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감정인 주관적 단정이 필수의료 붕괴 초래"
의료분쟁 시 감정인의 높은 의료 수준에 맞춘 주관적 단정이 필수의료 붕괴를 초래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료감정 의사는 판사의 역할인판정이 아닌 객관적 번역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이경석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교육정보위원회 위원은 11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43차 의협 종합학술대회에서 실제 사례로 보는 바람직한 의료감정서 작성법 주제 발제를 통해 의료과실이나 인과관계 유무는 판사가 판단하는 것이다. 감정의사는 확증 편향을 버리고 임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복잡한 의학적 객관적 사실을 사법부에 쉽게 설명해 주는 번역가(Translator)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세션은 한동우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 운영위원장과 김서형 의협 의료감정원 교육정보위원회 간사(법무법인 유연 변호사)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실제 사례로 보는 바람직한 의료감정서 작성법(이경석 의협 의료감정원 교육정보위원회 위원) ▲의료감정의 역할과 중요성(전성훈 의협 법제이사) ▲의료감정에서 유의해야할 인지 착오 문제(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를 집중 조명했다.
이경석 위원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횡경막 탈장 오진 사망 사건을 대표적인 감정 오류 사례로 들었다. 이 위원은 최신 의료감정 리뷰 논문에는 단순 X-ray만으로 외상성 횡경막 탈장을 초기 진단할 수 있는 가능성은 136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59%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고, 63%는 입원 당시 진단이 안 된 상태로 입원한다는 통계 자료가 있음에도 감정의의 주관적인 소신으로 인해 의사 3명이 법정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무죄로 결론 났으나 필수의료 붕괴와 필수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는 비극적 도화선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분만 중 태아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성마비 사건에서 재판부가 아무런 근거 없이 환아의 기대여명을 65세로 단정해 6억원의 고액 배상 판결을 내린 선례도 비판했다. 이 위원은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행이 불가능한 중증 뇌성마비 환자의 실제 기대여명은 54.8세로 정상 여명보다 10년 이상 짧다며 문헌적 근거에 기반한 명확한 통계 제시를 주문했다. 이 외에도 대동맥류 수술 후 하지마비와 같은 불가항력적 합병증 사례를 설명하며 환자와 의료진 양측의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해야 신의료기술을 제약하거나 중증 환자의 치료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준진료 여건진단 난이도임상 경험 등을 계량화한 20점 만점의 오진 가능성 스코어 도입을 제안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의료 환경과 의료진의 수준에 따라 진단해내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현실적 한계를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위원은 현행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감정서에 과실 및 인과관계 유무를 기재하도록 강제한 것은 감정의에게 재판관 역할을 하도록 하는 모순이 있다면서 개정 필요성도 제기했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 법적 지위책임 한계 명확히 알고 임상 재량권 보호해야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법무법인 텍스트 파트너 변호사)는 의료감정의 역할과 중요성 주제 발제를 통해 의료감정의 법적 근거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설명했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감정 결과는 하나의 증거방법일 뿐이며 법관이 종합하여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해야 하므로 감정서는 실무상 재판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면서 임상 의사들이 감정서를 작성할 때 숙지해야 할 실무 수칙을 제안했다.
전 이사는 의사는 환자 상황과 당시의 임상 수준에 따라 치료 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이 있으므로, 사후 결과만 보고 선택에 아쉬움이 있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으로 과실을 추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료기록이 미비하거나 확증이 서지 않을 때는 무리하게 추정하지 말고, 현재 자료로는 판단이 어렵다는 판단 불가 기재를 적극 활용하라고 제안했다.
전 이사는 소송 당사자들이 각자 유리하게 편향적으로 정리한 내용에 휩쓸리지 말고, 진료기록을 토대로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서두에 정리해 주어야 재판부에 도움이 된다면서 의학적 전제사실의 객관적 확정에 무게를 실었다.
이동필 변호사 결과론에 치우친 인지착오 조심해야
소화기내과 전문의 출신인 이동필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의사들이 감정 과정에서 흔히 저지르는 심리학적통계학적 오류인 인지착오(Cognitive Bias) 문제를 짚었다.
이동필 변호사는 사람은 누구나 오류와 실수를 할 수 있으며, 의료감정 과정에서도 다양한 인지착오가 발생한다. 특히 결과를 알고 난 뒤 마치 과거에도 이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 감정에서 가장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라고 지적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내원한 환자가 이후 급성 뇌경색 확진을 받은 사례에서, 사후 감정의가 결과만 보고 당시 응급실에서 MRI를 찍었어야 했다며 과실을 추단한 사건을 대표적인 사후확신 오류로 꼽았다.
이동필 변호사는 통계학적 착오인 조건부 확률의 오류(대표성 휴리스틱)를 수학적으로 실증한 분석을 제시했다. 질병의 실제 유병률이 0.1%이고, 검사의 정확도가 90%(위양성률 5%)일 때, 무작위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가 실제로 진짜 환자일 확률은 대다수의 인식(90%)과 달리 1.76%에 불과하다는 것. 이 변호사는 결과만 보고 그때 검사했더라면 진단했을 것이라 단정하는 것은 이 같은 확률적 오류를 간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약물 투여 후 피부 발진이 생긴 사례를 들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엄격한 구분을 주문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공변성(共變性, Covariation), 시간적 선후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원인이 없어야 하는 배타적 관계까지 입증되어야 하므로, 감정서 작성 시 단순히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적는 대신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다른 원인 유무를 검토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의협, 의료감정 인증 교육 지속 리뉴얼
주제 발표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감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토론이 이어졌다.
황유성 전문의는 모든 인프라가 갖추어진 대학병원 교수들이 열악한 개원가의 특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높은 잣대로 감정하는 괴리를 지적했다.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은 일부 감정의들이 과실 유무나 책임 비율까지 직접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판사의 권한을 침해하는 명백한 월권이라며 감정 의뢰 시 법적 결정은 판사의 몫임을 명시하는 주의 조항을 부대 문구로 삽입하자고 제언했다.
좌장을 맡은 김서형 의협 의료감정원 교육정보위원회 간사(법무법인 유연 변호사)는 대법원 예규 범위 내에서 은퇴 개원가 의사들을 감정인 풀로 적극 리쿠르팅하고 있고, 전문학회 감정 시 개원가 의사들을 배석시켜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보완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동 좌장을 맡은 한동우 의료감정원 운영위원장은 감정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현재 연 2회 실시되는 온라인 인증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리뉴얼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교육 이수 후 테스트 점수가 50점 이상인 위원만 감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의무 규정을 시스템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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