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노인 다약제 해법?…"덜 쓰는 게 아니라 제대로 쓰는 것"
노인 다약제 관리는 약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약을 제대로 쓰는 일이다.
한국의약평론가회는 23일 저녁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노인 다약제 사용 관리 방안 포럼을 열고, 초고령사회에서 늘어나는 다약제의 위험성을 살피고, 정책이나 시스템을 통한 통합 관리 체계 필요성을 공유했다.
먼저 이은주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는 의사 관점에서의 관리 방안 발제를 통해 노인 다약제 복용은 단순한 복약 문제가 아니라 약물부작용, 상호작용, 낙상, 노쇠, 사망 위험을 높이는 임상 과제라고 진단했다. 노인진료는 실제로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매일 복용 약물은 5.3개, 5개 이상 복용하는 다약제 비율은 82.4%에 이른다.
왜 이렇게 높을까.
의료체계의 낮은 진입 장벽과 잦은 의료 이용, 처방이 곧 진료라는 그릇된 인식, 고령화와 다질환 동반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게다가 처방약뿐 아니라 비타민, 건강식품, 일반의약품까지 뒤섞이면서 복약 목록은 더 복잡해진다.
병원을 여러 곳 오가며 진료받는 일이 흔하고, 약을 받지 못하면 진료가 덜 된 것처럼 느끼는 문화가 다약제를 더 쉽게 만든다는 얘기다. 또 인구 고령화로 만성질환과 노인 인구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약물 부담은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 약이 많아질수록 약물 상호작용과 처방 중복, 불필요한 약의 누적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일본보다 노령화가 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약물 사용은 오히려 많다는 점에서, 국내 노인 진료의 구조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인 다약제는 생리학적 변화와 임상적 취약성이 겹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나이가 들면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이 모두 변하고, 간과 콩팥 기능 저하로 약물이 체내에 오래 남는다. 같은 용량을 써도 부작용이 더 잘 생기고, 약물 간 상호작용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임상시험에서 고령자가 배제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노인 환자에서의 유효성과 안전성 근거도 부족한 상황이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인식도 달리해야 한다. 약물 알레르기뿐만 아니라, 설사, 변비, 부종, 어지럼, 기력 저하 같은 비전형적 증상도 모두 약물 관련 이상반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인의 약물 부작용은 입이 마르고, 단맛을 못 느끼고, 힘이 없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식으로 나타나기 쉬워 노화 증상으로 오인되기 쉽다. 이 때문에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질병 진행보다 약물 원인을 먼저 의심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약제는 노쇠와도 높은 연관성을 가진다. 노쇠는 한 장기의 질환이 아니라 전반적 기능 저하 상태를 뜻하며, 다약제는 낙상, 기능 저하, 영양 불량, 인지기능 악화, 입원 증가로 이어지고 사망률까지 높인다. 다약제 복용으로 약물 순응도가 떨어지면 치료 효과가 낮아지고, 반대로 불필요한 약을 계속 늘리면 부작용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 다른 문제는 처방 연쇄(Prescbing Cascade)다. 약의 부작용을 새로운 병으로 오인해 약을 더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결국 약이 약을 부르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콧물에 항히스타민과 비충혈제거제를 쓰면 졸림과 입마름, 배뇨장애, 식욕부진을 겪게 되고, 이를 다시 다른 약으로 보정하기 위해 알파차단제, 안정제,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투여하면 낙상과 섬망, 우울,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새 약을 더하기보다 원인이 된 약을 먼저 끊는 판단이 중요하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은 약물조화클리닉 형태의 다학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노년내과 전문의와 임상약사가 함께 환자의 처방약, 비처방약, 건강기능식품을 모두 확인하고, Beers criteria(미국노인의학회에서 제시하는 65세 이상 노인에서 부적절하게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약물(PIMs)과 주의가 필요한 약물상호작용을 정리한 가이드라인), 스톱스타트 기준, 항콜린성 약물 여부 등을 검토한다. 이후 환자와 약을 모두 펼쳐 놓고 복용 이유와 필요성을 재점검하며, 중복 약과 불필요한 약을 줄인 뒤 한 달 내 재평가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는 환자와 가족의 수용성을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노인 다약제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은주 교수는 새 약은 저용량에서 시작하고, 증량은 천천히 하며, 한 번에 여러 약을 동시에 바꾸지 않아야 한다. 오래된 약은 1년마다 재평가해야 하고,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먼저 약을 의심해야 한다. 또 흔한 부작용은 사전에 설명해 환자가 불안 때문에 다른 진료과를 전전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라면서 노인의 다약제 관리는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평가하고 적절히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오정미 서울약대 교수는 약사약국 관점에서의 통합적 접근 발제에서 노인 다약제 관리는 개별 약국의 실천을 넘어 정책시스템 차원의 통합 설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아래, 수가인프라인력거버넌스를 아우르는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인 다약제는 단순히 약의 개수가 많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보통 5개 이상 복용하면 다약제, 10개 이상이면 초다약제라고 하지만, 핵심은 숫자보다 약물의 적절성에 있다. 임상적 적응증이 불분명한 약, 중복 처방, 위험 대비 이득이 낮은 약이 누적될 때 비로소 진짜 문제가 된다. 65세 이상 노인에서 5개 이상 약물 복용이 절반을 넘고, 국내 75세 이상에서는 70% 수준에 이른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다약제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의료 접근성, 약가 정책, 외래 다기관 이용 패턴을 들었다. 여기에 처방을 늘리는 행위에는 수가가 있지만, 약을 검토하고 조정하며 교육하는 약사약국의 활동에는 보상이 미흡해, 현행 수가 구조가 오히려 다약제를 조장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약이 약을 부르는 임상 패턴이다. 다만 약물 부작용은 낙상, 입원,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조정과 관리로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수정 가능한 위험요인이다.
해법으로는 탈처방(deprescibing)을 제시했다. 탈처방은 환자의 치료 목표, 건강 상태, 기대여명, 가치관과 선호도를 고려해 불필요한 약을 중단하거나 감량하는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다.
다약제 관리를 위한 5대 과제로는 수가, 시스템, 인력, 환자군 우선순위, 거버넌스를 꼽았다.
먼저 약물 검토교육조정에 대한 정당한 수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 5개 이상 복용 환자에게 일정 시간 이상 면담하고 복약 상태를 평가해 문서화하면 별도 보상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시스템과 인프라 통합도 선결돼야 한다. 현재 EMR, DUR 등 약물 관련 데이터가 분절돼 있어 한 번의 처방 맥락에서 전체 복용 약을 종합적으로 보기 어렵다. 다약제 관리가 가능하려면 데이터를 연결하고, 약국과 병원, 요양시설까지 연동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하다. 다약제 관리는 단순 복약지도 수준을 넘어 전문성이 요구된다. 현직 교육뿐 아니라 약학대학 단계부터 노인 약물관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고위험군 우선 접근도 이뤄져야 한다. 다약제 환자 모두를 동시에 관리하기보다, 초다약제 환자나 약물이상반응 경험자, 요양시설 거주자처럼 고위험군부터 선별해 먼저 개입해야 한다.
거버넌스도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유관 학회단체, 환자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범부처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다. 또 초다약제 비율과 약물이상반응 입원율을 매년 측정하고 공개하는 애뉴얼 리포트도 발행해야 한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현황을 수치로 드러내고 평가 지표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오정미 교수는 노인 다약제 관리를 위해서는 약물검토에 대한 보상, 전체 약물을 볼 수 있는 시스템, 노인 약료 전문 인력 양성, 고위험 환자 우선관리, 약국 노인 약물안전 인증제 도입이 필요하다라면서 좋은 약이란 더 많은 약이 아니라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약이며, 그 경계를 의사와 약사가 함께 명확히 해야 한다. 다약제 관리의 목표는 약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약은 덜고 꼭 필요한 약은 안전하게 쓰는 데 있다고 전했다.
유미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은 건강보험 약제 급여 적정성 측면 발제를 통해 노인 다약제 문제는 사전 점검과 사후 평가를 함께 묶어야 풀 수 있는 건강보험 과제라고 진단했다. 또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와 DUR을 축으로, 환자 단위 통합 관리와 처방전 간 중복 점검 강화가 선결과제라는 지적이다.
진료비 총액 116조원 가운데 노인 진료비가 전체 4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다약제와 약물이상반응 관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가 겹치면서, 건강보험 차원의 약제 관리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심평원은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와 DUR을 통한 실시간 점검을 통해 노인 다약제 관리에 다가서고 있다.
약제 급여 적정성 평가는 주로 처방건당 약품목수, 6품목 이상 처방 비율, 소화기관용약 처방률, 노인주의 의약품 처방률 등을 통해 요양기관의 처방 경향을 살핀다. DUR은 병용금기, 연령금기, 동일 성분 중복, 효능군 중복, 투여용량과 기간, 노인주의 의약품 등을 처방 단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실제 처방 변경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약제의 핵심은 약 개수가 아니라 복용의 적절성이다. 5개 이상 복용은 다약제, 10개 이상은 초다약제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적응증 없는 약, 중복 약, 이득보다 위험이 큰 약이 얼마나 포함됐는지가 더 중요하다.
심평원은 2002년부터 처방건당 약품목수, 2006년부터 6품목 이상 처방 비율 평가하고 있으며, DUR은 2004년부터 병용금기와 연령금기, 동일 성분 중복, 투여 용량과 기간 등을 점검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산공급 중단 의약품이나 비대면 진료 시 제한 약제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도 더해져, 개인의 복약 안전을 높이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
평가 결과는 실제로 처방 행태를 바꾸는 효과를 냈다. 항생제 주사제와 주사제 처방률은 제도 도입과 정보 공개 이후 큰 폭으로 감소했다.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의료기관에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 자율적 질 향상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은 병원별 평가 수준을 확인해 선택권을 넓히고, 의료기관은 상대적 위치를 파악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노인 다약제 관리에서는 기존 체계의 한계도 분명하다. 처방건 단위 평가 방식은 여러 의료기관을 오가는 노인의 실제 복용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한 기관에서는 5개 미만으로 보이더라도, 타 기관 처방을 합치면 다약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방전 간 중복 사용과 약품목수 평가를 강화하고, 환자 단위의 통합 시스템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판단이다.
노인주의 의약품 관리도 주요 과제다. 항콜린제, 벤조디아제핀계, 항정신병제 등은 노인에서 부작용 위험이 크지만, 실제 처방에서는 여전히 빈도가 높다. 소염진통제처럼 만성질환과 겹쳐 통계상 구분이 어려운 약도 있지만, 노인주의 약물들이 반복 처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약제들이 요양기관별로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쓰이는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처방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처방전 간 중복 점검, 환자 단위 통합 관리, 교육과 인식 개선도 관건이다. 의사와 약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공공 시스템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이다.
유미영 위원은 지금까지는 명세서 위주의 관리였다면, 앞으로는 환자 단위 통합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건강보험 약제 급여 적정성 관리의 방향도 사후 평가에서 사전 예방과 통합 관리로 옮겨가야 한다라면서 노인의 다약제 관리는 결국 건강보험의 적정성 평가, 실시간 DUR, 환자 단위 정보 연계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영역이다. 다약제 관리가 개별 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보험 전체의 질 관리 문제라고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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