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환자 정액제 시범사업' 일차의료 혁신인가, 비용통제 수순인가
정부가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 계획을 공식화하면서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환자 등록을 전제로 한 정액료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다는 점에서 기존 일차의료 사업과 구분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해당 계획을 보고하고, 2026년 7월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형 주치의 모델을 정립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 내에서 의료가 완결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의료전달체계의 무게중심을 병원에서 역 일차의료로 이동시키려는 일종의 정책 실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계획 공개 이후,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고 있는 양상이다.
의료계의 자발적 싱크탱크 모임인 바른의료연구소, 미래의료포럼 등은 해당 시범사업 발표 이후 분석 자료를 내면서, 다각적으로 우려점을 짚었다. 의사 커뮤니티, 개인 SNS 등을 통한 의견 개진도 활발했는데 대부분은 비판 목소리로 채워졌다.
먼저 주목되는 지적은 이번 시범사업이 단순한 수가 개편을 넘어, 의료전달체계 자체의 구조적 재편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난 달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최대한 관리함으로써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이는 곧 요양병원 등 장기 입원시설 축소를 염두에 둔 정책 흐름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실제 시범사업 설계에는 환자를 건강 상태에 따라 군(群)으로 나누고,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군은 재택의료 중심으로 관리하며 입원을 최소화하는 방향이 반영돼 있다.
바의연은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이를 대체할 지역사회 돌봄재택의료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졌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증 만성질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를 지역사회에 묶어두는 방식은 오히려 치료 시기를 놓치게 하거나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다.
바의연은 병상 감축이 정책 목표라면, 그에 상응하는 돌봄의료 인프라 확충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의료의 자유이용 구조와 등록형 주치의 모델 간의 충돌도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의연은 환자가 대형병원과 전문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에서 동네의원에 등록해 지속 관리를 받도록 유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정부안에는 환자 등록을 유도할 실질적인 유인책이나 의료이용을 조정할 장치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의료계 역시 일차의료 활성화 정책과 관련해 지역의료 문제의 절반은 환자가 지역에서 진료받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는 지적을 지속하고 있다. 본인부담 경감 등 환자에게 체감되는 이득 없이 의료이용 행태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환자 의료쇼핑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주치의가 있어도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오가면 관리 연속성은 확보되지 않고, 중복 검사중복 투약 문제 역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정보 공유와 연계체계 강화를 언급하지만, 의료계는 환자의 자율 선택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진단한다.
가장 큰 논쟁은 일차의료 기능강화 통합수가, 즉 환자 1인당 정액 보상 구조에서 나오고 있다.
바의연은 형태만 다를 뿐 전형적인 인두제(capitation)의 성격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인두제는 의사 수입이 환자 수에 따라 고정되는 방식으로, 의료계에서는 과소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경계해 온 지불제도다.
바의연은 환자 수에 비해 진료 강도가 높아질수록 의료기관의 손실이 커지는 구조라며 검사나 입원을 최소화하려는 유인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복합질환 환자를 많이 관리할수록 부담만 커지는 구조가 되면, 의료기관이 해당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조병욱 미래의료포럼 정책정보위원장은 31일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본 의료혁신 정책 보도자료를 내고, 이 문제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짚었다.
조병욱 위원장은 정부의 지불제도 개편 방향은 명확하다며 1차 의료는 인두제, 병원급은 신DRG(포괄수가제)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책임의료조직(ACO) 기반 시범사업과 의료기관 네트워크화, 질 관리 성과 평가 등을 연결해 지역 단위에서 의료비를 하나의 바구니로 묶어 관리하려는 구상이라고도 해석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이용은 건강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접근성이 높고 본인부담이 낮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인두제식 관리가 도입되면 의료공급자의 보상받지 못하는 업무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도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는 의료 현장에서도 나오고 있다.
시범사업 계획이 공개된 직후, 의사 전용 커뮤니티와 의사들의 SNS에는환자를 많이 볼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 관리라는 이름의 진료 억제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내과 개원의라고 밝힌 한 의사는 정액 수가 아래에서는 환자 안전보다 숫자 관리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일차의료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환자 부담과 인력 충원에 대한 부담에 대한 우려도 지적됐다.
김대중 아주의대 교수는 개인 SNS에서 환자들이 추가 부담을 하게 되는 일이라서 잘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며 만관제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의원 안에 코디네이터가 꼭 필요해질 것 같다고 밝혔다.
배장환 좋은삼선병원 순환기내과 과장은 페이스북 댓글에서 정부 분석에서 보면 진찰료는 원가의 63% 수준이다. 이 상태에서 구조개편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며 영상검사료를 줄이고 진찰료를 일부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기본 진찰료를 정상화한 뒤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외 커뮤니티에서는 정책은 정부가 만들고, 환자 불만은 의사가 떠안는 구조가 반복될 것이라는 냉소도 나왔다. 검사나 진료를 줄이면 돈 때문에 안 해준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다.
기대감 담은 목소리도가정의학회 방향은 공감, 보완이 관건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기대감을 표한 곳도 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지난 달 26일 성명을 통해 이번 시범사업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학회는 초고령사회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해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중심 체계로 전환하려는 중요한 정책적 시도라며 주치의 중심의 예방관리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조건을 달았다. 환자 위험도를 반영한 정교한 보상 체계, 다학제 팀 진료를 위한 지역 인프라와 재정 지원, 양질의 일차의료 인력 양성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제도 정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의료계 전반의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방향성에는 공감하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속도전과 비용 통제 중심 설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이번 시범사업을 두고 찬반을 넘어,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료체계 전반의 구조개편을 염두에 둔 정책 신호가 분명히 읽힌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의료 이용 구조와 수가 현실, 지역 인프라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비용 통제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현장의 반발과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성과를 담보하기 힘든 정책인 만큼, 향후 정부가 의료계와 얼마나 소통하고, 우려점을 설계에 충실히 반영하는지 여부에 시범사업의 성패가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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