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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분만 요인 10~14% 불과…'의료진 탓' 프레임 왜 위험한가
증례 34주. 태아심박동 이상으로 응급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는 출생 직후 울음이 없고 늘어져 있었다. 3시간 뒤부터는 경련이 시작됐다. 뇌 MRI에서는 광범위한 저산소성 뇌 손상이 확인됐고, 의료진은 저체온 치료와 항경련제 치료를 시행했다.
결과는 뇌성마비였다. 출생 3년 뒤 내려진 진단이다.
이 같은 뇌성마비 경과는 통상 분만 중 저산소성 사건으로 해석되고, 제왕절개가 더 빨랐어야 했다며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사례의 원인은 의료진 과실이 아니다. 유전체 검사에서 SCN9A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고, 제대동맥혈 산도(pH 7.14, BE -9) 역시 심각한 태아가사를 뒷받침하지 않았던 것이다.
출생 직후 가스 검사나 유전자 검사가 없었다면, 이 사례 역시 수술 지연에 따른 뇌성마비로 판단됐을 가능성이 높다.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분만과 뇌성마비: 의학적 사실과 상생 보상제도 토론회는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뇌성마비를 둘러싼 기존의 분만 사고 중심 인식과 법적 판단 구조를 최신 의학적 근거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현주 고려의대 교수(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는 원인 미상의 저산소성 뇌 손상과 뇌성마비가 분만 과정의 문제로 단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신 의학적 근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설현주 교수는 뇌성마비를 둘러싼 대표적 가설을 ▲신생아 허혈성 뇌병증이 발생하면 그 원인은 모두 분만 중 저산소증인가 ▲저산소성 뇌병증이 모두 뇌성마비로 이어지는가 ▲의료진이 이를 예측예방할 수 있는가 등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설 교수는 최근 연구는 이 세 질문 모두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산부인과학회와 소아과학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뇌성마비의 주요 원인을 임신 중 요인으로 제시했다. 태아의 뇌 발달 이상, 유전적 요인, 태반 기능 이상, 자궁 내 감염 등이 대표적이다. 분만 중 사건은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조산은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꼽힌다. 미숙한 뇌 상태에서 출생한 이후 뇌출혈 등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태반 기능 이상 등 산전 요인이 더해지면, 태아는 이미 취약한 상태에서 분만을 맞게 되고 정상적인 진통 과정조차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설 교수는 이미 산전 단계에서 형성된 취약성이 분만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일뿐, 이를 단일 원인으로 보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전체 연구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2023~2024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기존 원인 미상으로 분류되던 뇌성마비의 약 30%에서 유전자 이상이 확인됐다. 일부에서는 분만 가사가 있었던 군에서 오히려 유전자 이상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으며, 약 8.5%는 조기 진단 시 치료 가능성도 제시됐다.
설 교수는 이제 뇌성마비를 단순한 분만 중 저산소 사건이 아닌, 유전적 요인을 포함한 신경발달질환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분만 과정에서 핵심 근거로 활용하는 태아심박동 모니터링의 한계도 지적했다.
설 교수에 따르면 분만 중 약 84%에서 태아 심박동 감소가 관찰되며, 대부분은 카테고리 2에 해당하는 애매한 소견이다. 이러한 이상 소견은 매우 흔하지만, 실제 뇌성마비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과거 연구에서는 심각한 이상 패턴에서도 뇌성마비 발생률이 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 교수는 현장에서 의사는 다양한 임상 정보를 종합해 판단하지만, 사후적으로 특정 시점의 모니터링 결과만으로 과실 여부를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태아 모니터링 도입 이후 제왕절개율이크게 증가했지만, 뇌성마비 발생률은 수십 년간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함께 제시했다.
설 교수는 이는 뇌성마비의 상당수가 분만 과정 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순민 연세의대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 경험을 바탕으로 뇌 손상과 장기 예후를 설명했다.
이순민 교수는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분만 사고로 생긴 것인가?인데,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며 뇌성마비의 70~80%는 임신 중 이미 원인이 형성되며, 분만 중 저산소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10~14%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대동맥혈 가스 분석의 의미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pH가 7.0 이상이면 분만 직전 심각한 저산소 사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분만 과정 책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객관적 지표다.
다만 동맥혈과 정맥혈을 구분하지 않으면 결과 해석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며 검사의 정확성 문제도 짚었다.
특히 예방 가능한 뇌성마비는 전체의 1~5% 수준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저산소 발생 시점 예측의 어려움, 모니터링의 낮은 특이도, 불가항력적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순민 교수는 뇌 손상 발생을 이중 타격(two-hit) 모델로 설명했다. 임신 중 감염이나 성장지연 등으로 이미 취약해진 뇌가, 분만 과정의 스트레스를 추가로 받으면서 손상이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또 뇌성마비가 출생 직후가 아니라 수개월~수년 뒤 진단되는 것은 뇌 발달의 특성 때문이지, 의료적 방치나 과실 때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의사이자 판사 경력의 유화진 변호사(유화진 법률사무소)는 분만 관련 소송 판례를 통해 법적 판단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유화진 변호사는 태아심박동 이상, 분만 지연, 제왕절개 결정 시점 등이 주요 쟁점이 되며, 의료진 과실이 일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판례에서는 책임비율 20~30%가 인정되며 수억 원대 배상 판결이 내려지고, 장기간 소송으로 인한 지연이자까지 더해져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동일 사건에서도 형사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짚었다.
유 변호사는 형사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이 필요하지만, 민사는 개연성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학적 불확실성이 큰 영역에서는 과실과 불가항력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기 어렵고, 판결 역시 사후적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발제자들은 공통적으로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국가 중심 보상체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의료분쟁 조정제도는 불가항력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을 확대했지만, 여전히 과실 여부 판단을 전제로 한 구조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의학적 불확실성과 다인자적 원인을 인정하고, 책임 공방을 넘어 예방과 지원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유 변호사는 개별 소송 구조가 지속될 경우 의료진 부담이 누적돼 분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속한 보상과 분쟁 최소화를 위한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정중재 활성화로 분쟁 줄여야현행 제도 보완 추진
박은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은 분만 중 저산소성 사건이 뇌성마비의 10~14% 수준이라는 점은 법률가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다며 이 같은 의학적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송 구조의 부담을 지적하면서 실제 청구금액은 20억원 수준에서 시작되는데, 의료진 입장에서는 소장을 받는 순간 압박이 상당하다며 결국 일부 책임이 인정되면 20~30%만 적용돼도 수억 원대 배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조정 단계에서불가피 판단이 나오면상당수 사건이 보상으로 종결되지만, 환자 측이 납득하지 못하면 결국 소송으로 이어진다며 이 경우 의료진은 선천성유전성 요인과 응급 상황의 불가피성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법원 판결이 의료계에서 보기에타당한지에 관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의료계가 적극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부분은 책임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제도 개선의 핵심 과제로 형사 부담 완화와 무과실 보상 확대를 제시했다.
이재관 이사장은 분만 의료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무과실 사고에 대한 부담이라며 복지부 역시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시민단체 등의 우려로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회 차원의 심의필터링 구조를 통해 최소한의 검증을 하고, 국가가 무과실 보상을 책임지는 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은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하지만, 대만은 우리와 같이 과실과 보상을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곽순헌 정책관은 무과실 보상을 전면 도입할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소송을 통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며 재판청구권 침해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분만 관련 사고를 계기로 정부 내부에서도 대책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재정당국의 소극적 기조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현행 제도의 개선 방향을 설명했다.
신 과장은 불가항력 보상 한도를 3억 원으로 확대하고, 보상 범위도 단계적으로 넓히고 있다며 산모 중증 장애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전면 보상하는 방식은 자기책임 원칙과의 충돌 문제가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분만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예외 적용 가능성은 열어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보다 조정중재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며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고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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