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법을 무시한 의료인력 수급추계,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의료인력 수급추계는 내용보다 절차의 결함이 먼저 눈에 띈다. 의료법이 명시적으로 요구한 지역 단위와 전문과목진료과목별 분석이 배제된 채, 국가 단위 총량 수치만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보완의 문제가 아니라, 법이 정한 수급추계 체계를 정면으로 이탈한 행정이다.
의료법 제23조의2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설치 목적과 심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국가 단위 수급을 심의할 경우, 지역 단위 및 전문과목진료과목별 수급을 함께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도록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닌 강행규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추계는 이러한 법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채 발표되었다.
현재 공개된 수급추계위원회 11차 회의록까지를 모두 살펴봐도, 이러한 지역 단위 수급추계나 전문과목진료과목별 수급추계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나 이를 전제로 한 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의료법 제23조의2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① 보건의료인력에 대하여 주기적으로 중장기 수급추계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심의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다음 각 호의 직종별로 수급추계위원회(이하 수급추계위원회라 한다)를 각각 둔다.
② 수급추계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한다.
해당 직종의 보건의료인력 국가 단위 수급추계
해당 직종의 보건의료인력 지역 단위 수급추계
전문과목 및 진료과목 구분이 있는 직종 중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직종의 전문과목 및 진료과목별 수급추계
③ 수급추계위원회는 제2항 제1호의 사항을 심의하는 경우에는 같은 항 제2호 및 제3호의 지역 단위 수급추계, 전문과목 및 진료과목별 수급추계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반영하여야 한다.
④ 수급추계위원회의 구성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의료인력 수급 정책은 의사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의료기관의 운영, 더 나아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정책 영역이다. 이러한 정책 결정에서 법이 요구한 절차와 분석을 생략한다면, 그 결과는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정책의 결론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더라도, 법적 근거와 절차가 결여된 결정은 설득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역과 전문과목 간의 수급 불균형이 의료 현장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외면한 총량 중심의 추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라는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채 숫자만 앞세운 정책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왜곡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번 수급추계가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한다. 지역과 전문과목별 분석 없이 국가 단위 수급만을 발표한 것이 과연 의료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행정부로서 법치 원칙을 준수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의료인력 정책은 정치적 구호나 속도전으로 추진될 사안이 아니다. 법과 절차 위에서 충분한 분석과 숙의를 거쳐야 할 중대한 공적 결정이다. 법을 무시한 수급추계는 의료개혁이 아니라 갈등과 불신을 키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법이 정한 자리로 돌아가, 정당한 절차에 따른 의료인력 수급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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