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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아프면 쉴 권리’ 그 다음을 설계할 때다

조원영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2026.07.15 10:32
조원영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조원영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상병수당 시범사업 심사석에 앉으면, 아파서 일을 놓은 사람의 절박함이 서류 너머로 전해진다. 이의신청을 내고 며칠만 더 인정해 달라 호소하는 이들, 회복이 더뎌 생계가 무너지는 이들을 본다. 업무와 무관한 병으로 일을 쉴 때 소득의 일부라도 보전해 아파도 출근하는 상황을 막자는 상병수당의 취지에 나는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는 문명 사회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걱정도 함께 자란다. 정부는 이 제도를 내년 하반기 전국 본사업으로 전환하고 대상을 전 국민으로 넓히려 한다. 연간 8000억 원에 가까운 재정이 든다고 한다. 필요한 제도일수록, 지금의 설계로 지탱될 수 있는지를 냉정히 물어야 한다.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내가 심사석에서 보는 것은 이의신청을 내고 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이들이다. 분포의 한쪽 꼬리만 보는 셈이니, 시범사업 전체가 적정하게 돌아가는지를 이 자리에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 꼬리에서 제도의 구조적 균열이 먼저 드러난다.

첫째, 상병수당은 독립된 사회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에 얹힌 곁가지다. 이것은 인상이 아니라 법조문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의 제목은 부가급여다. 조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본체는 요양급여이고, 상병수당은 그 바깥에 이름만 올려둔 급여다. 정부도 시범사업의 법적 근거로 이 조항을 든다.

문제는 이 조문의 성질이다. 실시할 수 있다는 의무가 아니라 재량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급여이니 수급자의 권리성이 약하고, 뒤집어 말하면 재정이 어려워지면 줄일 명분이 조문에 이미 들어 있다. 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라는 위임 탓에, 대상과 기간과 금액이 국회의 법률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의 시행령만으로 정해지고 바뀐다.

연간 8000억 원짜리 제도의 설계가 그렇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게다가 같은 조문에 나란히 있는 임신출산 진료비는 1회당 100만 원 수준의 급여다. 최대 150일의 소득보전과 성격도 규모도 전혀 다른 것을 같은 서랍에 넣는 셈이다. 그 서랍에는 회계 분리도, 국고지원 근거도, 지출 한도도 없다. 애초에 소규모 부가급여를 담으려고 만든 조항이니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이 제도가 담는 위험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이다. 성격으로 보면 실업급여와 같은 계열의 노동시장 위험이다. 대기기간을 두고, 소득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며, 최대 보장일수를 정하는 설계 언어도 그대로 고용보험의 문법이다. 그런데 재원과 운영은 건강보험 안에 들어와 있다. 수십 년간 조문에 이름만 올린 채 잠들어 있던 급여를 8000억 원짜리 전국 제도로 깨우면서, 잠들어 있던 시절의 그릇을 그대로 쓰겠다는 것이 지금의 설계다. 그릇이 제도를 담지 못한다.

둘째, 유급병가가 실업급여처럼 산으로 갈 여지를 경계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정신질환이 이미 장기 병가의 첫째 원인이 됐고, 전체 병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27%로 한 해 만에 4%포인트 올랐다. 영국에서도 2025년 정신질환 관련 병가로 1710만 근로일이 사라졌다. 병가가 휴가처럼 당연시되는 규범화, 그리고 판정이 까다로운 번아웃정신질환 청구의 폭증은 관대함만 앞세운 제도가 어디로 흐르는지 보여준다. 독일이 최근 전화 병가를 없애고 병가 첫날부터 진단서를 요구하도록 되돌린 것은, 그 흐름을 이미 겪었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 사례 중에는 노동시장 복귀가 어려워 보이는 상병도 있다. 상병수당은 회복 후 복귀를 전제로 한 단기 소득보전이다. 복귀가 사실상 어려운 이가 이 급여에 계속 머무는 것은 제도 취지와 어긋난다. 이런 경우는 장애연금이나 산재장해 같은 장기 소득보장으로 연계되어야 하며, 그 경계를 흐리면 단기 급여가 장기 보장의 우회로로 변질된다.

넷째, 8000억 원이라는 추계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한 번 겪었다. 코로나19 격리자 생활지원비다. 2020년 3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약 2년간 지자체가 지급한 총액이 1조572억 원이었다. 그런데 오미크론이 오자 서울 25개 자치구는 그해 예산 1067억 원 중 두 달 만에 63.6%인 679억 원을 소진했고, 예산이 바닥나 지급을 중단하는 지자체가 속출했다.

정부는 다섯 달 사이 세 차례에 걸쳐 제도를 잘라냈다. 2월에는 대상을 가구원 전체에서 실제 격리자로 좁히고 기간을 10일에서 7일로 줄였고, 3월에는 가구당 10만 원 정액제로 바꿨으며, 7월에는 소득 기준 중위 100% 이하로, 유급휴가비는 30인 미만 기업으로 대상을 절반 넘게 잘랐다. 그때마다 정부가 밝힌 이유는 한결같았다. 재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목할 것은, 코로나 생활지원비가 상병수당보다 훨씬 통제하기 쉬운 제도였다는 점이다. 지급액은 가구당 10만 원 정액, 기간은 7일 상한, 대상은 격리 통지서라는 객관적 증빙으로 확정됐다. 판정 재량이 사실상 없는 제도였다. 그런데도 무너졌다. 상병수당은 최대 150일에, 근로불가 판정이라는 주관적 게이트가 붙는다. 게다가 8000억 원이라는 숫자는 평시(平時)의, 그것도 인지도가 낮은 시범사업 데이터에서 뽑은 값이다. 전국화되고 제도가 상식이 되면 신청은 계단식으로 오른다. 유행 한 번, 불황 한 번이면 추계는 무너진다.

다섯째,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일이다. 기획재정부가 법정 국고지원조차 채우지 않으니 건강보험료로 메우고, 보험료율은 상한(8%)에 걸려 못 올리니 쌓아둔 준비금을 헐고, 준비금이 마르면 수가와 급여를 조여 버틴다. 어느 돌 하나 새로 가져온 것이 없다. 그저 아래를 빼서 위를 괼 뿐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올해 적자로 돌아섰고 누적 준비금은 2029년이면 소진될 전망이다. 이렇게 괴어놓은 탑은 유행 한 번이면 무너진다. 다만 코로나 때는 한시적 재난 대응이라 접을 수 있었다. 상병수당은 접을 수 없다. 한 번 열면 권리가 되고, 권리는 고시 몇 줄로 거둬들여지지 않는다.

여섯째, 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건강보험료는 전 국민이 낸다. 그러나 상병수당은 일하는 사람만 받는다. 일을 쉬어 잃을 소득이 있어야 보전받는 제도이니, 은퇴자도, 전업으로 가정을 돌보는 이도, 이미 노동시장 밖에 있는 이도 이 급여를 평생 한 번 받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이 낸 보험료가 이 급여의 재원이 된다. 전 국민이 아픈 몸을 치료받으라고 모은 돈으로, 일부의 소득을 보전하는 셈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건강보험은 의료보장을 목적으로 전 국민에게 강제 징수하는 재원이다. 그 정당성은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는다는 보편성에 있다. 소득 중단이라는 노동시장 위험을, 노동시장 밖에 있는 이들의 보험료로 메우는 순간 그 정당성은 흔들린다. 게다가 재정이 쪼그라들어 수가와 급여를 조이게 되면, 그 부담은 의료를 가장 많이 쓰는 고령층과 만성질환자에게 먼저 돌아간다. 상병수당을 받을 수 없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부담과 수혜가 이렇게 어긋난 제도는, 재정이 빠듯해지는 순간 반드시 갈등으로 터진다.

여기에 형평의 역설이 하나 더 있다. 건강보험료의 절반은 사용자가 낸다. 그런데 최저임금보다 낮은 소득을 호소하는 영세 자영업자는, 사용자로서 부담을 지면서 정작 보호는 얇은 취약 수혜자다. 아픈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데, 그 위험을 누가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답이 아직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분명하다. 소득 중단을 담는 제도라면 그 재원은 소득보장의 논리로, 즉 국가의 일반재정으로 조달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세금으로 부담하고 필요한 이가 받는 구조여야 명분이 선다. 아픈 사람의 치료 재원에서 빼내 쓸 일이 아니다.

상병수당 본사업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만의 몫으로 둘 사안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국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건강보험에 대한 법정 국고지원(예상수입의 20%)조차 최근 3년 평균 14% 수준으로 미달해 왔다. 그 상태에서 새로운 소득보전 급여의 부담까지 보험료와 수가 재원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상병수당 지급을 위한 별도의 국고지원을 법에 명시하고, 회계를 건강보험 일반급여와 분리해 지출 한도를 두는 방화벽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도 나서야 한다. 상병수당을 실업급여국민취업지원과 정합적으로 설계하고 우회 수급을 관리하는 일은 노동시장 정책의 영역이다. 지금처럼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물러서 있으면, 소득보장 체계 전체를 조망하는 주체가 아무도 없게 된다.

아울러 사후에 대상을 잘라내는 코로나식 수습은 항구 제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지출 한도와 자동조정 장치, 그리고 주기적 재평가 조항을 제도를 여는 시점에 함께 법에 담아야 한다. 재정이 새고 나서 조이려 하면 그때는 이미 늦다.

마지막으로, 판정의 부담이 진료실로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산재 진단서나 장애 진단이 그러하듯, 의사가 환자가 원하는 대로 써주지 않거나 청구가 기각되면 그 분노는 고스란히 의료기관으로 향한다. 권한 없이 민원만 떠안는 구조여서는 안 된다. 의료기관은 진단과 기능상태라는 의학적 사실을 확인할 뿐, 급여 여부의 최종 판정과 이의신청 대응은 건강보험공단이 책임지도록 역할을 분명히 나눠야 한다. 질환별 표준 근로불가 기간을 마련해 재량의 여지를 줄이고, 기준에 따라 성실히 작성한 진단에 대한 면책과 적정 보상, 악성 민원으로부터의 보호 장치도 함께 갖춰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는 한 사회의 품격을 재는 척도다. 그러나 권리는 재원과 규칙 위에서만 지속된다. 지금은 그 다음 질문에 답할 때다. 누가 재원을 대고, 어떻게 남용을 막으며, 복귀의 경계를 어디에 긋고, 누가 판정의 부담을 질 것인가. 이 물음에 정부가 부처를 넘어 함께 답하지 못한다면, 좋은 취지는 몇 해 지나지 않아 지속 불가능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취지만으로 제도는 지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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