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CT 정기검사 누락했다고 억대 환수·과징금 징벌 처분 ‘위법’
병원 실무진의 착오로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의 정기검사 기간을 놓친 채 환자를 진료했더라도, 해당 기간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을 전액 환수하고 억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행정처분은 위법하다는 사법부의 판결이 나왔다. 의료법상 정기검사 의무 위반에 부과하는 별도의 행정 제재 수단이 존재함에도, 장비의 실질적인 성능이나 안전성과 무관하게 요양급여비를 전액 몰수하고 징벌적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행정법상 비례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덕 부장판사)는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및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2025구합56514, 2026구합50205 병합)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과징금 1억 2668만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비용 5065만원 환수 조치를 모두 취소하고, 소송비용도 피고측이 전액 부담하라고 주문했다.
사건은 전남 목포시에 B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라 3년 마다 CT 정기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병원 총무부장이 갑작스레 퇴직하면서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023년 2월 16일까지 받아야 하는 정기검사를 놓쳤다.
뒤늦게 목포시 보건소로부터 정기검사 누락 사실을 통보 받은 A씨는 서둘러 검사를 실시해 사흘 만인 2023년 5월 26일 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해 A씨가 검사를 받지 않은 장비로 약 3달간 방사선 특수영상진단료를 청구한 것은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를 받은 것이라며 과징금을 부과했고, 건보공단 역시 해당 기간의 급여비 전액을 환수 조치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보건당국의 처분이 국민건강보험법의 근본적인 입법 취지를 오해한 과도한 제재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령이 요양급여의 기준과 장비 관리 의무를 정한 근본적인 목적은 요양기관으로 하여금 가입자에게 치료에 적합한 적정한 요양급여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국민보건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면서 건강보험법령은 의료법령상의 행정 의무 위반 자체를 단죄하고 의료기관을 제재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료행위가 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기준을 충족했는지 여부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 이행 여부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해당 장비가 환자에게 적합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능과 상태를 갖추고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정기검사 기한을 일시적으로 도과한 경우를 최초 설치검사를 받지 않은 미신고 장비나 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장비와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초 설치검사는 장비가 요양급여에 제공될 수 있는 기본적인 성능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는 절차인 반면, 정기검사는 이미 적합성이 확인되어 사용 중인 장비의 상태가 유지되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기검사 기한 도과 후 곧바로 이루어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미검사 기간 동안 장치의 성능이나 안전성에 실질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그 장치를 사용하여 실시한 진단행위 역시 환자의 치료에 부적합한 요양급여였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단순히 행정적 검사 주기를 놓쳤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장비의 품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아울러 재판부는 행정 제재의 법적 정당성과 형평성에 주목했다.
현행 의료법령에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정기검사를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시정명령을 통해 일정 기간 시설장비 사용 제한 금지를 할 수 있다. 시정명령 위반 시에는 1년 범위 내 의료업 정지또는 개설 허가 취소 등과 500만원 이하 벌금의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요양급여비용 환수와 업무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 등 재정적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정기검사 의무 위반에 관하여는 의료법령상 별도의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등의 제재 수단이 있다면서 그럼에도 실제 제공된 요양급여의 적정성이나 장비의 성능.안전성과 무관하게 해당 기간의 진단료 전체를 환수하고, 징벌로서 수억 원대의 과징금까지 가중 부과하는 것은 불법성의 정도에 비해 의사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서 과잉금지 원칙과 비례원칙을 위반한 것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에서 원고 측 소송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낸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텍스트)는 재판부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건강보험법의 본질적인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전 변호사는 건보법상 요양급여 기준 충족 여부는 단순히 의료법령상 검사 절차의 이행 여부만을 형식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해당 장비가 환자의 치료에 적합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정기검사 의무 위반 자체를 제재하기 위해 건보법을 동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단순한 실무상 착오나 부주의에 대해서도 보건당국의 일률적이고 가혹한 징벌적 처분이 내려져 왔다면서 이번 판결이 지닌 사법부의 엄중한 메시지를 계기로 진료 현장의 왜곡된 환수와 과징금 처분 관행이 올바르게 바로잡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의료기관의 단순한 행정적 과실과 고의적인 부정수급 행위를 엄격히 구분하고, 보건당국의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환수 관행에 법적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이번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한편, 지난해 11월 CT 정기검사 기간 3개월 도과를 이유로 3억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서는 부당청구는 허위 자료 제출이나 은폐가 없었더라도 법령상 지급받을 수 없는 비용을 청구하여 받은 행위 전체를 포함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건보 재정 보호와 위험 예방에 무게를 실으면서 사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이 났더라도, 미검사 기간 동안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 위법성이 경미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제재 수단의 비례성과 과잉금지 원칙 위배 주장에 대해서도 법정 기준에 따른 처분이고, 행정처분심의위원회에서 이미 2분의 1을 감경해 주었기 때문에 병원이 입게 될 불이익이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보건당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해당 병원은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확정됐고, 결국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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