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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선택받지 못한 일차의료는 실패한다" 의료계가 본 '혁신'의 조건은?

홍완기 기자2025.12.17 17:10
17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토론회 전경 ⓒ의협신문
17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토론회 전경 ⓒ의협신문

보건복지부가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의 윤곽을 공개했지만, 의료계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해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과거 시범사업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행정 부담만 늘고,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의 선택을 이끌어낼 유인책과 재정 투입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보건복지부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의 추진 방향을 설명했다. 정부는 오는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범사업 최종안을 보고할 예정으로, 이 자리에서 세부 수가와 운영 모델이 공개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이번 시범사업이 또 하나의 선택받지 못한 제도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설계 단계부터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한국 일차의료의 현주소부터 짚었다. 한국의 일차의료가 이미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예방접종률, 만성질환 치료 성과, 회피 가능한 사망률 등에서 양호한 지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조명, 의료의 과제가 혁신이 아니라 개선임을 강조한 것이다.

시범사업에 사용된 혁신이라는 표현에 대해선 의료계를 개혁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경계했다.

이충형 의무이사는 정책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설계 단계부터 의료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수적이라며 상향식 논의 없이 위에서 내려온 제도는 현장의 저항과 무관심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강하게 문제 삼은 지점은 환자 유인책의 부재였다.

이 의무이사는 지역의료 문제의 절반은 환자가 지역에서 진료받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며 자유로운 의료 이용 구조 속에서 질 높은 일차의료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불필요한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줄이고 환자가 스스로 일차의료기관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유인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정 투입의 필요성도 반복해서 제기됐다. 정부가 지역 포괄 2차 종합병원 사업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기로 한 점을 언급하며, 일차의료 개선에도 이에 상응하는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이 의무이사는 일차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일차의료에 재정을 투입해 고가의 입원과 수술, 시설 중심 장기요양을 줄이는 것이 총 의료비 관리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 ⓒ의협신문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 ⓒ의협신문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은 시범사업이 장기화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했다.

계속 시범만 하면 안 된다며 주치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환자군에 따른 차등 보상과 위험도 조정 지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령복합질환 환자를 관리할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에서는 의사들이 해당 역할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며 노력한 만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차의료 지원체계의 리더십 문제를 짚었다. 기능적 일차의료 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2차 병원이나 거점기관 중심 구조로 설계될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이 종속될 수 있다는 현장의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강재헌 이사장은 지역의사회가 중심이 되어 교육, 인력, 정보 지원을 담당하고, 인구 소멸 지역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공공이나 2차 의료기관이 역할을 맡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보기술 인프라에 대한 우려 역시 나왔다. 일차의료기관 간, 그리고 상급 의료기관과의 EMR 연계가 미흡한 상황에서 성과 기반 보상과 자동 모니터링을 전제로 한 제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과거 만성질환 관리 사업에서 반복된 수기 보고와 행정 부담이 재현될 경우 사업 성공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노원구의사회장)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의료 공백을 언급하며 복지는 작동하는데 의료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고령 환자들이 여러 종합병원을 전전하는 구조에서 의원급 의료가 무너지면 필수의료 인력 양성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주치의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언급하며, 단골 의원단골 의사처럼 환자 친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제안했다.

성과 평가의 공정성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고위험복합 환자를 관리하는 의사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는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현호 기획부회장은 고위험군 관리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와 연구를 통해,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어려운 환자를 맡고 싶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방문진료와 만성질환 관리 사업 등 기존 제도와의 중복 참여를 허용하지 않으면 참여 저조라는 기존 시범사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전반의 발언은 공통적으로 과거 시범사업의 실패 경험을 상기시키는 데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다.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과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이 수년간 낮은 참여율에 머문 이유는 설계의 완성도가 아니라 이용자와 공급자의 선택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복잡한 구조와 과도한 규제를 줄이고, 보편적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단순한 모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 역시모두발언에서 지금도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 중인 여러 일차의료 사업들이 있다며 그럼에도 또다시 일차의료 혁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모형을 논의하는 이유는 기존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혈압당뇨 관리사업, 만성질환 관리제, 문재인 정부 시절 지역사회 일차의료 강화사업 등을 언급하며, 단순히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한계를 넘기 어렵다고도 진단했다.

김 의원은 이번 논의에는 절박함과 당위성, 다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깔려 있다며 과거에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 없이 성공은 없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도의료계 지적에 공감을 표했다.

권병기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정부 역시 현장 적용 가능성과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시범사업이 현장에서 의도한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3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범사업 최종안을 보고사항으로 상정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세부 수가와 운영 모델을 공개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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