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이성우 중앙손상관리센터장 "손상은 운이 나빠 생기지 않는다"
손상은 통계가 아니라 사람 예방은 국가의 책무다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손상 환자들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 우연은 대부분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던 결과다. 미끄러운 욕실 바닥, 보호장비 없는 통학로, 반복되는 음주와 약물 노출, 사회적 고립 속에 방치된 정신적 위험 신호들. 사고는 한순간에 발생하지만, 손상은 오랜 시간 축적된 환경과 구조의 산물이다.
이 같은 인식 전환을 제도화한 것이 지난해 1월 24일 시행된 손상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법안이 설계도를 그렸다면, 실행을 맡은 곳이 중앙손상관리센터다. 국내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이 역할을 자처한 병원이 바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다.
센터는 작년 4월 출범해, 곧 출범 1년을 앞두고 있다.
이성우 중앙손상관리센터장(고려대 안암병원 진료부원장)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센터가 막 설립된 현 시점을 두고 치료 중심 체계에서 예방 중심 국가 시스템으로 넘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이라고 표현했다.
이성우 센터장은 중앙손상관리센터는 손상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국가 단위 손상관리 컨트롤타워다. 쉽게 말하면,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치료가 아니라 사고 이전의 위험을 관리하는 기관이라며 응급실과 외상센터가 손상의 결과를 다룬다면, 우리는 그 결과가 왜 반복되는지를 분석하고 예방 전략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손상은 외상만이 아닙니다
이성우 센터장은 먼저 손상(injury)을 단순한 사고나 외상(trauma)으로 한정하는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 기준에서 손상은 외부의 물리적화학적심리적 요인이 인체에 일정 수준 이상 작용해 발생하는 모든 건강 손상을 말한다. 교통사고나 낙상뿐 아니라 중독, 자해, 자살, 폭력, 환경 손상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손상을 불가항력적 사고로 인식해 왔다는 점이다. 이 인식은 정책 대응을 사후 치료와 보상에만 머물게 했다.
이성우 센터장은 응급실과 외상센터는 사고 이후를 책임진다. 하지만 손상관리의 핵심은 사고 이전이라며 어떤 사람에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위험이 반복되는지를 데이터로 읽어내고 미리 개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앙손상관리센터 1년, 무엇을 해왔나
출범 이후 중앙손상관리센터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국가 손상 통계의 정비와 고도화다.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입원퇴원 손상심층조사, 사망자료 등을 연계해 손상 발생의 경로와 특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센터가 현재까지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봤을 때, 분명한 패턴을 발견했다. 입원 손상환자의 약 20~30%는 사전에 위험 요인을 관리했다면 충분히 예방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데이터 분석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노인 낙상 손상의 급증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손상은 감소하는 반면, 고령화와 맞물려 낙상으로 인한 골절장기 입원 사례는 빠르게 늘고 있다.
낙상은 대부분 가정이나 생활 공간에서 발생한다며 단순히 개인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 환경, 근력 저하, 만성질환 관리, 사회적 돌봄의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앙손상관리센터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현장이다. 통계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사고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정책을 가져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설립 이후 센터는 ▲생애주기별 손상예방 교육 ▲노인 낙상예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학교 안전교실 등 현장 중심 예방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이 센터장은 손상은 연령과 환경에 따라 위험 요인이 다르다면서 영유아, 청소년, 성인, 노인 각각에 맞는 예방 교육이 필요합니다. 생애주기별 접근은 그 출발점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주목되는 사업이 노인 낙상예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센터는 낙상 위험 평가, 환경 개선, 운동 처방을 아우르는 표준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에서 실제로 활동할 전문가를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학교 안전교실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단순한 안전 수칙 교육이 아니라, 실제 사고 사례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 면대면 교육은 다른 교육에 비해 투입해야할 인력과 재정이 크지만 그만큼 효과면에서 차이점이 크다.
이 센터장은 손상 예방은 습관의 문제다. 어릴 때부터 위험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는 경험을 해야 평생의 안전 역량으로 이어진다면서 전문가를 양성해 지역으로 보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 가능하다. 병원이 직접 모든 예방 활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예방의 확산을 위해 중앙손상관리센터는 민관 협력 체계 강화에도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심폐소생협회와의 업무협약이다. 이를 통해 센터는 공공 캠페인, 교육 콘텐츠, 대국민 홍보를 연계하는 통합 홍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손상 예방과 응급 대응은 결국 국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심폐소생술처럼 이미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영역과 협력해 예방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상은 통계 이전에 사람이 중심이 되는 분야
이성우 센터장은 손상은 보건의 문제이자 교통, 교육, 산업, 복지, 주거 정책이 모두 얽힌 사회 안전의 문제다. 병원은 결과를 가장 먼저 마주할 뿐이라며 손상 문제를 더 이상 의료계 내부 과제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손상예방법을 통해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손상을 예방 가능한 공공 위험으로 인식하는 관점이 정책 전반에 스며들어야 하고, 부처와 기관에 흩어진 손상 관련 정보가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통합 데이터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최신 연구와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한 과학적 근거 기반의 개입 전략, 위험 예측과 현장 적용까지 이어지는 실증적 접근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성우 센터장은 이제 막 기초 공사를 시작한 단계라며 성과를 조급하게 평가하기보다 국가 인프라를 만든다는 관점에서 손상 예방 정책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손상 예방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고 하자 손상은 예방할 수 있는 경고이며,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정리했다.
사고는 순간이지만, 손상은 사회가 방치한 시간의 결과다. 중앙손상관리센터가 사고 이전의 위험을 추적하고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료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환경과 구조를 바꾸는 일은 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과제가 됐다.
이 센터장은 손상은 사고처럼 보이지만, 손상은 데이터가 반복해서 경고했던 위험의 결과다.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반복되고, 개입하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공공 위험이라며 지금 우리가 예방에 투자하는 만큼, 미래의 사회적 비용과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손상예방법이라는 기반이 마련된 지금이, 실질적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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