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span class='label radius small' style='background-color:#a2ab53'>기자수첩</span> 카르마(업보)
카르마가 움튼다.
지역의사제가곧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월 2일까지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 할 예정이다.
한국의료는 숫자에 갇혀 있다. 의료대계는 아랑곳없이 맞닥뜨린 문젯거리를 숫자로 해결한다. 어느 지역에 의사가 몇 명 부족한지, 어느 전문과에 TO를 얼마나 더 줄지만 따졌다. 환자-의사 사이의 신뢰 영역은 공급자 탓으로 돌리고, 환자의 삶과 의사의 경력, 다변화되는 사회 변화, 지역의 소멸 속도도 살천스레 외면했다.
지역의사제는 출발부터 숫자의 올무에 사로잡혔다. 계약형 몇 명, 복무형 몇 명, 10년 의무복무. 수혈량을 맞추듯 숫자를 채워 넣지만, 출혈의 원인인 상황과 구조는 그대로다. 응급실과 분만실이 왜 비는지, 지방병원 암 환자가 왜 서울로 발걸음을 옮기는지 근본적인 진단이 빠져 있다. 진단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할 수 없다.
이미 1980년대 비슷한 제도의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국가 장학금을 받고 지방에 배치된 의사들이 있다. 그들은 얼마나 지역에 머물렀을까. 전언에 따르면. 없다.
조건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공부할 돈 대 줄 테니 지방에 가서 몇 년 묶여 있어라.
게다가 이번엔 관제의료의 미망(迷妄)인 면허관리도 명문화했다. 매몰비용 환수 정도로는 안 되니, 면허 정지취소를 볼모로 지역 이탈을 막겠단다.
40년 전 실패에 대한 우려에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성근 예측뿐이다.
지방 의사가 떠나는 이유는 단순하다는 진단도 나온다.환자가 많지 않으니 낮에는 수술방이 비고, 중증 환자는 진단 후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빠져나간다. 지방에서 암을 진단해도 치료는 서울에서 받는다. 지역 환자가 떠나니 병원은 최소 인력만 남기고 버틴다. 젊은 의사는 더 배울 곳, 더 많은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곳, 더 인정 받는 곳을 찾아 떠난다.
이 고질적인 악순환은 한국의료의 자화상이다. 건강보험제도는 지역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전국 동일 규칙을 강요했으며, 환자의 수도권 쏠림을 사실상 방치했다. 서울중심 의료가 문화로 자리 잡는 동안 누구도 바로잡지 않았다. 게다가 때로는 이를 함께 소비했다. 왜 지방에 의사가 없나라는 우문은 자기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세밑에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토론회에서 한 지방의대 교수는 지역의사를 늘리기 전에 지역환자제부터 고민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지역에 남는 환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지역에서 치료받는 게 손해가안 되도록 하며, 중증치료를 담당할 지역 거점병원을 제대로 키우고, 환자와 의료진이 서로신뢰할 수 있게 만들지 않고의사만 묶어 두는 제도는 결국 빈 병원과 지친 사람만 남길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 교수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저 역시 어제 대학에 사표를 냈습니다. 수도권으로 옮깁니다.
물론 인간의 욕망을 법제도로 제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의료 문제인데, 서울 가겠다는 환자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정책은 선후를 구분해야 한다. 지역 환자들이 중증질환이라도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환자-의사의 신뢰가 다져진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사법리스크 가장 앞선에 내몰린 전공의들의 현실도 돌아봐야 한다.불안은 영혼까지 잠식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사보다 먼저 형사소송의 피고인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전공의만 특정한 형사소송도 잦아지고 있다. 실제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수사, 기소, 재판 과정 자체가 형벌이다. 상대적으로 지역에서는 혼자서 버텨낼 여력이 없다.
정부에서는 배상보험료 지원, 배상한도 증액 등을 얘기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사법리스크 자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이 필요다는데 모아진다.
형사소송을 예외 상황으로 만드는 제도, 중과실과 불가항력을 구분하는 공적 시스템, 의료사고심의위원회와 반의사불벌죄 확대 같은 논의가 뒤늦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제까지 홀로 감당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이들이 있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헌신을 요구하고, 말로만 고맙다라고 할 것인가.
외상센터에서 밤을 새우는 외상외과, 수많은 시간 응급실을 지켜온 응급의학과, 환자는 줄어도 묵묵히 수술방을 열어 두는 심장혈관흉부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그들은 이미 지역의사다. 그들의 헌신 위에 제도가 뒤늦게 올라타고 있을 뿐이다.
미래 지역의사에 현재의 지역의사가 가려지면 안 된다. 십수 년 후올 사람을 기다리며 지금 있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구조로는 어떤 제도도 성공할 수 없다.
지역의사제는 치트키가 아니다. 전가의 보도 처럼 작동시켜온 숫자에 갇혀서는 지역필수의료 문제에 다가설 수 없다. 의사를 묶기 전에 환자를 지키고, 제도 설계보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불교에서 업보는 인과(因果)관계다.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행위의 결과로 생기며, 그것은 또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카르마는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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