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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label radius small' style='background-color:#f96900'>특집</span> 의사인력 수급추계, 과연 준비는 되어 있었나? 주요국의 시사점
[특집]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오류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결과 발표 이후 사회적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과학적 추계라는 명분 아래 의대정원 증원을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이자 정치적 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추계의 기초가 되는 변수 설정, 가정부터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가정을 전제로 한 오염된 데이터는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져, 정작 정부가 내세운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는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번 특집을 통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결과에 대한 찬반 논쟁을 넘어, 추계 과정 내부의 블랙박스를 해부하고자 한다. 추계 과정의 통계적 오류, 잘못된 가정들을 확인해 불완전한 추계가 가져올 의료체계의 붕괴를 경고한다. 더불어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추계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1. 구조적 변화를 무시한 의료수요 추계모형(박정훈 의정연 책임연구원)
2. 의사의 땀을 돈으로 계산하는 나라: 입원 외래 업무 조정비(1:3.9)의 문제(신요한 의정연 연구원)
3. 의사의 근로시간과 FTE(이정찬 의정연 부연구위원)
4. 의사의 생산성 향상: AI 중요성(박정훈 의정연 책임연구원)
5. 왜곡된 통계의 대가: 국민이 받을 청구서(신요한 의정연 연구원)
6. 의학교육 현장의 우려,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김계현 의정연 연구부장)
7. 의사인력 수급추계, 과연 준비는 되어 있었나? 주요국의 시사점(김계현 의정연 연구부장)
7. 의사인력 수급추계, 과연 준비는 되어 있었나? 주요국의 시사점
추계(推計)의 사전적 정의는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미루어 계산하는 것이다.
이 정의는 단순하지만, 추계가 갖는 본질적 한계를 정확히 드러낸다. 추계란 미래를 하나의 결과로 맞히는 예측이 아니라, 일정한 가정과 조건 하에서 가능한 여러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결국 추계는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들이 발전해왔지만, 어떠한 방법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정책은 미래를 향해 움직여야 하기에 우리는 불완전한 추계를 활용한다. 문제는 추계가 아니라, 추계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번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활동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었음에도, 구성과 운영 과정을 보면 급히 구성된 기구, 시간에 쫓긴 결론이라는 인상을 준다.
의료인력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기본 작업은 의료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가능한 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추계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의사인력 수요공급의 정확한 현황 파악이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 예측에 사용할 변수와 가정, 시나리오 구성, 민감도 분석을 체계화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미래를 상정했는가, 어떤 변수와 가정을 포함했는가, 어떤 변수에 가장 민감하게 흔들리는가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면 추계는 정책 근거가 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의사인력 수급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체계의 구조와 전달체계, 의료이용 행태, 지역 또는 전문과목별 분포, 노동시장 변화 등 복합적 요소가 얽힌 사회적 현상이다.
이러한 복합성을 고려할 때 의사인력 추계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가정과 시나리오의 집합이며, 그 가정이 바뀌면 결과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 논의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계위원회의 결과가 제시되고, 그 결과를 곧바로 정책 결정의 근거로 연결하려는 정부의 행보는 매우 위험하다.
해외 사례는 이 점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의료인력 추계를 장기간 수행해 온 많은 국가들조차 의사 부족과 과잉을 반복해 왔다.
특히 농촌이나 소도시의 의사 부족 문제는 거의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난제이다.
즉, 추계를 오래 했으니 정답에 가까워졌다기보다는, 추계를 오래 해도 의료인력 불균형은 반복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는 추계가 무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추계를 정원 결정의 단일 근거로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경고이다.
장기간 축적된 경험을 가진 국가들도 반복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하는 영역을 충분한 준비 없이 단기간에 결론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책 실패 가능성을 키운다.
지금이라도 필요한 것은 추계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와 절차의 정립이다. 적어도 의료인력 추계를 정기적으로 수행해 온 국가들의 정책 경험을 면밀히 검토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정 국가 사례가 정답일 수 없다. 다만 우리보다 많은 경험을 한 국가들은 어떠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추계를 해왔으며, 어떠한 논의 구조와 과정을 거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추계의 핵심은 데이터다. 정부는 우선 의료수요와 공급 등 정확한 현황 자료는 물론, 미래 예측을 위한 다양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지역사회조사, 의료비 패널 조사, 인구동태조사, 외래 및 입원환자 조사, 의사 근무 현황, 교육 현황 조사 등의 데이터를 축적하여 의료인력 추계에 활용한다.
추계 결과에 대한 다단계 검증 절차도 진행한다. 네덜란드 역시 인구구조, 질병유병률, 의료이용 현황, 건강행태 변화는 물론 의사들의 근무시간 및 활동, 유입과 유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며, 추계를 위해 50개의 변수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지역 단위의 의료계획을 기반으로 한 세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추계에 활용한다.
우리도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을 통해 정확하고 충분한 기초 데이터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의사단체 조사 데이터를 폄하해서도 안 된다. 많은 국가들이 의사협회 데이터를 활용한다. 데이터가 풍부하게 집적되고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굳이 추계위원회나 분석센터만 추계를 독점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여러 연구자들이 서로 다른 방법론으로 추계를 수행하고 결과를 제안하도록 하면 된다. 제안된 연구결과들을 다양한 검증과 토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갱신하면 된다.
추계는 정답을 제공하는 기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도구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추계 결과를 근거로 섣부른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데이터 기반을 정비하고, 변수와 방법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며,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검증을 통해 추계의 신뢰성을 축적한 뒤 정책을 추진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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