랫폼은 전면 허용 요구
중소벤처기업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는 지난 20일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의약품 유통시장 구조를 정비하는 한편, 비대면 약 배송 확대와 약국 재고정보 제공 체계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단순히 배송 범위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제약 품질관리, 환자의 실제 수령 여부 확인, 복약지도 등 안전관리 체계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12월 비대면진료 제도 정식 시행을 앞두고 약 배송 확대를 정책 과제로 공식 언급했다는 점에서 약사회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플랫폼 업계는 즉각 환영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정부의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 대상 약 배송 확대 추진을 환영한다며 현재 도서벽지 거주자와 취약계층 등 일부 대상자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약 배송을 모든 비대면진료 이용자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닥터나우 역시 그동안 운영한 약 115만 건의 약 배송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 설계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플랫폼 업계가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앞세워 약 배송 전면 허용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단체에서도 배송 확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컨슈머워치는 지난 21일 논평을 통해 일반 처방약의 경우 안전기준을 전제로 소비자가 직접 수령과 배송 가운데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안전 문제를 이유로 배송 자체를 일률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실제 이용자 조사에서도 배송 확대에 대한 요구가 확인됐다.
한국리서치가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의 의뢰로 비대면진료 이용자 20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1%가 약국 방문 수령 과정에서 불편을 겪었고, 48.8%는 이른바 약국 뺑뺑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품 수령 자체에 실패했다는 응답도 23.4%였다.
이에 따라 87.5%가 의약품 배송 허용에 찬성했으며, 전면 허용 55.0%와 야간휴일 등 제한적 허용 29.9%를 합쳐 84.9%가 현행보다 배송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해당 조사는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의뢰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조사 결과를 전체 국민 여론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도 제도 일관성 지적약사회와는 다른 논리
의료계에서도 약 배송을 둘러싸고 약사회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비대면진료 법안 논의 당시 약 배송이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제도의 일관성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비대면진료는 허용하면서 약 수령은 대면 방문을 전제로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약사회의 약 배송 반대 논리 자체에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고도 밝혔는데,약 배송의 안전성 문제를 인정하면서도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제도 안에서 의약품 수령만 대면 방문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일관된 제도 설계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약사회 법 시행 전 사회적 합의 뒤흔들어 권 회장도 대회원 담화
대한약사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약사회는 정부 발표 다음 날인 21일 성명을 통해 법 시행도 전에 사회적 합의를 뒤흔드는 정부의 졸속 약 배송 확대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민관협의체 참여를 전면 거부했다.
약사회가 문제 삼는 핵심은 비대면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약 배송 대상을 제한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도서벽지 거주자와 취약계층 등으로 의약품 인도 대상을 제한한 것은 의약품 오남용을 막고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다시 확대하는 것은 입법 취지를 흔드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공적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등 관련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배송 확대를 논의하는 것도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비급여 의약품의 무분별한 처방배송이나 의약품 변질 문제 등에 대한 안전대책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권영희 회장은25일 대회원 담화문을 내고 약 배송 확대에 대한 약사회의 대응 원칙을 재차 밝혔다.
권 회장은 현재 법이 바뀐 것도, 약 배송 전면 확대가 결정된 것도 아니라며 우선 개정 의료법을 시행하고 안전성과 실효성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특히 법 시행 전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되, 하위법령 마련과 안전한 처방조제, 약사 주도의 의약품 인도체계 등 제도를 안전하게 시행하기 위한 논의에는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의 협의 자체를 전면 거부하는 것과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면서 향후 대응의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탄핵론은 선 긋기비대위 구성권 회장 역할 놓고 내부 논의
일부에서 권영희 회장에 대한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약계 내부에서는 이를 약사사회 전체의 분위기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약계 관계자는 탄핵 이야기는 강성 몇 명의 발언이지 약계의 중론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대신 현재 내부에서는 약 배송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여부와 운영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비대위가 구성될 경우 권영희 회장이 위원장을 맡을 것인지, 그리고 비대위에 예산 사용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위원장을 권 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맡고, 여기에 예산 사용 권한까지 부여된다면 현 집행부의 대응 체계와 리더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약사회가 정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인지와 함께, 향후 대응의 책임과 권한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현 시점의 약사회 내부 논쟁을 단순히 권영희 회장에 대한 불신이나 탄핵 움직임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약 배송 확대라는 정책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체계와 리더십의 역할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에서도 보도자료 하나로 과도한 반응 지적
정치권에서도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대해 정부의 보도자료 하나를 두고 너무 과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약 배송 확대를 벌써부터 전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의약품도매업 금지 규정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계의 반발을 의식한 산업부처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를 근거로 정부가 전면적인 약 배송 허용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제한적 범위의 약 배송을 규정한 의료법이 아직 시행도 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일단 기존 법이 시행돼 실제 현장에서 문제가 있는지,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경험적 근거와 데이터가 축적돼야 새로운 제도 개선을 논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 자체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지만, 그 논의 결과에 입법부가 기속될 이유는 전혀 없다며 향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보건의료정책의 특수성과 공공성, 환자의 안전과 편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에게 약 배송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정부의 발표만으로 약 배송 전면 확대가 기정사실화됐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권 회장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논리가 맞붙는 상황에서 약사직능 수호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전성과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특히 정부와의 협의 자체를 거부할 경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약사회의 목소리가 약해질 수 있는 반면, 협의체에 참여할 경우 배송 확대 논의에 사실상 동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아직 법 개정과 국회 논의라는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향후 정부가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약사회가 어떤 대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갈등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취임 당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3년을 약속한 권 회장이 약 배송이라는 최대 현안을 두고 회원 결집과 대외 설득이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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