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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label radius small' style='background-color:#f96900'>특집</span> 의사의 땀을 돈으로 계산하는 나라
[특집]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오류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결과 발표 이후 사회적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과학적 추계라는 명분 아래 의대정원 증원을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이자 정치적 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추계의 기초가 되는 변수 설정, 가정부터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가정을 전제로 한 오염된 데이터는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져, 정작 정부가 내세운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는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번 특집을 통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결과에 대한 찬반 논쟁을 넘어, 추계 과정 내부의 블랙박스를 해부하고자 한다. 추계 과정의 통계적 오류, 잘못된 가정들을 확인해 불완전한 추계가 가져올 의료체계의 붕괴를 경고한다. 더불어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추계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1. 구조적 변화를 무시한 의료수요 추계모형(박정훈 의정연 책임연구원)
2. 의사의 땀을 돈으로 계산하는 나라: 입원 외래 업무 조정비(1:3.9)의 문제(신요한 의정연 연구원)
3. 의사의 근로시간과 FTE(이정찬 의정연 부연구위원)
4. 의사의 생산성 향상: AI 중요성(박정훈 의정연 책임연구원)
5. 왜곡된 통계의 대가: 국민이 받을 청구서(신요한 의정연 연구원)
6. 한국 추계위원회의 한계: 외국과의 거버넌스 비교, 한국에의 시사점(김계현 의정연 연구위원)
2. 의사의 땀을 돈으로 계산하는 나라: 입원 외래 업무 조정비(1:3.9)의 문제
고급 레스토랑의 저녁 시간을 상상해 보자. 주방에서 셰프 A는 불 앞에서 10분 동안 파스타를 요리한다. 가격은 3만원이다. 반면, 홀에 있는 소믈리에 B는 손님이 주문한 30만원짜리 와인 병을 딴다. 걸린 시간은 단 1분이다.
자, 여기서 상식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이 순간, 누가 더 많은 노동을 했는가? 당연히 10분 동안 요리를 만들어낸 셰프 A다. 와인 가격이 30만원인 이유는 포도 값과 브랜드 가치 같은 재료비 때문이지, 병마개를 따는 노동이 셰프보다 10배 더 고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이 레스토랑의 사장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매출 장부를 보니 와인이 30만원이고 파스타가 3만원이네. 와인이 10배 더 비싸군. 그렇다면 와인을 딴 소믈리에가 셰프보다 10배 더 일을 많이 한 거야. 소믈리에가 지금 10배나 더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니, 당장 소믈리에를 10명 더 채용해!
당신은 그 사장을 제정신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마도 경영학의 기초도 모르는 엉터리라고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섬뜩하게도,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2035년에 의사가 부족하다며 내놓은 통계의 적나라한 실체다. 바로 입원 외래 업무량 조정비 1 대 3.9라는 난해한 이름 뒤에 숨겨진 통계의 마술이다.
정부가 미래 의사 인력 수급을 추계하는 과정은 단순하다. 미래의 의료 수요를 예측하고, 현재 의사의 업무량을 계산해서 그 격차를 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의사의 업무량을 측정하는 자가 고장 났다는 데 있다.
의료 현장에서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는 진료 성격과 시간이 판이하다. 이를 합산하려면 가중치가 필수적인데, 상식적인 연구라면 마땅히 의사가 투입하는 실제 시간이나 노동의 총량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추계위원회는 놀랍게도 진료비, 즉 돈을 노동량의 잣대로 삼았다. 연구진이 설정한 입원 1 대 외래 3.9라는 비율의 근거는 단 하나다.
최근 데이터를 보니 입원 환자 1일당 진료비가 외래 환자 1건당 진료비보다 약 4배 정도 비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원 환자 하루 보는 것이 외래 환자 4명 보는 것과 맞먹는 노동이라고 기계적으로 퉁쳐버렸다.
여기에 앞선 와인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입원 진료비가 외래보다 비싼 이유는 의사가 4배 더 힘들게 진료해서가 아니다.
입원비에는 의사의 회진료뿐만 아니라,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간호사 인건비, 환자 식대, 병실 청소비, 전기세, 침대 시트 세탁비 등 온갖 병원 운영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마치 비싼 와인 가격에 포도 값과 유통비가 포함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침대 값과 밥값까지 몽땅 의사의 업무량으로 환산해 버렸다. 의사가 회진 때 환자 상태를 5분만 보더라도, 입원료라는 매출이 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통계적으로는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는 의사로 둔갑한다. 이것은 명백히 비용을 노동으로 착각한 통계적 사기극이다.
이 방식은 특히 한국 의료의 기형적인 수가 구조와 만나 최악의 시너지를 낸다. 의사가 환자를 30분 동안 꼼꼼히 진료해도 검사 없이 처방전만 발행하면 일을 적게 한 의사가 된다. 반대로 환자 얼굴은 1분만 보더라도, 고가의 영상 검사를 처방해 매출이 높게 나오면 일을 아주 많이 한 의사가 된다.
즉, 정부의 계산법은 매출이 높은 의사가 바쁜 의사라는 자본주의적 허상을 전제로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고가 검사가 늘어날수록, 의사의 실제 진료 시간과 무관하게 필요한 의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부풀려진다. 이는 통계가 아니라 수요의 뻥튀기이자 착시의 제도화다.
이 통계적 마술쇼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엉터리 설계도로 지은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잘못된 가중치는 시장에 진료비가 비싸야 일을 많이 한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이러한 왜곡된 신호는 결국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전체를 고비용 구조로 내몰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의료 선진국들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 네덜란드 등 주요국은 의사 수급 추계 시 철저하게 전일제 환산 방식을 사용한다. 매출이 얼마가 나오든 상관없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데 투입한 실제 시간을 기준으로 인력을 추계한다. 이것이 과학이고, 이것이 상식이다.
우리 정부라고 이를 몰랐을까? 데이터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와 대한의사협회 실태조사를 활용하면 충분히 보정이 가능했다.
정교한 분석을 포기하고 가장 손쉽게 의사 부족 수치를 부풀릴 수 있는 매출 데이터를 선택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이거나 의사 부족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숫자를 끼워 맞췄다는 합리적 의심을 자초한다.
통계는 숫자로 된 거짓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국가 정책이 되는 순간, 그것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흉기가 된다. 1 대 3.9는 단순한 학술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돈을 땀으로 바꿔치기한 위험한 눈속임이다.
와인 가격으로 노동량을 재는 엉터리 사장님에게, 대한민국 의료의 백년지대계를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당장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진료비 영수증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의사들이 현장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흘리는 진짜 땀의 시간을 측정하라. 팩트와 과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붕괴 직전의 한국 의료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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