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마주하는 시, 시인들…"
시(詩)가 시(時)를 만났다. 시는, 문학은 어우러지면 또 다른 새로움을 잉태한다.
한국의사시인회는 27일 저녁 인사동 옥정에서 열 네번째 사화집 눈물이 고여 있는 심장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기념회에는 시와 시간들 동인들이 참석해 사화집 출간을 축하했다.
서화 회장은 진료 중 바쁘신 가운데서도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해 주시고 또 좋은 시를 많이 내주셔서 더욱 감사하다. 늘 설렘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와 시인들과 마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면서 삶이란 비 온 하늘에 어른거리는 한 자락 무지개를 기다리는 일이다. 인생은 저녁 들판 위에 펼쳐지는 단 한 번의 재회와도 같다. 바람에 꺾인 벌노랑이꽃일지라도 상처가 있기에 비로소 정이 깃든다. 노을이 바람을 감싸듯 서로를 안으며, 글과 노래로 육신과 영혼의 둘레를 휘돌고 있다. 기다림과 재회, 이번 사화집은 그런 마음들이 모여 이뤄진 작은 우주다. 문학과 의학의 경계에서 길어 올린 사유와 감정들이 시가 되어 서로를 비추고,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밝혀주리 믿는다고 전했다.
시적 강도와 밀도에 대한 짧은 강연도 이어졌다.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는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는 게 시의 원리라고 짚었다.
시는 압축성이 중요하다. 시는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 등의 형태로 전개돼 왔다. 시의 형태가 바뀌어 가면서 강도와 밀도는 달라진다.
운율을 통해 시간이 압축되고, 비유와 상징은 공간을 압축하는 데 활용된다. 운율과 비유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면서 시적 강도와 밀도가 만들어진다.
시의 표현은 묘사와 진술로 구분되지만, 두 표현의 방법은 결이 다르게 나타난다. 묘사는 시적 강도와 밀도를 강화하고, 진술은 이야기식으로 풀어서 표현하면서 밀도와 강도를 옅게 한다.
오형엽 교수는 시는 은유과 비유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시간을 압축하고 공간을 압축함으로써 강도를 만들어내고 밀도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밀도와 강도가 높은 시가 반드시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산문시가 더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간기념식에서는 새로 의사시인회에가입한 박영미 시인(이화의대 분자의학교실 교수내과전문의/2020년 시와 소금 등단)과 고현심 시인(제주 서귀포열린병원 영상의학과장/2016년 문예사조 등단)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이번 사화집에는 시인 22명의 작품 66편이 실렸다.
봄바람이 분다. 때아닌 칼바람도 분다. 기후 변화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세포가 경쟁한다. 세월의 흐름인가.(박세영)
점점 시와 삶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진다.(홍지헌)
나뭇가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꽃망울이, 차가운 밤 이슬을 견뎌내고 기재개를 켜는 것은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러했듯이 내일 새벽도 함께 맞이할 것이다. 결코, 새벽은 혼자 오지 않는다.(김정곤)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끝없는 변환으로 거듭나기한다고 상상하고 믿는다.(김세영)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날아가는가. 꽃잎 흩날린다. 지구 저쪽, 전쟁의 포성 속에 수없는 풀빛 생명들, 꽃잎처럼 떨어져 사라진다. 비탄과 고통의 눈물 위에도 봄은 잔인하게 어김이 없는데. 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정의홍)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수없이 베이고도 다시 이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김기범)
오늘도 같은 일상, 여전히 진료실에 앉아 있다. 오랜 동반자 청진기, 또는 나는 먹이를 기다리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오랜만에 내리는 창 밖의 비가 나른한 오후를 달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진료실을 지킨다. 북적일 내일을 꿈꾸며.(최예환)
제비꽃은 의외로 뿌리가 깊은 흔한 봄꽃이다. 오랑캐꽃, 앉은뱅이꽃, 씨름꽃, 장수꽃, 외나물 등 별칭도 많다. 이 중에서 앉은뱅이꽃, 오랑캐꽃이란 이름이 나는 좋다.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면 앉은뱅이꽃이라는 이름이 가장 좋다. 세상의 앉은뱅이로 살며 들에 나가 이 꽃을 찾아야 겠다.(손경선)
아픈 이의 손을 잡는 손이 시를 쓰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문장은 시가 되기를 바란다. 지친 삶에 잠시 쉼이 되는, 작은 생명의 기적을 위해 두 손을 모은다.(박언휘)
삶과 죽음, 죽은 자와 산 자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영원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다시래기의 미학을 곱씹어본다. 지금은 새로운 철학과 서사로 갈아타야 할 때, 새로운 시를 위해 나는 오늘도 길 위에 서 있다.(김완)
나도 모르게 봄은 오고 또 봄은 가고 꽃은 피고 또 잎은 지고 세월은 오고 또 그 세월은 마저 가고 그나저나, 아득하구나.(주영만)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믿음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운명에 의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그 인생을 스스로 아름다운 고통으로 여기고 희망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김경수)
의학이 몸의 언어를 읽는 일이라면 시는 마음의 언어를 듣는 일이다. 오랫동안 초음파실에서 수많은 생의 진동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은, 그 안에는 언제나 말로 닿을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곳에서 피어난 파도의 잔향을 시의 언어로 전한다.(고현심)
눈을 감으니 얼굴이 젖었다. 문을 여니 강물이 흐르고 물 속에서 춤추는 벚꽃, 말들은 물고기 되어 강 아래에 돌고 돈다. 강 바닥은 바위 같은 시로 가득했다.(서화)
시인의 말 스스로 묶이지 않는 시간들로 빠딱하지만 자유롭게 함께.(박권수)
아침 첫 커피 옆에 오늘 할 일을 한 줄로 적는다. 절대 지우지 않는다.(김호준)
겨울, 길을 걷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나를 따라간다. 이 계절에도 오리들은 알을 낳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와 연결돼 있다. 단순화해야만 몰입할 수 있는 과제가 발등에 놓인다.(윤태원)
질병의 은유는 문학적 완성도에 따라 성공한 은유가 될 수도, 실패한 은유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보류하고 은유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평가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면 시를 쓰는 의사로서 직무 유기가 될지도 모른다.(김연종)
입술 사이로 흐르는 색깔의 끝닿은 숨결을 보았고, 수술대 위에 누인 채 떼어지는 인연의 흐릿한 이별을 보았고, 바위에 뿌리 내릴 조마조마한 생명력을 보았다. 본 것을 읽을 수 있을까, 헐떡이지 않고.(유담)
부활절을 지난 월요일, 활짝 핀 벚꽃 가지를 쥔 아이들 진료실에 향수 한 방울 뿌려진다. 망토를 휘날리는 슈퍼맨이 되었다가, 반짝이는 빽빽이 신발로 대기실을 밝힌다. 화창한 봄날 꽃구경을 가지 못하는 진료실에 꽃으로 날아온다(송명숙)
시는 언제나 그리움을 부르는 작업이다. 부재하는 것이 어딘가 존재하리라는 희망은 용기를 가져오고야 만다. 부재는 소멸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소통을 매개로 고된 삶의 해방구가 되어 준다. 상실의 일상에서 시가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박영미)
의사가 된 뒤, 43년 동안 쉼없이 살다가 정년을 맞기 때문인지 매일 매일 내가 어디에서 왔고, 나의 삶이 어디로 이어질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나는 매일 매일 지금 이순간 무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하니 지난 67넌 동안 이미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서홍관)
- 전문의 없는 교정 시설…정신질환 수용자 진료 의무화 추진
- 제77차 의료현안 관련 대한의사협회 정례브리핑
- "열 39.4도까지 참아도 돼" 논란 한의사, 결국 사과
- 국립대병원 의료장비 "노후화 심각" 17곳 중 9곳 내용연수 초과 30%↑
- 코로나19 헌신했더니…급여비 환수 철퇴 법원도 '적법' 판단
- 9월 지역의사선발전형 수시모집 앞두고 '거주요건 기준' 변화…왜?
- 의료혁신위 대정부 권고 제안 '일차의료 기능 강화 및 역할 확대'
- 5개 보건의약단체 "차지호 의원 WHO 사무총장 후보 지명 지지"
- 프로포폴 처방 때 투약내역 확인 '권고', 오늘부터
- 국경 넘어 전한 따뜻한 손길…충북의사회, 캄보디아서 의료봉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