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다음 팬데믹 대응, 선제적 법·제도 설계에 달렸다"
메르스 이후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감염병 대응은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제2의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현영 가톨릭의대 교수(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와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국제암대학원대학교 보건AI학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발표한 대한민국의 코로나19 입법적 대응과 과제: 팬데믹 위기 속 법적 프레임워크의 중요성 논문을 통해 메르스 이후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감염병 대응이 어떻게 법과 제도로 진화했는지를 분석하고, 감염병 대응의 성패는 의료 역량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 속도와 정교함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메르스(2015) 이후부터 코로나19 종료(2025) 국면까지의 감염병 관련 법률과 제도 변화를 추적했다. 분석 대상에는 감염병예방법, 정부조직법, 의약품의 개발 및 긴급공급을 위한 특별법, 코로나19 백신 피해보상 특별법 등이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방역 체계는 병원 내 감염 대응 중심 구조(메르스)에서, 지역사회 전파 대응과 사회적 피해 완화 중심 구조(코로나19)로 확장됐다. 감염병 대응은 더 이상 의료기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행정과 지역사회, 시민의 협력이 맞물린 복합 시스템이 됐다.
연구진이 제시한 핵심 개념은 팬데믹 대응 5중 구조다.
법률을 중심축으로 두고, 이를 거버넌스가 뒷받침하며, 그 바깥에서 역학 대응의료 대응사회 대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모델에서 법은 단순한 규범이 아니라 공중보건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실행의 토대이며, 거버넌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보건당국, 의료체계를 연결하는 조정 장치다. 역학 대응은 감염원 차단과 전파 억제를 담당하고, 의료 대응은 조기진단치료중환자 관리백신과 의약품 공급을 포괄하며, 사회 대응은 거리두기, 영업제한, 취약계층 보호, 손실보상까지 확대된다.
메르스 이후 법적 변화는 분명한 방향성을 띄었다. 역학조사관 배치 근거가 마련되고, 신종 감염병이 1급 감염병으로 분류되면서 국가의 개입 권한이 강화됐다. 환자 동선 공개, 격리시설 지정, 강제검사와 격리집행, 격리자 유급휴가와 생활지원 같은 제도는 당시 병원 중심 전파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메르스는 병원 내부 감염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그 결과 한국은 추적격리공개보상을 결합한 법체계를 단계적으로 정비했다.
코로나19는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적 전파를 동반했다. 이에 따라 대응의 축도 달라졌다. 코로나19 시기에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고, 보건복지부에 제2차관이 신설되며, 지역별 질병관리센터와 국립감염병연구소가 설치되는 등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역학조사관 수도 대폭 늘어나 중앙과 지방을 아우를 수 있도록 대응 역량을 강화했으며, 방역은 더 이상 중앙집중형 지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지역 단위의 정보 수집과 판단, 행정 집행이 함께 작동했다.
역학 대응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공중보건 사이의 긴장도 두드러졌다.
메르스 당시 부족했던 정보공개가 코로나19 시기에는 확진자 이동 경로, 방문 장소, 접촉 정보 공개로 보완됐다. 그러나 개인정보 활용의 법적 기준은 여전히 정교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위치정보와 건강정보, 보험정보, 출입기록 등이 방역 목적에 활용됐지만, 공중보건 목적이 달성된 뒤의 삭제 절차와 사후 통제는 중요 과제로 남았다. 방역 데이터가 늘수록 투명성뿐 아니라 최소수집, 목적 제한, 삭제 원칙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의료 대응은 코로나19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됐다.
생활치료센터 운영,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의료기관 손실보상 선지급, 의료진 지원, 환자 이송체계 정비, 외국인 환자 치료비 부담 원칙 등이 시행됐다. 특히 한시적 비대면진료 허용은 감염 확산을 줄이면서도 의료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으로 평가됐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속심사 체계와 사전구매계약의 법적 근거는 백신과 치료제, 의료자원의 공급난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작동했다. 코로나19는 의료현장의 인력 부족과 병상 부족, 공급망 취약성을 동시에 드러냈고, 이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뒤따랐다.
백신 관련 보상체계도 중요한 쟁점으로 드러났다.
메르스 이후 구축된 예방접종 정보관리체계는 코로나19 시기에 접종 유급휴가, 접종 후 이상반응 피해보상, 국가 지원형 보상제도로 이어졌다. 실제로 2025년 제정된 코로나19 백신 피해보상 특별법은 인과성 입증과 보상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제도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였으며, 이런 보상체계가 백신 정책의 신뢰를 떠받치는 핵심 장치라고 짚었다.
사회 대응은 가장 큰 윤리적 긴장을 낳은 영역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의무, 다중이용시설 제한, 백신패스, 영업정지, 방역수칙 위반에 대한 과태료와 손해배상 논리는 감염 확산 억제에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동의 자유, 직업의 자유, 영업의 자유를 강하게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아동, 노인, 장애인, 노숙인, 시설 거주자 등 취약집단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통해 정부는 손실보상, 생활지원, 취약계층 대상 방역물품 지원, 사회복지시설 맞춤형 대응을 법제화했다. 즉 방역은 단지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국의 감염병 대응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연구진은 사회적 재난으로서의 감염병을 법으로 다뤘다는 점을 높이 샀다. 코로나19는 질병이면서 동시에 경제와 교육, 노동, 돌봄, 인권을 뒤흔든 복합 위기였다.
국회는 여야 합의를 통해 손실보상과 피해보상, 의료인력 지원, 백신 피해보상, 긴급의약품 공급 같은 제도를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이런 입법적 반응이 행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가능하게 했고, 시민의 수용성과 사회적 협조를 뒷받침했다는 판단이다. 법이 없으면 강한 방역도 지속되기 어렵고, 법이 정교하지 않으면 방역은 쉽게 인권 갈등으로 번진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다시 오게 될 팬데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려면 감염병 전문인력 양성, 국가 연구기반 확충, 데이터 활용 체계 정비, 글로벌 감시체계 강화, 정책 싱크탱크 설치 등이 미리 법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과 정책설계가 현장대응에 뒤늦게 붙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위기 이전에 입법적 준비가 끝나야 한다. 팬데믹 준비는 재난이 닥친 뒤가 아니라, 평시에 법을 만들어 두는 일에서 시작된다.
신현영 교수는 이 논문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빠른 방역이라는 단순 서사에서 끌어올려, 입법과 행정, 의료와 사회보장의 결합 구조로 설명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면서 메르스가 병원 감염의 교훈이었다면, 코로나19는 지역사회 전파와 사회적 비용, 인권의 문제를 함께 드러낸 사건이었다. 다음 감염병 위기를 막는 가장 중요한 준비는 병상이나 약품만이 아니라, 위기를 지탱할 법과 제도를 미리 설계해 두는 일이라고 명토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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