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의사과학자 키운다더니 군대로? 병역 장벽에 꿈 접는 청년 연구자들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병역 제도가 오히려 연구 인재를 연구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이 확대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지원자가 감소하고,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낸 젊은 의사들마저 연구 중단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과 한국의사과학자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한 의사과학자 양성 위기 극복을 위한 병역 제도 개선 정책 간담회가 24일 개최됐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정부의 의사과학자 육성 정책과 국방부병무청의 병역제도가 충돌하면서 미래 바이오헬스 산업을 이끌 연구 인재들이 연구를 중단하거나 진로를 포기하는 현실이 공유됐다.
참석자들은 의사과학자 양성과 군 의료인력 확보를 제로섬 관계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바이오 경쟁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의사과학자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만큼, 병역제도 역시 연구 인재의 성장 경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사이언스 제1저자도 연구 중단 위기병역 장벽에 막힌 청년 연구자들
올해 9월 내과 전공의 수련을 앞둔 박준석 전공의(서울의대 졸업)는 의대 입학 이후 8년간 뇌 회로 연구에 매진해 최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다. 하지만 그는 병역 문제로 연구 지속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박준석 전공의는 동물실험과 임상연구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데 3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하면 연구가 사실상 단절된다며 그동안 투입된 국가 예산과 장학금, 연구 성과도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전공의는 특히 내과와 같은 필수의료 분야는 연구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먼저 군의관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며 주변에서도 굳이 힘든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할 이유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연구 단절은 개인의 진로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장기간 투자해온 연구 역량과 인재를 잃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군 복무로 인해 연구를 중단한 사례도 소개됐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김영훈 군의관은 현재 백령도 해군 제6여단에서 복무 중이다.
김영훈 군의관은 2023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가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 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연구를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대체복무를 선택할 경우 만 34세 전후 독립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지만 군 복무를 하게 되면 만 37세까지 대학원생 신분에 머물게 된다며 가정을 꾸려야 할 시기에 경제적 기반 마련을 미루고 다시 취약한 대학원생 신분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김 군의관은 과학기술원은 군 복무 중 학업을 지속할 수 없어 휴학해야 하는데, 이 경우 연구비와 인건비 지원도 받을 수 없어 개인 비용으로 연구를 이어가야 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의사과학자들은 연구 단절뿐 아니라 경력 형성 지연, 경제적 부담, 연구비 공백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 대상에 포함되면서 의사과학자 진로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복지부는 키우고 국방부는 막고지원자 감소한 의사과학자
이민구 한국의사과학자협회 부회장(연세의대 약리학교실 교수)은 발제를 통해 미국의 옐로우베레(Yellow Berets)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우리나라 병역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민구 부회장에 따르면 2024년 내과정신건강의학과 등 6개 전문과목이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 대상이 된 데 이어 2026년에는 제한 과목이 12개로 확대됐다.
이 부회장은 정부는 연간 100~150명의 의사과학자 배출을 목표로 하지만 현재 기초의학 분야 전문연구요원 정원은 전국적으로 30명 수준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과 병역 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베트남전 당시 미국은 의사과학자들에게 연구 중심 대체복무 기회를 제공했고, 이들이 이후 미국 바이오의학 연구 발전의 핵심 축이 됐다며 우리도 군의관 확보라는 단기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 연구 경쟁력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보건복지부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려 하지만 국방부는 군의관 확보를 위해 같은 인재를 징집하고 있다며 부처 간 정책 목표 충돌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 지원자 감소 정부도 문제 인식
김민혜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보건의료기술개발과 사무관은 정부 역시 의사과학자들이 병역 문제로 연구를 중단하거나 진로를 포기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사무관은 복지부는 2019년 전공의 연구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학부생,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자까지 전주기 의사과학자 양성체계를 구축해 왔으며 관련 예산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2023년 연간 47명이던 의사과학자 배출 규모가 2025년에는 83명 수준으로 증가하는 등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이 확대된 이후 의사과학자 진로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김 사무관은 2024년 필수의료 분야 6개 전문과목이 전문연구요원 편입 제한 대상이 된 이후 내과계열 등을 중심으로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참여 수요가 감소했다는 현장의 의견이 있었다며 설문조사에서도 전문연구요원 제도 변화로 인해 진로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국방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며 의사과학자들이 연구를 중단하지 않도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군 의료인력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방부도 의사과학자 양성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매년 의사과학자 수요를 조사하고 예외 적용을 협의하는 방식으로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단 한 명의 예비 의사과학자라도 병역 문제로 연구를 포기하게 되면 그 영향은 개인에 그치지 않고 후배 세대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청년들이 진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은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단기장기 대안을 제시했다.
김 조사관은 단기적으로는 병무청 고시와 관리 규정을 개정해 바이오기초의학 분야 전문연구요원 정원을 확대하고 전문과목 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병역법 제34조 개정을 통해 국가가 지정한 의생명 연구에 종사하는 의사를 공중보건의사와 유사한 보충역 형태로 인정하는 독립적 의사과학자 병역트랙 신설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이동건 국방부 보건정책과 사무관은 병역자원 감소 상황에서 군 안보와 장병 건강권, 병역 형평성, 국가 발전 등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관계 기관과 함께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김윤 의원은 축사를 통해 정부는 바이오산업 육성과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병역제도는 연구 인재를 군의관으로 차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국방부는 군의관 확보라는 목표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바이오산업 경쟁력과 의과학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장기적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군의관 부족 현상이 의료대란과 의대생들의 현역병 입대 증가 등의 영향으로 심화됐지만, 단순히 의사과학자 후보군을 군 복무에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의 인력 수요와 국가 연구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대승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군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별도 양성체계 구축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 역시 의사과학자 양성 위기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히 늦은 대응이라면서도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함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기초의학 교수 부족과 의사과학자 양성 문제는 20년 넘게 제기돼 왔지만 실질적인 후속 대책은 부족했다며 학생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과학자 양성과 바이오산업 육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인재를 키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국가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오늘 논의가 단순한 토론으로 끝나지 않고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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