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코로나 손실보상금 '삭감'에 법원 '제동'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가의 요청에 부응,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헌신한 의료기관에 지급하기로 한 손실보상금을 삭감하고 이미 지급한 보상금까지 환수하려 한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국가가 행정 목적을 위해 의료기관을 동원했다면 당시 약속한 기준에 따라 보상해야 하며, 사후에 불리한 기준을 만들어 소급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진정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못 박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최근 A의료법인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실보상정산결정 취소 청구 소송(2025구합53205)에서 보건복지부의 정산 결정을 모두 취소하고, 소송비용도 부담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의료법인은 서울에서 B요양병원과 C요양병원을 운영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자 서울특별시장에 의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두 요양병원은 기존 입원 환자들을 모두 타 의료기관으로 전원하고, 감염병 치료를 위한 인력 확충과 시설을 갖춘 뒤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전념했다.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코로나19 대응병원에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기로 약속했다.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 하면서 병원 경영난이 불거지자 보건복지부는 보상금 일부를 먼저 지급하는 개산급(槪算給) 형식으로 B요양병원에 약 51억원, C요양병원에 약 53억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든 2024년 12월에 발생했다. 보건복지부는 보상금 정산 과정에서 2022년 11월 개정한 코로나19 손실보상 업무안내(11판)를 적용했다. 보건복지부는 이 지침에 전담병원 지정 전보다 의사 수가 20% 이상 감소한 경우 회복기간 보상금을 감액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 보건복지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두 병원의 보상금을 삭감한 뒤, 이미 지급한 개산급 중 총 9700여만원(B병원 1244만원, C병원 8537만원)을 반환하라고 통보했다.
법원 종료된 사실관계에 사후 지침 적용은 진정소급
재판의 핵심 쟁점은 지정 해제를 완료한 시점 이후에 만든 불리한 지침을 소급 적용할 수 있는가였다.
BC 요양병원은 2022년 5월에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됐으나, 보건복지부가 적용한 감액 지침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22년 11월에야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감액 조항은 요양병원이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이후에 비로소 지침에 포함된 것이라며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에 사후적으로 만든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진정소급적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손실보상금을 받을 권리가 성립하는 시점을 엄격히 해석했다. 보건복지부는 최종 심의의결이 있어야 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지정이 해제된 시점에 이미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추상적 권리가 확정됐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회복기간 손실보상금은 전담병원 운영으로 인한 인력 이탈과 경영상 불이익을 보전하려는 취지라며 지정 해제 시점에 이미 기대진료비 산정을 위한 요소들이 모두 확정되어 있었으므로, 사후 지침으로 이를 깎는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국가 동원에는 신뢰 보장해야 법치국가 원칙신뢰보호 강조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법치국가 원칙과 행정청의 신뢰보호 의무를 강력히 강조했다.
재판부는 민간 의료기관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하는 것은 위급 상황에서 국가가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의료기관을 동원징발하는 것과 같다며 국가가 손실보상을 약속하며 의료기관을 동원했다면, 적어도 지정 당시에 공표된 기준에 따라 보상해야 할 규범적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전에 공표된 기준을 경미하게 변경하는 수준을 넘어, 사후적으로 의료기관에 중대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행정 상대방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파산 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사정이 없는 한, 국가의 요청에 협력한 민간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가 적용한 지침의 법적 성격에 관해서도 대외적 구속력이 있는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 아닌 내부 업무처리지침에 불과하다면서 보건복지부가 보상금 산정 방식이 변경될 수 있음을 사전에 고지했더라도, 그것이 사후에 불리한 기준을 소급 적용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 수가 많지 않은 요양병원의 특성상 일부 인력만 이탈해도 기대진료비가 큰 폭으로 감액된다면서 이러한 감액 조항을 소급 적용해야 할 만큼 신뢰보호 원칙보다 우선하는 중대한 공익적 사유도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정당한 보상금액을 직접 산정하기 어렵고, 정당한 처분은 환수 명령이 아니라 부족한 보상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므로 처분 전부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며 보건복지부의 정산 결정 전부를 취소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비슷한 이유로 손실보상금을 삭감당한 다른 의료기관들의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손실보상정산결정을 전부 취소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불복, 서울고등법원에 상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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