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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분만' 산부인과의사회 "조산사 확대 논의? 엉뚱한 발상"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정부와 국회를 향해 붕괴 위기에 놓인 분만 의료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며 국가 책임 강화와 제도 전면 개편을 촉구했다. 특히 최근 입법 추진 중인 조산사 분만 역할 확대 방향에 대해 현장을 모르는 엉뚱한 발상이라는 일침을 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5일 롯데호텔에서 제55차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재 분만 인프라는 민간의 희생만으로 유지되는 한계를 넘어섰다며 정부 정책의 방향 전환이 없다면 필수의료 붕괴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특히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는 조산사 활용 확대 움직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서영석 의원이 조산사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통합돌봄 체계에 조산사를 포함하려는 의도도 파악하고 있다면서 정작 조산원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인력은 10명도 채 되지 않고, 전체 활동 인구도 100명 미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조산사는 병원 내에서 산부인과 전문의와 함께 일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역할 확대를 논의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수 대외협력이사도 현장 사례를 들어 조산사 확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석수 이사는 우리 병원에도 간호과장이나 팀장 중 조산사 자격증을 가진 인력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독립적으로 분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의사와 함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구조라며 현실적으로 조산사 확대가 분만 인프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분만 인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장의 역할 구조를 무시한 접근은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재연 회장에 따르면, 10여 년 전 조산사 관련 사망사고가 있었고 이후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지면서 분만 시기를 놓쳤다는 법적 책임까지 제기돼 현장에서 조산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조차 분만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조산원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산모와 태아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을 전혀 모르는 엉뚱한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미 교육 강화나 기관 지정 확대 등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현장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의사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산부인과 전문의가 근무하는 의원 2291곳 중 산부인과 명칭을 유지하는 기관은 57.6%에 그쳤으며, 42.4%는 간판을 내린 상태다. 분만을 실제로 시행하는 의원은 10곳 중 1곳 수준에 불과했다.
또 전국 252개 시군구 중 84곳(33.3%)은 분만 의료기관이 전무한 분만 취약지로 나타났다.
의사회는 분만 인프라 회복을 위한 4대 과제로 ▲분만 수가 현실화 및 필수의료 유지 보상제 도입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 책임 강화 ▲분만 취약지 국가 직접 지원 ▲전문의 복귀 유인책 마련을 제시했다.
특히 분만은 24시간 대기 인력과 시설 유지가 필요한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며 일본, 대만처럼 인프라 유지 비용을 국가가 보전하는 별도 수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표했다. 의료사고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김재연 회장은 의료사고 배상체계와 관련해 현재 법안은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국가가 최종 위험을 부담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보험 보장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까지 국가가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며 단년도 예산 지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재보험 구조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출발이지만 여전히 선언적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의료분쟁조정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12대 중과실 규정 ▲2억원 자기부담금 ▲설명의무를 형사 면책 요건과 연계한 조항 등에 대해서는 방어 진료를 유도하는 독소 조항이라며 보완 입법 필요성을 제기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 회장은 헌법재판소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기준 언급됐던 임신 22주 내외를 거론하며 현재 국회에는 임신 주수 기준을 둘러싸고 다양한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임상 현실을 반영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 법안에서 주수 제한을 삭제하거나 상담 절차 중심으로 설계된 데 대해 의사를 배제한 상담기관 중심 구조는 환자 안전과 책임 구조 모두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초기 진료 시점이 통상 5~6주인데 10주 기준도 촉박하다는 논의가 있다며 10주 이후는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일정한 제한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법 공백 상태에서 의사 판단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최소 22주까지는 현실적인 기준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낙태약물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김 회장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약물이 상당한 규모로 파악된다며 약물 사용 기준, 처방권, 관리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약물 낙태는 최종적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관리 하에 이뤄져야 한다며 가이드라인과 안전망, 불법 유통 차단을 위한 법적 장치가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간판 규제 논의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진료과목 병행 표기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 대해 의사회는 국민 알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과잉 규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신규 기관에만 적용되는 차별적 규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료진은 소신껏 진료하고 환자는 국가 보호 아래 치료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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