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임신 10주' 낙태 처벌 놓고 정면충돌...의료현실 vs 생명보호 입법
임신 10주 이상의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를 임신 22주 이내로 규정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의료계와 정치권, 시민사회 간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8일 해당 법안들이 현대 산부인과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의사와 임신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위험한 입법이라며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법안을 대표발의한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임신 10주 기준이 의학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며, 태아 기형 선별 검사를 낙태 사유로 삼는 것은 우생학적 발상이라고 비판, 재반박 의견을 냈다.
문제가 된 법안은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이 지난 11월 7일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다.
형법 개정안은 임신 10주 이상의 여성에 대한 자기낙태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이에 맞춰 촉탁승낙 낙태죄와 의사 등의 낙태죄, 부동의 낙태죄 규정을 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여성이 낙태를 강요당하는 경우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 낙태를 유인권유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도 신설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를 임신 22주 이내로 설정하고,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를 명문화했다.
만 18세 이상의 경우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상담사실확인서만으로 수술이 가능하도록 했고, 미성년자의 경우에도 법정대리인의 부재나 학대 사실이 입증되면 동일한 절차를 허용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수술 거부권을 규정하고,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할 의료기관을 사전 지정해 지정기관 외 시술에 대해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조배숙 의원은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약물낙태 금지 기자회견을 열고 법 개정 없는 낙태약 도입을 강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조배숙 의원 발의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2020년까지 입법을 요구했음에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는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형법 개정도 없이 낙태약 도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것은 태아 생명보다 편의와 행정을 앞세운 위험한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의료윤리연구회, 프로라이프의사회, 법조계 인사와 시민단체 관계자, 산모 등이 참석해 약물낙태의 위험성과 법적 공백 문제를 지적했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은 경구용 낙태약을 태아의 생명을 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고위해 생명독성 약물로 규정하며 안전성 논란과 정신건강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준 변호사(인권수호변호사회 문화시민연대)는 법 개정 없는 낙태약 도입은 헌재 결정 취지를 거스르는 위헌적 행정이라며 태아 생명권과 부친의 권리를 동시에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한다며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임신 10주 기준이 의학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며, 태아 기형 선별 검사를 낙태 사유로 삼는 것은 우생학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태아를 보호의 대상으로 명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취지는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희제 프로라이프의사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낙태 논쟁의 본질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를 조화롭게 존중하는 기준을 찾는 데 있다며 어느 한쪽 입장을 전면 부정하는 극단적 주장은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다고 말했다.
임신 10주 기준에 대해 낙태 분야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평가받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제시한 임신 10주 이내 제한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며 2018년 낙태 실태조사에서도 임신 10주 이내 낙태 비율이 90%를 넘는 것으로 보고된 만큼 의학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진희 산부인과 의사 역시 대한의사협회의 최근 입장은 과거 산부인과 학계가 공식적으로 제시해온 기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임신 6주에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되고, 10주면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로,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이유로 생명 보호 기준에서 배제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의 직업적 양심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형 선별 검사는 낙태를 위한 관문이 아니라 치료와 돌봄을 준비하기 위한 진단 도구라며 태아를 보호 대상으로 명시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방향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협 임신 10주 이상 낙태 처벌, 의학적 현실 모르는 법안 법안 반대
대한의사협회는 개정안이 의료 현장의 복잡성과 고위험 임신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형사처벌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형법 개정안과 관련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임신 10주라는 기준은 태아 발달 단계와 진단 시기, 고위험 임신부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생리불순이 흔한 현대 여성의 특성상 임신 10주 이내에는 임신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 시점을 넘기면 합법적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산부인과 진료 현장에서 태아의 주요 기형을 선별하는 검사가 대부분 임신 10주 이후에 이뤄진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의협은 목덜미 투명대 검사(NT)가 11주부터 13주 6일 사이에 시행되고, 쿼드 검사와 통합 선별 검사는 15주에서 20주 사이, 정밀 초음파 검사는 20주 이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10주 이후의 임신중지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을 경우, 태아의 생존이 불가능하거나 심각한 기형이 발견돼도 의사는 법적 처벌을 우려해 시술을 거부할 수밖에 없고, 임신부는 의학적 판단에 따른 선택마저 범죄로 취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의협은 헌법재판소의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와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헌재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간으로 임신 22주 내외를 언급했는데, 이를 10주로 대폭 축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22주 역시 태아의 최소 생존 가능성을 고려한 기준일 뿐, 고위험 임신의 확진과 환자가족의 숙고 시간을 감안하면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태아를 심장박동이 확인되는 사람으로 정의한 조항은 현행 민법의 전부노출설과 충돌해 법체계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계류유산이나 불가피한 사산 과정에서 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씌울 위험한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인공임신중절수술 지정의료기관 제도는 이미 국가 면허를 받은 산부인과 전문의를 행정적 지정 여부에 따라 처벌 대상으로 만들 수 있어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의협은 지정 의료기관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환자 접근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음성적 불법 시술을 조장해 여성의 건강권을 해칠 수 있다며 낙태죄 처벌 강화보다는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피임 교육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 임신 유지와 출산을 지원하는 제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법과 제도는 편의나 이념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며 합리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전문가 단체와의 충분한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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