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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과 의협 종합학술대회

최승원 편집국장2026.07.27 12:30
독일군의 폭격이 지난간 폐허 위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는 런던시민[출처: 영국제국전쟁박물관 기록보관소]

개전 초, 단 6주 만에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그 기세를 몰아 바다 건너 런던으로 수천 대의 폭격기를 보냈다. 1940년 9월부터 8개월간 지속됐던 독일군의 이 융단폭격은 훗날 더 블리츠(The Blitz, 런던 대공습)라는 고유한 이름이 붙을 정도로 집요하고 유례없는 공습이었다.

더 블리츠로 런던은 쑥대밭이 됐다. 대영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탑 등은 파괴됐다. 런던시의 60%가 잿더미가 됐다. 공습 첫 달 동안 7000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공습기간 내내 4만3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밤샘 폭격은 일상이 됐고 런던 시민들은 방공호와 지하대피소에서 밤을 지샜다. 폭격이 지나간 오후, 방공호를 나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걸터앉은 런던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트에 물을 담고 차를 끓였다. 지난 60여년간 부모 세대가 그래왔듯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후대 몇몇 역사가는 무너진 자신의 집터에 앉아 애프터눈 티를 마시는 이 인상적인 장면을 가르켜 나치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던 런던 시민의 존엄과 일상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이른 점심과 늦은 저녁 만찬 사이에 찾아 온 허기를 차와 간단한 먹거리로 달랬던 상류층의 애프터눈 티 문화는 20세기 들어 전 영국인의 일상이 됐다.

물론 3단 트레이에 스콘과 케이크를 올린 평시의 그것과는 달랐다. 스콘과 케이크는 배급빵 내셔널 로프(National Loaf)로 대체됐다.

전시 중 밀가루를 아끼려 밀의 겨와 눈까지 통째로 갈아 넣은 이 배급빵은 씁쓸한 맛과 돌덩이같은 식감으로 영국인을 괴롭히는 히틀러의 비밀병기라는 오명을 썼다.

전쟁통에 총알도, 빵도 아닌마실 차를 사수하느라 국가적 역량을 기울이는 것이 맞냐는 회의감도 당연히 일었지만 영국 정부는 꽤 진지했다.

독일군의 폭격에도 찻잎을 보급하기 위해 정부는 영국 전역에 수백 곳에 비밀 보관창고를 마련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에도 전 세계에서 수출된 찻잎의 상당량을 구매했다.

국민 한 사람당 매주 2온스(56g)의 찻잎을 보급한다는 게 목표였는데 대체로 지켜졌다.

제1회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는 독일이 패망한 지 2년 뒤인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강당에서 개최됐다.

미군정 치하였던 당시 한국은 일본식 의료체계를 벗고 서구식 선진 의료 제도와 교육을 막 도입하던 대전환기였다. 해방 후 흩어져 있던 개원의 단체 조선의사회와 의대 교수 단체 조선의학연구회가 하나로 뭉쳐 조선의학협회를 창립하고 첫 종합학술대회를 열었다.

최신 의학기술 습득을 의사의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전통으로 삼겠다는 협회의 의지는 창립 10일 후 지체없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크고 높았다. 주성순 서울의대 교수의 발제를 비롯해 총 8개의 연제가 발표됐다.

79년만인 올7월 10일 대한의사협회는 제43차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세계적인 팬데믹과 의대 정원을 둘러싼 지난 몇년간의 전쟁같은 의정 갈등으로 종합학술대회는 7년 만에야 온라인이 아닌 온전한 모습으로 치러졌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산적한 의정 과제 속에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게 형편에 맞냐는 회의론도 있었다.

독일의 융단폭격도 꺾지 못한 영국인의 애프터눈 티 타임이 최근 유럽을 덮친 고물가와 경제난에 티 브레이크로 간소화됐다고 한다. 때로는 폭탄이나 총칼보다 지금 그럴 때인가하는 회의감이 우리를 더 위축시킨다.

의학 연구와 현장 진료가 맞닿는 곳에서 의사의 전문성은 아름답다.

당면한 어려움으로 학문과 유리된 술기만을 독려받는 사회에서 의사의 전문성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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