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후 더 많은 서비스를 이용해보세요

닥플 플러스

말을 냇가로 끌고 간 마부...의료정책 실패 의사 탓 아닌 설계가 잘못된 것

기고기획팀2026.02.01 20:31

말을 물가로 끌고 간 것은 마부인데 말이 물을 마신다고 채찍질을 한다면 과연 누가 바보일까.

지금 대한민국 의료판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실화다. 사람들은 물을 마시는 말, 즉 의사의 탐욕을 꾸짖는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이 왜 산길(필수의료)을 버리고 물가로 달려갔는지는 묻지 않는다.

회사에서 보상체계가 바뀌면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호봉제에서는 오래 다니고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지고, 성과급제에서는 성과가 숫자로 잘 잡히는 일에 힘이 쏠린다.

보상 방식은 사람의 도덕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의 방향을 바꾼다.

물고기는 물을 좇아간다. 인간은 돈의 흐름을 좇아간다. 그래서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한다. 이는 탐욕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다.

대한민국 의료가 산길을 잃고 늪지대에 빠진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설계해온 네 가지 제도가 오늘의 의료를 만들었다.

1. 상대가치점수제: 사람의 가치를 지워버린 계산법

2001년 도입된 상대가치점수제는 의료행위의 값을 매기면서 정작 핵심인 위험도와 책임, 불확실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기계가 하는 검사나 소모품은 단가가 명확하니 상대적으로 후하게 쳐주었지만, 의사의 숙련과 판단, 책임은 계량하기 어렵다며 저평가했다.

그 결과, 의사가 얼마나 책임 있게 환자를 봤는지가 아니라 어떤 행위를 몇 번 했는지가 수익을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오래 걸리고 위험한 수술보다 반복 가능하고 안전한 검사 위주의 진료로 쏠린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2. 요양병원 제도: 치료 대신 수용을 택한 설계

정부는 노인 복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민간에 사실상 복지의 외주화 신호를 보냈다. 병상은 늘릴수록 돈이 되도록 설계했고, 그 결과 병원급 병상은 20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국내 병상 수는 약 46만 개에 이르지만, 그중 절반에 가까운 병상은 상시 공실 상태다. 그런데도 의사 1인당 진료비 수익이 가장 높은 곳은 대학병원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다.

병원이 환자를 고치는 공간이 아니라, 병상을 채워 건강보험 재정을 흡수하는 수용 중심 구조로 변해버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3. 실손보험: 비급여라는 독이 든 성배

필수의료 수가는 원가 이하로 묶어두고 공보험과 연계된 실손보험을 도입하면서 비급여 시장이 빠르게 팽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생명을 다루는 영역은 강하게 통제된 반면, 비급여 진료 영역은 실손보험을 매개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의사들은 생존을 위해, 혹은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이 비급여 중심 구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4. 사법처벌 증가: 마지막 사명감마저 꺾은 몽둥이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던 의사들에게 사법 리스크는 결정타였다.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도 결과가 나쁘면 형사처벌과 실형이 뒤따랐다. 험한 산길을 가다 넘어지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젊은 의사들에게 필수의료는 이제 사명감이 아니라 도박이 되었다. 안전한 물가, 즉 요양비급여로 숨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 된 것이다.

결국 누가 바보인가

필수의료라는 산길에는 덫을 깔아놓고(사법처벌), 산길을 벗어나는 길은 매끄럽게 닦아주고(요양병원), 아주 잘 단장된 냇가까지 만들어 놓고서(실손보험),이제 와 물을 마신다고 말에게 채찍을 든다.

그러나 보상체계와 사법 리스크라는 설계 결함을 그대로 둔 채 의사 숫자만 늘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필수의료로 가는 인력은 늘지 않고, 이미 과잉 공급된 병원과 요양병원으로 인력만 더 흘러들어 의료비 낭비와 구조 왜곡이 더 심해질 뿐이다.

의사 수 4만, 5만 명이던 시절 건강보험 지출이 40조, 50조 원이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응급실 뺑뺑이나 필수의료 붕괴는 없었다. 그런데 의사 수가 14만 명으로 늘고, 건강보험 지출이 100조 원에 이른 지금 이런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 원인을 단순히 의사 수 부족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설계의 실패를 의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설계의 수정이다. 의학적 타당성과 사회적 우선순위를 다시 세울 근본적인 논의 구조, 우선순위위원회 같은 장치가 이제는 필요하다.

댓글 0

    많이 본 뉴스

    • (주)이노케어플러스대표자: 진현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31길 21, 서울창업허브 본관 415호사업자 등록번호: 748-87-0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