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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운명, 목마름, 찬미…"핫핑크로 치장한 설렘"

이영재 기자2025.12.07 09:41
한국의사시인회는 6일 저녁 인사동 옥정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어, 한 해 동안의 시작활동을 돌아보고 서로의 시적 사유를 공유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윤태원 시인, 김연종 시인, 손경선 시인, 박권수 시인, 주영만 시인, 서화 시인, 유담 시인, 서홍관 시인, 송명숙 시인.

시를 쓰는 의사들에게 시는 어떤 의미일까. 시인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세상과의 소통에 나서는 시와 시인은 어느 곳, 누구에게 향하고 있을까.

한국의사시인회는 6일 저녁 인사동 옥정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어, 한 해 동안의 시작활동을 돌아보고 서로의 시적 사유를 공유했다. 서홍관 시인(전 국립암센터 원장)은 특별강연을 통해 민중시인에서 국민시인이 된 신경림을 주제로 신경림 선생의 시와 생애를 살폈다.

서화 회장(부천시민의원)은 의사시인들은 늘 문학과 의학의 경계에서 씨를 쓰고 글을 써왔다. 의학과 문학이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통섭(通涉)에도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라면서 우리 인생도, 삶도 높게만 오를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전했다.

의사시인회 동인들은 올해 먼저 열 세번째 공동사화집 무등산 나무의사(6월)를 상재했으며, 유담 시인(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 의사 최초 문인 김대봉 학술세미나(4월)을 열었다. 단독 시집으로는 이원로 시인이 바람개비(조선문학사3월) 등 여러 편을 발간했으며, 김세영 시인 별빛의 화법(상징학연구소5월), 주영만 시인 진찰(천년의 시작7월), 김연종 시인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황금알11월) 등이 출간됐다.

시인들에게 시는 운명이다. 목마름이다. 찬미다.

다른 듯 같은, 여러 갈랫길인 듯 한 길인, 중간은 생략해도 어디쯤인지 아는 듯한 시인들의 소통이 이어진다. 시인들의 시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는 돌고돌아 다시 만난다.

꿈인지 환상인지, 손으로 밀면 파랗게 휘는 하늘처럼.(서화 시인)

어김없는 겨울, 동백의 주춤거림을 헤아려.(유담 시인)

이 봄날, 제비꽃과 조팝나무꽃과 냉이와 꽃다지가 사방천지에 가득하다, 나는 매일 산과 들을 걷는다.(서홍관 시인)

햇빛 찬란한 봄의 난간을 조심해야 한다.(김연종 시인내과전문의)

고요에 깊숙이 잠기어 그 고요 너머의 그 바깥에, 그 바깥에 가닿고 싶었다.(주영만 시인우리내과의원)

사람이 사람인 것은 서로 외롭고 서로 다르기에 사람이다.(손경선 시인내과전문의)

벚꽃 지는 날, 괜찮아 저렇게 날리는 건 다 근심이야.(박권수 시인나라정신건강의학과의원)

기지개로 웃자란 개나리와 핫핑크로 치장한 설렘, 하이힐로 높아진 시심으로.(송명숙 시인아이편한 소아청소년과의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문학을 추구한다.(윤태원 시인)

한국의사시인회는 6일 저녁 인사동 옥정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어, 한 해 동안의 시작활동을 돌아보고 서로의 시적 사유를 공유했다.
한국의사시인회는 6일 저녁 인사동 옥정에서 2025년 정기총회를 열어, 한 해 동안의 시작활동을 돌아보고 서로의 시적 사유를 공유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시인의 마음도 고스란히 새겨진다.

새 생명을 바라보듯 파릇하게 다가온 희망을 사유라는 틀로 시를 쓴다.(박세영 시인박내과의원)

그럼에도 존재를 알게 되는 달처럼 길을 지켜내는 시(詩)여!(한현수 시인야베스가정의학과의원)

사람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나도 저렇게 보이겠지.(홍지헌 시인연세이비인후과의원)

다시 강물이 넘쳐 흐를 것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하고서, 와디의 목마름을 견딜 수 있다.(김세영 시인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마음을 담고 보면 모두가 사랑이다. 세상도 또한 마음을 담아 살필 일이다.(최예환 시인제일의원)

우리는 오욕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고, 밥을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도 중요하겠다.(김호준 시인참다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낮은 산은 있어도 쉬운 산은 없다.(김완 시인혈심내과의원)

무의식이 시어들을 쏟아낼 때 좋은 시들이 지어진다.(김경수 시인김경수내과의원)

무심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소멸해갈 수밖에 없는 내가슴죽음 뒤에 마주칠 새로운 생을 위해 두 손을 모은다.(박언휘 시인박언휘종합내과의원)

시는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강 어느 한 순간 기억들의 작은 파편들이다.(정의홍 시인솔빛안과의원)

예전의 나는, 아니 세상은 지워져가고 있고, 백지가 되어가고 있다.(김승기 시인김신경정신과의원)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나는 시를 쓰고 부대끼며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는 시인.(김기준 시인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일상 우리가 평범하게 숨쉬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조광현 시인인제대 명예교수)

사별(死別)의 거리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 먼 산 바라보다 높푸른 하늘 쳐다보네.(권주원 시인권내과의원)

기둥이 있는 것은 쓰러진다. 믿음과 신념의 기둥도 쓰러진다. 쓰러지는 운명의 그림자들!(송세헌 시인중앙의원)

서홍관 시인은 민중시인에서 국민시인이 된 신경림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서홍관 시인과 신경림 선생의 인연은 남다르다. 의대 본과생 때 시작된 인연은 선생이 폐암으로 투병하던 마지막 길을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지켰다.

강연에서는 신경림 선생의 출생부터, 초중고교 시절, 한국전쟁, 대학시절, 결혼, 첫 시집 농무 출간, 군부독재 저항, 민요민담에 대한 조예애정, 베스트셀러 시인을 찾아서, 대장암폐암 투병과 돌아가실 때까지 시간을 좇으며 선생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민중시인에서 국민시인이 되신 신경림 선생의 삶을 반추했다.

신경림 선생이 돌아가시 전 병상에서 쓴 시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신경림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
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
늙은이가 아름답다

돋는 해를 향해 활짝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
햇빛이 싫어 굴 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이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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