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지역의료의 위기와 지역의사제, 통합적 정책 거버넌스 구축이 먼저다
대한의사협회 [의협신문]은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료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돌파구를 제시하기 위한 연중 기획 위기 한국의료, 돌파구를 찾는다를 연재한다. 사회적 공감과 여론을 아우르기 위해 한국정책학회한국지방자치학회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한국자치행정학회 등 정책 분야에서 활약하는 전문가의 시각에서 한국의료의 위기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최근 우리 사회는 지역의료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할 만큼 심각한 의료 불균형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응급실 운영 중단, 지방 분만 인프라 축소, 필수의료 인력 공백은 더는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의료 접근성 격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응급환자의 장거리 이송이 반복되고 있으며, 분만소아외상 등 필수의료 분야의 공백은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의사제는 지역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정 기간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의사를 양성하자는 취지는 공공의료 기반 강화와 의료 접근성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정책적 의미가 있다. 실제로 여러 OECD 국가들도 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장학제도, 지역의무복무, 공공의대 모델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부 역시 지역필수의료 붕괴가 더는 시장 자율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의료는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 영역이며, 특히 응급분만외상감염과 같은 필수의료는 국가의 일정 수준 개입과 책임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지역의사제를 추진하는 배경 역시 단순한 의사 수 확대가 아니라, 지역 간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공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시각 차이는 여전히 상당하다. 정부는 지역의사 정원 확대와 지역 정착 지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통해 필수공공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최근 의료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의료계는 지방 근무 기피의 주요 원인으로 자녀 교육, 배우자 직장, 가족과의 분리, 문화여가 인프라 부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특정 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많은 국민이 지방 정주를 고민할 때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생활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수의료 기피 원인에 대한 인식 차이도 존재한다. 의료계는 낮은 의료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의 미비를 핵심 원인으로 지적하는 반면, 일반 국민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법적 보호 문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 부족이라는 하나의 변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정책문제다.
정책성과의 관점에서 보면 정책의 최종고객은 국민이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의료계는 그 목표를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핵심적 정책 파트너다. 따라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요구를 중심에 두되, 의료계의 현실적 어려움과 우려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종고객인 국민도 중요하지만, 정책 수행의 핵심 주체인 의료계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 정책 고객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의사제의 성과를 단순히 지역 의사 수 증가로만 평가하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의료 접근성과 건강 수준이 실제로 개선되었는가 하는 결과(outcome)다. 예를 들어 지역 응급의료 공백 감소, 분만 가능 지역 확대, 중증환자 이송시간 단축과 같은 지표들이 실질적 정책성과가 될 수 있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지역필수의료 인력 확충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일정 수준의 인력 확대는 불가피할 수 있으며 정부의 문제의식 또한 충분한 정책적 타당성을 가진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정원 확대가 아니라, 확대된 인력이 실제로 지역에 정착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결국 이러한 성과가 나타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행조건은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하고 정주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인식 변화다. 정책의 핵심은 의사들이 지역에 남아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전문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에 있다. 단순한 의무복무 제도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의료 체계를 만들기 어렵다.
지역의료 문제는 전형적인 사회적 난제(wicked problem)에 가깝다. 단순히 의료 인력 확충이나 근무환경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방소멸, 지역경제, 교육, 문화, 주거, 교통 등 도시 형성과 지역 정주 여건 전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의사제 논의는 의료정책 차원을 넘어 어떻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종합적 국가 과제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 거버넌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의료 문제는 결국 지역소멸과 도시경쟁력의 문제이며, 교육국토문화산업 정책이 함께 결합하여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따라서 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통합적 정책 거버넌스가 우선 구축되어야 한다. 그 위에서 정부와 의료계가 국민 생명 보호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현실적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정부는 공공성과 의료 접근권을 강조하는 동시에 의료계가 제기하는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의료계 역시 지역필수의료 문제가 단순한 직역 갈등을 넘어 국민 생명과 공동체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는 점을 무겁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 추진도 경계해야 하지만, 의료계 또한 현실적 대안 제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역의료는 특정 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공공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의 확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한 사회적 타협과 정책적 상상력이다. 정부와 의료계,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장기적 논의 구조 속에서 보다 균형 잡힌 해법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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