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성분명 처방은 해결책 아닌 착시" 의약품 수급불안, 왜 반복되나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의 해법으로 성분명 처방이 거론되는 가운데, 국회 토론회에서는 문제의 원인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동일 성분 의약품을 동일한 약으로 간주하는 접근은 임상 현실을 외면한 것이며, 수급 불안정의 구조적 원인을 외면한 채 처방 방식만 바꾸는 것은 착시에 불과해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다.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수급 불안정 의약품과 성분명 처방 토론회 발제를 통해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원인과 대책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면서 동일 성분이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약품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충기 이사는 의약품은 주성분 외에도 제조 공정, 원료의 출처, 제형, 첨가제, 방출 속도 등에 따라 임상적 효과와 환자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며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은 최소 기준일 뿐,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령자, 다제 병용 환자, 장기 복용 환자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치료 효과와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원인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의존, 낮은 약가와 입찰 구조, 취약한 생산품질 인센티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김 이사는 지금의 부족 사태는 일시적 예외가 아니라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며 저가 중심의 바닥으로의 경쟁(Race-to-the-bottom)이 제약사의 시장 이탈을 가속화하고 반복적인 품절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136개 의약품이 극심한 부족을 겪었고, IVIg(면역글로불린) 부족으로 의사의 78%가 치료 용량을 30% 이상 감량하거나 치료를 중단지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공급 부족은 곧 치료 연속성을 붕괴하고, 환자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자료다.
의약품 수급 불안정 상황에서 성분명 처방을 대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 있고, 최저가 경쟁을 심화시켜 제약사의 생산 포기와 시장 철수를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성분명 처방의 효과는 대체할 약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한다며 원료 부족과 제한된 생산 구조 하에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성분명 처방이 확대될 경우, 의사의 임상적 판단과 약사의 조제 판단 사이에 구조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의사는 처방 책임을 지고, 약사는 조제 과정에서 다른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 구조가 되면, 약이 바뀌었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해진다. 그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수급 불안정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성분명 처방이 아닌 회복탄력성(resilience)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 공급원 다변화, 적정 보상과 약가 체계 마련, 중장기 수요 예측과 전략적 비축, 데이터 기반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공공민간 협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김 이사는 개별 품목을 관리하는 행정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치료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정책 판단을 해야 한다며 성분명 처방 논의에 앞서, 왜 약이 부족해지는지에 대한 정직한 원인 분석과 국가 차원의 보건안보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약품 수급 불안, 성분명 처방으로 풀 수 있나? 국회의료계 글쎄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안보 사안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해당 문제의 해법을 성분명처방으로 해결하려는 데 대한 우려에 의견이 모였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인사말에서 의약품 수급 불안정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안보 사안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편의적 해법이 아니라, 왜 반복적으로 약이 부족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도 성분명 처방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황 회장은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책임을 처방 방식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의사는 성분이 아니라 환자에게 맞는 약을 처방하는 전문가다. 성분명 처방이 확대될 경우, 진료의 책임 구조가 흔들리고 환자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의약품 수급 불안이 구조적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한미애 의장은 저가 약가 구조, 해외 원료의약품 의존, 국내 생산 기반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다. 이제는 개별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수급 불안을 처방 방식 변화로만 해결하려는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며 성분명 처방 역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검토 없이 강제될 경우 의료 현장의 혼란과 환자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훈 대한재택의료학회 간행이사(편한자리의원 원장)는 방문진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의약품 수급 불안의 현실을 전했다.
노동훈 이사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연천동두천 등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장기 재택의료를 하고 있는데, 약을 처방해도 인근 약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결국 보호자가 장시간 이동해 약을 받아와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호자가 약을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고령 환자에게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실제로 경험했다며 고령화가 심화된 현재, 기존 의약분업 구조가 현장 현실과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분명 처방에 대해서도 약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분명 처방을 한다고 해서 공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일 성분이라도 환자 반응이 달라 약이 독하다는 호소를 자주 듣지만, 성분명 처방이 되면 의사는 어떤 제품이 사용됐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이사는 약제비 절감만 강조할 경우, 보호자의 이동 시간과 돌봄 공백 등 사회적 비용은 간과된다며 수급 불안 문제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성분명 처방은 수단 중 하나원인별 대응이 원칙
정부 역시 성분명 처방을 유일한 해법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강준혁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의약품 수급 불안의 원인은 생산, 유통, 사용 단계별로 매우 다양하다며 정부는 각 원인에 맞는 정책 수단을 조합해 대응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강 과장은 필수의약품 수급 문제를 단순히 처방 방식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생산 단계 지원, 수입 의존도 완화, 모니터링 강화 등 여러 정책 수단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급부족 보고 의무 강화와 공급 중단 보고 신설 등 모니터링 체계를 보완했고, 국가 필수의약품 안전공급 협의회 개편을 통해 민관 거버넌스를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의약품 수급 안정 정책의 최우선 가치는 환자의 생명과 치료의 연속성이라며 성분명 처방 역시 재정 절감이 아니라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사용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490명' 지역의사, 어떻게 선발·교육·수련할 것인가?
- 프로포폴 처방 때 환자 투약내역 확인 '권고'
- 공보의·군의관 줄지 않는 '3년' 복무…의료계, 국회와 여론 환기 총력
- 경북 보건단체, '제13회 캄보디아 해외 의료봉사 해단식' 개최
- 복지부, 비정상·가짜진료 조사 위해 전문가평가제 활성화 추진
- 박형욱 교수, 이소희 '의료사고 사각지대' 주장에 "과장·선동" 비판
- "군의관·공보의 군사훈련기간, '복무기간'으로 산정해야"
- 중환자 관리 패러다임 "병상 수에서 치료 역량 중심으로"
- 전쟁의 땅 우크라이나에 심는 재활치료 '씨앗'
- ADC 급여 이후 '바벤시오' 높은 순응도로 포지셔닝?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