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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멈추면 넘어지기에…18년 이어온 섬 의료 지킴이

(주)보령 이경희 작가2026.02.06 08:31
■ 최명석 신안대우병원장
■ 최명석 신안대우병원장

전남 신안군 비금도와 도초도 주민에게는 주치의가 있다. 18년 동안 섬을 지키며 6000명이 넘는 섬마을 주민의 생명을 돌봐온 신안대우병원 최명석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이야기는 인간극장식의 감동 서사와는 결이 다르다. 그가 붙들고 있는 것은 개인의 헌신을 미담으로 소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의료의 맥이 끊겨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문제의식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현장을 뛰어온 일은, 그에게 있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사명이다.

섬으로 향한 선택, 고립의 현실과 마주하다

최명석 원장이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위치한 신안대우병원에 부임한 것은 2008년 2월이었다. 당시 병원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신안대우병원은 1979년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설립해 운영해 왔으나 1990년대 후반 병원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사실상 방치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주인 잃은 섬처럼, 의료 체계의 변두리에서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가 부임하기 전에도 몇몇 의사들이 병원을 맡았지만, 누구도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섬을 떠났다. 그럼에도 최 원장은 스스로 이곳을 선택했다.

육지에서 감기 환자를 보는 것보다, 제 전공을 살려 더 다양한 영역의 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청해서 들어오겠다고 했지요.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다시 차를 몰아 도착한 비금도에서의 삶은 이내 막연한 기대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부임 초기에는 병원 옥상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어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당시 섬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립돼 있었거든요. 오가는 배 편수도 훨씬 적었지요.

기상 상황에 따라 병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실은 의료진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배 의사들의 선택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섬에서의 의료는 매일이한계와의 싸움이었다. 특히 병원 운영 초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작은 낚싯배에 의존해 목포권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후송해야 했다. 야간이나 해무가 짙을 때, 풍랑주의보 등으로 기상이 악화되면 환자뿐 아니라 동승한 의료진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심한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할 때면, 23일을 속만 태우며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섬 의료를 버티게 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육지 병원으로 실려 나갔던 환자가, 어느 날 원장님, 저 왔어요 하며 걸어서 진료실로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의 보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최명석 원장은 지난 시간의 고단함을 잠시 잊은 듯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섬 환자들과 부대끼며 쌓아온 시간은 최명석 원장에게 사명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일상이 된 병원, 그리고 시스템을 향한 문제의식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살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렇게 쌓인 시간이 어느새 18년이 됐다. 그 시간은 최명석 원장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섬 주민에게도 신안대우병원은 더는단순한 의료기관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됐다.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은 먼저 전화를 걸어 원장님의 근무 여부를 확인한 뒤 병원으로 향한다. 진료실에서는 치료에 앞서 안부 인사가 오간다. 최 원장의 진료 차트에는 환자의 병력뿐 아니라 삶의 시간이 일기처럼 빼곡히 기록돼 있다. 뭍에 사는 자녀들의 연락처 또한 빠짐없이 적혀 있다. 갑작스레 육지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병원 금고를 열어 급히 치료비를 건네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신안대우병원은 치료의 공간을 넘어, 비금도에서 삶을 버티게 하는 마지막 안전망이 됐다.

그러나 최명석 원장은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며, 지역 의료가 의사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체감해왔다. 지역의료는 숫자로만 보면 보이지 않는다. 병상 수나 예산, 통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 그 세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개인의 헌신담으로 소비되기보다 대한민국 지역의료가 어떤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그 변화의 출발점 중 하나로 최명석 원장은 2010년 발표된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계획을 꼽는다. 국가 차원의 응급의료체계가 정비되면서 신안대우병원 역시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됐고,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응급실 운영비를 지원받게 됐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응급실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닥터헬기 도입은 섬 의료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과거에는 뇌졸중 등 골든타임을 지켜야 하는 환자들이 제때 육지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해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닥터헬기 도입 이후 이러한 사례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럼에도 한계는 여전히 분명하다. 기상이 악화되면 육지와의 연결은 즉각 끊기고, 충분한 의료진과 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진료에는 명확한 경계가 생긴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바다라는 물리적 장벽 앞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도 가장 힘든 부분입니다.

최명석 원장의 말은 조용하지만, 지역의료의 현실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병원 밖으로 이어지는 진료, 제도를 향한 발걸음

그래서 최명석 원장의 하루는 병원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지역의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중앙부처와 국회, 각종 정책 관계자들을 꾸준히 찾아다닌다. 그러나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다. 보고서와 숫자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문제가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현재의 지역 의료가 지나치게 의사 개인의 헌신에 기대어 유지돼 왔다고 지적한다. 고령의 병원장이 후계자 없이 섬 병원을 지키다 쓰러지고, 의료진 부족으로 병원이 문을 닫는 사례는 예외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되며, 제도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그의 말에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역 의료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될 수 없고, 그렇게 유지돼서도 안 된다. 계약형 지역의사제와 같은 제도적 대안, 그리고 지역의 현실을 정면으로 반영한 정책 설계는 더는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우리나라에는 섬이 많습니다. 육지에는 119구급대가 있고 하늘에는 닥터헬기가 있듯, 바다에도 해상 119구급대가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평균적인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기반을 확충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지만, 의료취약지 병원, 특히 민간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도 짚는다. 결국, 국회의 입법과 중앙정부, 지자체의 분명한 의지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족과 떨어져 병원 3층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365일 24시간 섬 주민과 함께해온 그는, 진료를 넘어 마음으로 지역을 돌보고 있다. 비금도초 지역 어르신들을 해마다 두 차례씩 모셔 식사를 대접하고, 적은 액수지만 신안군에 매년 장학금을 기부한다. 최근에 수상한 대우의료인상 상금 역시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내놓았다. 아울러 올해부터 시행되는 돌봄통합지원법에 맞춰 재택의료센터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의사로서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다. 그는 이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멈추는 순간 넘어질 것을 알기에,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선친께서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최명석 원장. 섬 어르신들과 웃고 울며 나이 들어가는 그의 삶에는 지역의료의 현재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미래가 함께 담겨 있다.[글(주) 보령 이경희 작가/사진김수 포토실장]

보령의료봉사상은 대한의사협회 의협신문과 (주)보령이 1985년에 제정한 상으로, 숨은 곳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계신 의료인 혹은 의료단체를 분기별로 1분씩 발굴, 취재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령의료봉사상은 묵묵히 헌신하며 인술을 펼치는 대한민국 의료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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