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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인문학적인 헤게모니, 한 사회가 숨을 건네는 방식

서종호 한국의사시인회장(필명 서화·부천시민의원)2026.02.02 10:26
서종호 한국의사시인회장
서종호 한국의사시인회장

나는 최근 피로감과 만성 통증에 의한 부담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다. 그래서 급기야는 몸이 무력해져 일어나지 못하고 물조차 마시기 힘들며, 숨 쉬는 것 조차 벅찬 상황을 상상해 본다. 나 스스로가 중증의 몸 상태가 된다면 어떨지 경험해 보는 것이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취약함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런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 사례가 있다.

영국의 한 어린 환자가 척수성근위축증(SMA)으로 고통 속에 호흡근까지 마비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으나,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Zolgensma) 투여 후 뚜렷한 호전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졸겐스마는 한 번의 투여에 약 34억원에 달하는 고가 치료제이지만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통해 비용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국가는 아이의 편에 섰고, 치료는 비용이 아니라 권리로 주어졌다.

이 이야기는 단지 의료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한 사회가 생명을 어떤 가치로 대하는지를 드러내 준다. 고가 치료의 기회가 개인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의료 현장에서 지치고 흔들리는 중증 환자와 또 그들을 대하는 의사에게도 깊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시(詩)를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의료를 단지 치료의 기술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회복시키는 학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늘 질문을 받는다. 무엇이 치료인가, 누구를 치료해야 하는가, 그리고 치료는 어디까지 사회의 책임인가. 이러한 질문은 의학의 언어만으로는 온전히 답할 수 없으며, 결국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의료에 대한 논의는 재정, 효율성, 지속 가능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들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또한 졸겐스마 사례는 의료의 기준에서 비용과 효과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사회의 태도와 가치관이 함께 놓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사회는 늘 어떤 이야기, 어떤 언어, 어떤 시선을 중심에 두는가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진다. 즉, 어떤 생명이 말해지고, 어떤 고통이 서사로 채택되며, 어떤 회복이 공동체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가가 곧 그 사회의 윤리적 풍경을 만든다. 나는 이를 인문학적인 헤게모니(Hegemony)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졸겐스마 사례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치료의 본질이 단지 약물이나 기술이 아니라 한 사회가 생명을 어떤 가치로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료가 기술의 언어뿐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회복을 담아내는 언어로도 말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모두 역시 이렇게 인간(人間)에 대한 서사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사회의 제도는 이렇게 중요하며 개인과 국가의 인문학적 가치관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질병의 치료는 의학이 하겠지만 그 치료의 본질은 인문학에서 나온다. 의학과 인문학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희덕 시인의 시 속리산에서는 산다는 것은/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더 깊이 들어가는 것/ (중략) /속리산은/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길게 길게 늘여서/내 앞에 펼쳐주었다/라고 표현했다.

즉 우리도 인생을 높게만 오를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 관찰해 보는 것도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대목이다.

이러한 인문학적인 성찰도 바로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멋진 헤게모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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