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합병증마저 "과실 추정"…사법의학, 필수의료 숨통 조인다
수술 후 발생한 불가피한 합병증이나 후유증에 대해 의료진의 과실을 넓게 추정하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면서, 외과 분야 고위험 수술 의료진의 중압감이 한계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수술 부작용에 억대 손해배상이나 형사 책임을 묻는 사법의학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가속화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최근 환자 A씨가 병원 운영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2026다200137)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통과 양하지 저림으로 내원한 A씨는 요추 제2-3번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고 양방향 척추내시경 절제술(UBE)을 받았다. A씨는 수술 직후 하지 마비배변 장애 등 마미증후군 증상을 호소했다. 한 달 뒤 척추체간 유합술 등 후속 수술을 받았음에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A씨는 의료진의 수술상 과실과 후속 조치 지연으로 마미증후군이 발생했다며 2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심 법원은 의료진이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면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진료기록상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가 없고, 수술 후 발생한 마미증후군은 척추 수술 시 불가피한 신경근 견인이나 디스크 압박부종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후유증 및 합병증에 해당한다면서 후유장해가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의료상 과실을 추정할 수 없다고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수술 전 작성된 수술동의서에 마미증후군신경 손상 등 발생 가능한 위험과 합병증이 명시되어 있고, 보존적 치료 과정을 거쳐 수술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졌다면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원고 측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환자 측이 의료행위의 주의의무 위반 및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들면서 수술 후 중한 결과의 원인이 된 증상이 발생하고, 의료상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이 증명되면 과실을 추정할 수 있다는 과실 추정 법리를 내세웠다.
특히 대법원은 수술 직후 영상의학과 MRI 판독지에 수술 부위 혈성 액체 저류 및 심각한 중앙부 압박 소견이 있었음에도, 주치의가 병동 진료기록지에 특이소견 없이 수술이 잘 되었다고 기록한 점에 주목하면서 수술기록지와 영상의학 판독 간의 불일치를 짚어냈다.
아울러 불가피한 합병증이 아닌 혈종 제거 등 재수술 조치를 적시에 시행하지 않은 점을 들어 의료진의 대처 미흡에 따른 과실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대법원의 척추 수술 후 마미증후군 손해배상 소송 파기 환송 소식을 접한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등 척추수술을 담당하는 필수의료 현장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술 후 발생하는 혈종이나 신경 마비는 고위험 척추 수술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합병증임에도 이를 대처 미흡과 의료 과실로 결부시키는 사법부의 잣대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이유에서다.
C 병원 의료진은 척추 수술은 신경 손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의 통증 경감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시행하는 고위험 시술이라면서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이상 소견을 모두 의료 과실 추정의 근거로 삼는다면, 향후 어떤 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난이도 높은 수술대에 서겠느냐고 토로했다.
이 의료진은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의 상태와 경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수술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영상의학적 판독 소견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아 적기 치료 미비로 단정하는 것은 의학적 불확실성과 임상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수술 후 경과 관찰 과정에서의 기록 불일치나 주관적 판단 차이가 법정에서 의사의 과실 입증으로 작동하는 사법 판단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의료계는 사법부가 의료 사고 입증 책임을 완화해 환자 구제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필수의료 현장은 더욱 빠른 속도로 폐사하고 있다면서 고위험 중증 수술을 기피하고 방어진료를 위한 과잉 검사나 위험도가 낮은 진료과를 선호하는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하고 있다. 젊은 전공의들 역시 사법적 리스크가 높은 외과신경외과심장혈관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핵심 필수진료과를 외면한 채 피부성형 등 미용 의료로, 해외 진출로 이탈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환자의 피해 구제도 중요하지만, 합병증 발생과 후속 조치의 한계를 과실로 손쉽게 추정하는 사법적 경향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에서 고위험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사는 조만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며 사법의학의 엄격한 잣대가 필수의료의 숨통을 조이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제 확대와 법적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는 입법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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