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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숫자가 삼켜버린 의학교육, 지역의료의 미래가 무너지고 있다

김경태 성남시의사회장(대한의사협회 감사)2026.01.29 17:49
김경태 성남시의사회장(대한의사협회 감사) ⓒ의협신문
김경태 성남시의사회장(대한의사협회 감사) ⓒ의협신문

정부는 숫자를 던졌고, 현장은 비명을 질렀다

의대 정원 증원 논의는 늘 차가운 통계로 시작된다. 연간 몇 명이 부족한지, 몇 년에 걸쳐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가 정책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 숫자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고통을 떠안고 있는지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지금 그 대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치르고 있는 이들은 명확하다. 바로 우리 의대생들이다.

이번 증원은 교육 여건을 먼저 갖춘 뒤 학생을 받는 상식이 아니라, 학생 수부터 늘려놓고 여건은 사후에 끼워 맞추겠다는 선(先) 증원 후(後) 대책 방식으로 강행됐다. 그 결과는 장밋빛 보완 계획이라는 문서와, 그 계획이 첫 삽도 뜨기 전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처참한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전임 교원 확보를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장은 정반대다. 정년퇴임과 사직으로 교수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학생 수만 급격히 불어났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폭증했고, 개별 지도와 긴밀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의학교육의 근간은 이미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설과 실습 환경의 붕괴는 더욱 심각하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늘어난 인원을 수용할 강의실이 없어 학생들이 임시 공간을 전전하고 있다. 전공 수업은 타 단과대 강의실이나 극장형 공간까지 동원되는 실정이다. 정식 강의실은 2026년에야 준공될 예정이라는데,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은 그 공사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오늘을 견뎌내고 있다.

해부학 실습실은 교육의 장이 아닌 관람의 장으로 전락했다.

기존 10개 테이블이 있던 공간을 억지로 확장해 7개를 더 밀어 넣을 예정이다. 한 테이블당 5-6명이 집중해서 진행하던 실습은 이제 10명 안팎의 학생이 겹겹이 둘러싸 머리를 들이밀고 구경해야 하는 시청각 교육이 됐다. 이는 실습의 밀도와 안전을 고려한 설계가 아니라, 늘어난 인원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독립된 실습동은 여전히 서류상 계획에 머물러 있다.

이런 환경에서 이뤄지는 학사 운영을 감히 정상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 2425학번이 한꺼번에 욱여져 수업을 받아야 하는 더블링 사태 속에 학생들은 한 학기에 31학점을 몰아 듣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해와 숙련은 사치가 되었고, 학습은 그저 버티기의 문제가 되었다.

실제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24학번 재학생 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졸업까지 갈 수 있을지 불안하다, 공부보다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휴학이나 집단행동을 택한 이들이 아니라, 어떻게든 학교에 남아 공부하려 애쓰는 재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조차 현재의 환경을 교육의 붕괴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 잔인한 것은 선후배가 서로의 권익을 침해할까 경계하게 만드는 구조적 갈등이다. 24학번은 학습권을 침해받았다고 느끼고, 25학번은 불공정한 평가를 우려한다. 일부러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학교의 달램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독이 된다. 학생들은 묻는다. 유급이 아니라면 이 과잉된 인원을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가. 인턴과 전공의 수련 기회는 과연 공정하게 주어질 것인가. 이 질문에 정책 설계자들은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장 뼈아픈 역설은 지역 의료의 미래에서 나타난다. 지역에 남아 헌신하겠다던 학생들이 이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면 졸업장만 따고 떠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던 정책이, 정작 지역 의대생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개인의 변심이 아니라, 교육 환경이 학생들을 등 떠민 결과다.

학생들은 정책을 설계하지 않았고, 정원을 결정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교육 붕괴의 부담과 공정성에 대한 불안, 왜곡된 진로 선택의 압박을 오롯이 학생들이 감당하고 있다. 교육을 감당할 수 없는 증원은 학생을 키우는 정책이 아니라 학생을 소진시키는 정책이다.

의대 정원 문제는 더 이상 숫자의 유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의 성공은 보고서 위의 숫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강의실 안 학생들의 눈빛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교육 없는 의사는 존재할 수 없으며, 준비되지 않은 증원의 대가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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