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강릉에서 마주한 '지역 필수의료 붕괴' 예고편
최근 장용석 강릉동인병원 과장과 인터뷰를 하던 중,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들었다.
전라남도에는 현재 소아외과 전문의가 단 한 명만 남아 있다는 이야기는 의료계 안팎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문득 인구 20만 규모의 도시인 강릉에는 과연 소아외과를 볼 수 있는 의료진이 남아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어 여쭤보게 됐다.
답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릉아산병원에는 원래 소아외과를 담당하던 의료진이 두 분 있었다고 한다. 한 분은 젊은 소아외과 전문의였고, 다른 한 분은 간담도 전공이지만 소아외과 수술도 함께 가능한 교수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강릉 인구는 과거 23만 명 수준에서 현재 약 20만 명까지 감소했고, 소아외과 환자 자체도 많지 않았다. 결국 젊은 소아외과 전문의는 서울로 아산병원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전문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후 연세가 많은 간담도 전공 교수가 사실상 지역 소아외과 영역까지 버텨오고 계셨는데, 이미 은퇴를 앞두고 계셔서 매년 촉탁의 형태로 계약을 연장하며 근무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최근 의료 환경이 그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판결들 속에서는 해당 세부 전공자가 아닌 의사가 수술을 시행했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실제로 소아외과 전공자가 아닌 의사가 수술 후 거액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사례까지 회자되면서 현장의 위축감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결국 현재는 촉탁의인 교수님도 수술은 technically 가능하지만, 더 이상 소아외과 진료를 적극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제 강릉에서는 소아 충수염 같은 응급수술 환자가 발생해도 예전처럼 지역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나 서울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단순히 의사가 부족하다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이제는 정말 현실적인 논의를 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인구 20만 규모 도시마다 소아외과외상외과소아중환자 같은 초고난도 스페셜리스트를 모두 상주시켜야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권역 거점센터를 강화하고 대신 헬기응급이송NICU 연계 같은 이송 체계를 국가가 책임지고 촘촘하게 보완하는 방향이 더 현실적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가장 안심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 수가 부족한 지역에서 스페셜리스트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고, 결국 낮은 보상과중한 당직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 의료진은 떠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아무런 사회적 합의 없이 지역에도 다 있어야 한다는 당위만 반복한다면, 결국 현장에서는 의료진의 희생만 요구하다 하나둘씩 시스템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감정적인 접근이 아니라, 의료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지, 지역 의료와 권역센터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리고 필수의료 의료진을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강릉의 소아외과 이야기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지역 필수의료의 미래이며, 머지않아 전국이 마주하게 될 현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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