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의사수필가는 누구인가?
등단이 필요한가, 수필집을 출간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하는가.
지난 주 열린 한국의사수필가협회 정기총회에서 회원 자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의견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의사수필가는 누구인가?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 아닐까.
러시아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안톤 체홉(Anton Chekhov)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의학은 나의 본처이고 문학은 나의 정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재치 있는 농담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체홉의 삶이 담겨 있다.
그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났고, 밤에는 원고지 앞에 앉아 소설과 희곡을 썼다. 의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였지만, 체홉에게 두 길은 결국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인간이었다.
의학은 인간의 몸을 다룬다. 병의 원인을 찾고, 통증을 줄이며, 생명을 연장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의사가 매일 만나는 것은 질병만이 아니다. 불안해하는 환자와 초조한 보호자, 늙어가는 부모와 상실을 견디는 가족을 만난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희로애락과 마주한다.
문학은 그 인간을 이해하려 한다.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용기와 두려움을 언어로 기록한다. 의학이 몸의 상처를 돌본다면, 문학은 삶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총회에서 만난 한 회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북 울진에서 올라온 이종규 선생이다. 서울까지 자동차로 네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울진의 작은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자녀들은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마을을 지킨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은 낮이 되면 데이케어센터에 모인다.
이종규 선생은 매주 수요일이면 그곳을 찾는다. 의사 가운 대신 아코디언을 들고 간다. 노래를 연주하면 노인들이 따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는다. 의학 교과서 어디에도 아코디언 연주가 치료법으로 적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외로움을 덜어주고 삶의 기쁨을 되찾게 하는 일 또한 넓은 의미의 돌봄일 것이다.
그는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쓴다. 사라져 가는 농어촌의 풍경, 늙어가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의사의 눈으로 본 인간의 모습을 기록한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의사수필가는 특별한 문학적 기교를 가진 사람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관심을 끝내 놓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돌이켜보면 의사들은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만난다. 응급실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젊은이를 만나고, 외래에서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침묵을 마주한다. 수술실에서는 얼굴을 다친 병사의 상처를 봉합하고, 병실에서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노인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들은 의무기록에 모두 남지 않는다. 수술기록지에도, 검사 결과지에도 다 담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의 마음에는 남는다.
글쓰기는 어쩌면 그 기억을 보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잊히기 쉬운 인간의 표정과 목소리, 고통과 희망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환자의 비밀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를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 의사수필가는 단순히 의사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등단증이나 출간 경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는 환자를 통해 인간을 만나고, 글쓰기를 통해 인간을 성찰하는 사람이다. 의학이 가르쳐 준 현실과 문학이 보여 준 통찰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총회에서 장성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길이며, 의학은 인간을 돌보는 가장 높은 실천적 철학입니다. 우리 협회가 그 두 길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가는 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나는 이 말이 의사수필가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려 하고, 의학은 인간을 돌보려 한다.
울진의 데이케어센터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의사도, 병실에서 환자의 손을 잡는 의사도, 원고지 위에 인간의 이야기를 남기는 의사도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의사수필가는 그 길들이 만나는 곳에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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