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AI 일차의료 패키지에 내시경이 없다
정부가 지난 8월 6일 제12차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범정부 AI 기본의료 전략을 확정했다. 전국 보건소보건지소와 취약지 일차의료기관에 진료행정건강관리를 보조하는 일차의료 AI 지원 도구를 보급하겠다는 것이 핵심 축의 하나다.
인공지능을 일부 대형병원의 자산이 아니라 일차의료 현장의 보편적 도구로 끌어내리겠다는 발상 자체는 옳다. 다만 그 패키지의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정작 국민이 가장 먼저 인공지능을 만나게 될 자리 하나가 빠져 있다.
패키지 3종에 내시경이 없다
확정 전략이 제시한 일차의료 AI 지원 도구는 영상판독 보조, 진료기록 자동작성, 만성질환 관리 세 가지다. 지난 4월 30일 제1차 전문가 정책간담회 자료집을 함께 보면 그림이 더 분명해진다. AX 스프린트 6개 실증과제 중 의료기관 간 영상판독 AX의 대상 모달리티는 X-rayCTMRI초음파로 명시돼 있다. 이 과제의 주요 기능은 병변 자동 탐지와 악성도 예측이다. 내시경 인공지능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모달리티에서만 내시경이 빠졌다.
임상보조 영역의 국내 사례로 열거된 분야도 영상의학안과병리다. 연차별 실증 시드 계획 역시 만성질환에서 응급의료, 분만소아, 정신건강재활돌봄으로 이어지며 내시경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 항목에서 일관되게 비어 있다.
검진 내시경은 의원이 한다
이 공백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다. 국가암검진의 위내시경을 실제로 수행하는 곳이 다름 아닌 의원이기 때문이다. 2023년 검진기관 종별 건강검진비 지급 현황을 보면, 위암검진비 7852억원 가운데 의원이 4809억원으로 61.2%를 차지한다. 병원 14.2%를 더하면 병의원급이 75.4%다. 종합병원급 이상은 24.4%에 그친다. 대장암검진 역시 의원 58.6%, 병원 14.3%로 병의원급이 72.9%를 수행한다.
주목할 것은 이 비중이 일반건강검진보다도 높다는 점이다. 같은 해 일반건강검진비에서 의원이 차지한 몫은 54.6%였다. 내시경은 장비와 술기가 필요해 대형기관 중심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일반검진보다 개원가 의존도가 큰 영역이다. 국민이 생애 주기에서 가장 정기적으로, 가장 많은 수로 만나는 내시경은 대학병원 검사실이 아니라 동네 검진 의원에서 이뤄진다.
이번 전략은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AI 의료혁신을 첫 번째 축으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는 자명하다. 대규모로 반복되고, 조기 발견 여부가 치료 성적과 의료비 지출을 직접 가르며, 수행 주체의 다수가 일차의료기관인 검진 내시경보다 더 적합한 대상을 찾기 어렵다. 자료집 스스로도 기회검진과 질병 발생 예측을 예방 중심 의료 전환의 핵심 근거로 제시하지 않았던가.
인공지능을 일차의료의 도구로 삼겠다는 정책이, 정작 일차의료가 가장 많이 수행하는 검사를 비켜간 셈이다.
2028년, 두 시계가 겹친다
여기에 시점이 겹친다. 지난 2월 국가암관리위원회는 제5차 암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의결하면서, 2028년부터 대장암 검진에 대장내시경을 도입하기로 했다. 개정 권고안은 45~74세 성인에게 10년 간격의 대장내시경 검사를 권고한다. 지금은 분변잠혈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사람만 내시경으로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내시경 자체가 검진의 축이 된다. 대장암 검진비가 위암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재 구조가 2028년을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다.
근거는 이미 쌓였다. 2019년부터 6년간 고양김포파주에서 60여 개 기관과 118명의 인증의가 참여한 시범사업에서 선종 검출률은 44.3%, 천공 발생률은 0.01%를 기록했다. 안전성과 효과가 함께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AI 기본의료 전략의 로드맵에서 2028년은 확산단계다. AI 고속도로가 전국 72개 책임의료기관으로 넓어지고 AI 서비스가 7종으로 늘어나는 해로 설계돼 있다. 대장내시경 검진의 전면 도입과 인공지능의 전국 확산이 같은 해에 놓인다. 그럼에도 그해 실증 시드는 분만소아이고, 내시경은 어디에도 없다.
하필이면 대장내시경이다
공교롭게도 의료 인공지능 가운데 근거가 가장 두텁게 축적된 내시경 영역이 바로 대장이다. 용종 실시간 검출 보조는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이 여러 건 축적된 몇 안 되는 분야이고, 그 일차 평가변수가 다름 아닌 선종 발견율이다.
그리고 정부는 2028년 도입을 앞두고 암검진 질 관리의 방향을 구조 및 과정 중심에서 결과 및 환자 안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용종 발견율과 천공 발생률처럼 실시간 산출이 가능한 지표를 검진기관에 주기적으로 피드백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지표와 인공지능이 끌어올리는 지표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여야 한다. 지표로 기관을 평가하겠다면서 그 지표를 개선할 도구는 각자 알아서 구하라고 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범사업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제도를 먼저 시작하고 평가 지표를 나중에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지적이 나왔다. 같은 말을 도구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 지표와 도구는 함께 설계돼야 한다.
그럼에도 빠진 이유는 짐작이 간다. 자료집의 교차분석 틀에서 내시경 인공지능은 수익성과 기술 성숙도가 확보된 시장 자율영역으로 분류됐을 것이다. 시장이 알아서 하는 곳에 국가가 재정을 넣을 이유는 없다는 판단이다.
시장 자율은 대형기관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분류는 현장과 어긋난다. 시장 자율로 인공지능이 확산되고 있는 곳은 자본과 인력을 갖춘 대형 의료기관이다. 자료집 자신이 55쪽에서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한 기관은 인공지능 도입 입구에서 멈춰 구조적 공백에 놓인다고 진단했다. 검진 내시경을 수행하는 상당수 의원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이대로 두면 결과는 하나다. 인공지능 보조를 받는 검진과 받지 못하는 검진이 나뉘고, 그 경계가 기관 규모를 따라 그어진다. 국가가 동일한 검진 프로그램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수행 기관의 자본 여력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격차를 메우겠다는 전략이 정작 국가검진 영역에서 새로운 격차를 방치하는 셈이 된다.
확대가 답이다
그래서 요구는 분명하다. 일차의료 AI 지원 도구에 검진 내시경 인공지능을 포함해야 한다. AX 스프린트 영상판독 AX의 대상 모달리티에도 소화기내시경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도입 지원의 우선순위는 의원급 검진기관에 두어야 한다.
시한도 이미 정해져 있다. 2028년 대장내시경 검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인공지능 보조와 질 관리 지표가 함께 출발하려면, 실증과 인증, 보급 설계에 필요한 시간을 역산해 지금 착수해야 한다. 2028년에 논의를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늦다.
실익도 명확하다. 선종 발견율은 대장암 발생과 사망을 낮추는 가장 잘 검증된 검진 질 지표다. 인공지능 보조가 이 지표를 끌어올린다면 그 효과는 개별 의료기관의 성과가 아니라 국가 암 관리 성과로 축적된다. 조기 발견이 늘수록 진행암 치료에 들어갈 재정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이는 지출이 아니라 투자에 가깝다.
대상 규모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국가검진을 수행하는 의과 검진기관은 약 1만 1천 곳이지만, 그중 위내시경을 실제 수행하는 검진기관으로 좁히면 지원 대상은 훨씬 작아진다. 이미 시장에 상용화된 솔루션이 존재해 기술 개발 단계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다. 확산 인프라를 새로 까는 다른 과제들에 비하면 낮은 비용으로 가장 넓은 국민 접점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다.
아울러 인공지능 보조 활용을 검진 질 관리 항목으로 인정하고, 선종 발견율 등 검진 질 지표와 연계한 보상 방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검진 질 향상을 정책 목표로 삼으면서 그 수단에는 지원도 보상도 없다면, 향상을 요구할 근거가 약해진다.
그리고 내시경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 이번 전략은 지속 가능한 AI 의료생태계 조성을 세 번째 축으로 삼으면서, 오는 10월 제5차 세계 바이오 서밋을 계기로 AI 헬스케어 서울선언문을 발표하고 K-의료 AI 기업과 병원이 함께 세계 시장에 진출하도록 전주기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1차 정책간담회 자료집 역시 한 장을 할애해 AI 기본의료 시스템의 글로벌 헬스 진출을 다뤘다.
그 자료집이 지적한 핵심은 의료 인공지능에 개발과 수요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양질의 의료데이터와 공학 전문가, 하드웨어가 풍부한 선진국에서 개발이 이뤄지는 반면, 정작 수요는 인적물적 의료자원이 부족한 중저소득국에 있다는 것이다.
내시경은 이 불일치를 메우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다. 대한민국의 내시경 술기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위암 검진을 국가 단위로 내시경으로 수행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 국가검진이라는 표준화된 틀 안에서 대규모로 축적되는 내시경 데이터는 다른 나라가 갖기 어려운 자산이다. 여기에 2028년 대장내시경 검진이 더해지면 그 규모와 질은 한 번 더 도약한다.
자료집은 3차 의료기관에 집중돼 온 한국 의료의 특성이 데이터 측면에서는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내시경은 그 반대편에서 같은 결론에 이른다. 검진 내시경의 물량과 데이터가 개원가에 폭넓게 분포한다는 것은, 실제 진료 현장의 다양성을 담은 실사용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형병원 몇 곳의 데이터로 만든 모델보다 현장 적용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수요 측면에서도 맞아떨어진다. 내시경 인공지능이 메우는 것은 판독 경험과 술기의 편차인데, 이는 소화기내시경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저소득국이 정확히 필요로 하는 지점이다. 국내 검진 현장에서 검증된 솔루션은 그대로 수출 가능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요컨대 검진 내시경 인공지능에 대한 지원은 국내 검진 질 향상과 K-의료 수출 기반 구축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몇 안 되는 선택지다. 정부가 스스로 내건 글로벌 진출 전략과 가장 잘 맞는 분야를, 정작 국내 지원 대상에서 빼놓고 있는 셈이다.
다만 지표를 잘못 잡으면
확대를 요구하면서 함께 짚어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확정 전략은 AI 의료서비스에 대한 적정 보상 체계 마련을 과제로 담고 있고, 자료집은 AI 활용 수가 신설과 성과 연동 보상 설계를 예고했다. 여기서 성과를 무엇으로 측정하느냐가 사실상 전부다.
인공지능 보조가 적용되면 병변 탐지 정확도가 올라가는 동시에 시술 소요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상대가치는 업무량을 소요시간강도로 산출한다. 시간 단축이 그대로 업무량 감소로 환산되면, 의료기관이 자기 비용으로 도입한 기술이 자기 수가를 깎는 근거로 돌아온다. 협대역 내시경(NBI)이 도입 초기 진단 정확도 향상 수단으로 평가받았다가 표준화 과정에서 별도 보상 없이 기본 행위료에 흡수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성과 지표는 시술 시간 단축률이나 시간당 처리 건수 같은 효율성 지표가 아니라, 선종 발견율과 조기암 발견율, 놓친 병변율 감소 같은 결과 지표로 구성돼야 한다. 자료집은 의료 질 지표와 연계한 성과 환류라고만 적고 지표를 특정하지 않았다. 지금이 그 정의에 개입할 시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보화 수준 평가에 연동한 인증 등급별 차등 수가 구상에도 신중해야 한다. 도입 여력이 없다고 진단한 기관을 다시 그 도입 수준으로 평가해 수가를 차등하면, 의원급은 구조적으로 하위 등급에 고착된다. 도입한다면 하위 등급 감산이 아닌 상위 등급 가산 방식이어야 하고, 재원은 기존 행위료 재배분이 아닌 신규 재원이어야 한다.
설계도가 굳기 전에
전략은 확정됐지만 세부 이행계획과 보상체계는 아직 설계 중이고, 대장내시경 검진은 2028년에 문을 연다. 두 설계도가 굳기 전에 서로를 맞춰볼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남아 있다. 국가검진 내시경은 국민이 인공지능의 혜택을 가장 넓게, 가장 고르게 체감할 수 있는 접점이고, 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개원가다. 일차의료를 인공지능 정책의 중심에 두겠다고 했다면, 일차의료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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