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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한 번의 사고, 세 번의 소송

우봉식 아이엠재활병원장(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2026.08.21 10:54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을 기대하며 고소를 남발하는 환자, 이미 형사판결이 무죄로 확정된 사건조차 일단 소를 제기하고 보는 건강보험공단과 민간 보험사의 관행은 공적 재정의 낭비이자 의료기관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다. ⓒ의협신문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을 기대하며 고소를 남발하는 환자, 이미 형사판결이 무죄로 확정된 사건조차 일단 소를 제기하고 보는 건강보험공단과 민간 보험사의 관행은 공적 재정의 낭비이자 의료기관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다. ⓒ의협신문

2022년 12월 6일 새벽 6시 21분. 교통사고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던 70대 중반의 노인 환자가 병동 3층 테라스 난간을 넘어 1층으로 추락했다. 난간 높이는 1.9미터.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다. 누군가 밀어서 떨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병동 간호사는 즉시 응급처치를 했고, 병원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3년 8개월에 걸친 소송이 시작됐다. 형사 1건, 민사 2건. 모두 병원과 의료진이 이겼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이겼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첫 번째 소송피고인 간호사 승소 후 끝내 퇴사
사고 2주 뒤인 2022년 12월 20일, 환자 보호자는 담당 간호사를 고소했다. 고소장에 손 글씨로 적힌 고소 이유는 이렇게 요약된다. CCTV상으로 환자가 난간을 넘어가려는 것을 네 번 정도 막았다가 결국 넘어갔으니 그 경위를 명백히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2023년 2월 13일, 검사는 그 간호사를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기소했다. 그리고 2년 넘는 지루한 소환 조사와 법적 공방이 오고 간 뒤 2025년 5월 15일에 1심 판결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검사는 기계적으로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같은 해 10월 15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기소부터 확정까지 2년 8개월. 사고 시점부터 따지면 2년 10개월. 그 기간 동안 간호사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했고, 병원은 간호사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간호사는 3년 가까이 형사소송 피고인으로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동안 수백 번도 더 그날 새벽을 되돌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죄 판결문은 그 3년을 돌려주지 않는다. 간호사는 항소심이 기각된 후 결국 퇴사했다.

소송 중에 날아온 병원비간병비 청구서
형사재판이 진행되던 2023년 5월 24일, 보호자는 병원 측에 5천여만 원의 병원비와 간병비를 청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석 달 뒤인 8월 22일에는 6400만 원을 청구하는 두 번째 내용증명이 도착했다. 두 번째 문서에는 병원이 가입한 배상책임보험 한도가 3천만 원이라는 점까지 적시되어 있었다.

가족의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환자가 다쳤고, 가족은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다. 그 심정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직 어떤 책임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병원을 상대로 배상보험 한도를 언급하며 치료비를 요구하는 문서가 반복해서 받게 되었을 때, 느꼈던 압박은 또 다른 차원이다.

두 번째 소송 국민건강보험공단 1억원대 구상금
형사소송의 판결이 확정된 것은 2025년 10월 15일이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10월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병원 측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1억 1204만 원. 여기에 지연손해금 연 12%가 붙었다.

건보공단의 구상권 행사는 법에 근거한 제도다. 제3자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급여 비용을 그 책임자에게 청구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는 정당한 장치다. 문제는 그 권한이 행사되는 방식이다. 이 사건은 형사 1심과 2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된 사안이었다. 법원이 두 차례에 걸쳐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판단이 확정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민사소송이 제기됐다.

결과는 2026년 7월 14일에 나왔다. 청주지방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원고 부담이었다. 건보공단은 항소를 포기했고, 2026년 8월 3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건보공단이 이 소송에 쓴 비용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다. 병원이 방어에 쓴 비용 역시 결국은 진료 환경 개선에 쓰여야 했을 돈이다. 아홉 달 동안 양쪽 모두 지출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기막힌 반전도 있다. 8월 10일자로 건보공단에서 1억 1204만원에 대한 구상금 독촉장을 또 보내온 것이다. 자신들의 항소 포기로 8월 3일에 민사 패소가 확정되었는데 말이다. 건보공단이 정신줄을 놓아도 한참 놓고 일들을 하는 모양이다.

청주지방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원고 부담이었다. 공단은 항소를 포기했고, 2026년 8월 3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공단이 이 소송에 쓴 비용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다. 병원이 방어에 쓴 비용 역시 결국은 진료 환경 개선에 쓰여야 했을 돈이다. 아홉 달 동안 양쪽 모두 지출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청주지방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원고 부담이었다. 건보공단은 항소를 포기했고, 2026년 8월 3일 1심 판결이 확정됐다. 건보공단이 이 소송에 쓴 비용은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다. 병원이 방어에 쓴 비용 역시 결국은 진료 환경 개선에 쓰여야 했을 돈이다. 아홉 달 동안 양쪽 모두 지출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사진=freepik] ⓒ의협신문

세 번째 소송 그리고 2주짜리 확정 채무 함정
건보공단 소송에서 병원이 승소한 것이 7월 14일. 그로부터 9일 뒤인 2026년 7월 23일, 이번에는 삼성화재해상보험이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소액사건으로 접수되었고, 법원은 곧바로 이행 권고 결정을 내렸다. 원고에게 청구 금액을 지급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하라는 내용이었다.

이행 권고 결정은 소장의 청구취지에 특별한 오류가 없는 한 원고의 주장만을 근거로 진행한다. 피고가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심리도, 변론도, 증거조사도 없이 그대로 채무가 확정된다는 뜻이다.

만일 병원장이 학회 일정으로 출장 중이었다면, 우편물이 다른 서류 더미에 섞였다면, 담당 직원이 그 문서의 의미를 몰랐다면. 형사 무죄와 민사 승소를 모두 받아낸 사건이 단지 2주를 놓쳤다는 이유로 확정 채무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기한 내에 대응했다. 그리고 2026년 8월 19일, 원고는 소를 전부 취하했다. 왜 제기했는지도, 왜 취하했는지도 설명은 없었다.

재활병원이 안고 있는 구조적 딜레마
이 사건은 재활의료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재활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기능을 회복시켜 일상 복귀를 하게 하는 것이다. 침상에 가두면 낙상은 줄어들지만, 재활은 실패한다. 종종 뇌 손상 환자는 충동 조절이 어렵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활병원에서는 이러한 환자들에게 위험하니 나가지 마세요라고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환자의 회복 가능성과 사고의 위험성 사이에서 고도의 의학적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회복기 재활병동은 안전과 활동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운영된다. 그 균형점에서 발생한 사고를 사후에 예견 가능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결과를 이미 알고 나서 원인을 찾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8개월 동안 소송 세 번승소했지만 남은 것은?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에 앞서 환자 측이 형사고소를 먼저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민사와 달리 형사고소는 비용 거의 들지 않고, 만일 형사에서 이기면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고소를 남발하게 되어 있다.

반면 병원 입장에서 민사소송은 법리를 따져 패소하면 금전적 손실이 생기는 정도지만, 형사소송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만일 병원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이 형사소송에서 패소하면 최악의 경우 면허취소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형사소송이 주는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 정도가 민사소송과는 비교할 수 없다.

4년 가까운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끝에 무죄와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병원장과 간호사는 지칠 대로 지치고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미 거액의 법률 비용이 들어간 것은 둘째로 치고, 해당 간호사가 법정에 출석한 시간, 서류를 준비한 밤, 경찰서와 법원에 출두하러 다닌 날들은 계산서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간호사가 3년 가까이 피고인 신분으로 견딘 시간은 어떤 판결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이런 경험은 병원의 행동을 바꾼다. 낙상 고위험 환자의 입원을 망설이게 되고, 중증 환자를 기피하게 되며, 야간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게 된다. 의료인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방어진료의 최종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우봉식 아이엠재활병원장(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의협신문
우봉식 아이엠재활병원장(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의협신문

맺으며
의료인은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진료실보다 법정을 더 걱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손실은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 그날 새벽 병동을 지킨 간호사는 최선을 다했다. 두 번의 형사재판과 두 번의 민사재판이 모두 그렇게 판단했다. 다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3년 8개월이 걸렸을 뿐이다.

민사소송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을 기대하며 고소를 남발하는 환자, 이미 형사판결이 무죄로 확정된 사건조차 일단 묻지마 소송을 제기하고 보는 건강보험공단과 삼성화재보험의 관행은 재정의 낭비이자 일개 의료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다.

한 번의 사고에 세 번의 소송이 따라붙는 나라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의료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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