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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플 플러스

고교생 사망 사건의 본질: 응급실 탓하기 전에 시스템 고쳐야

손문호 대한의사협회 KMA폴리시 특별위원2025.11.20 14:21
ⓒ의협신문
ⓒ의협신문

부산에서 발생한 고교생 사망 사건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다섯 개 병원이 이송을 연달아 거부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의료진의 책임 회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핵심은 의료진의 태만이 아니라 소방병원사법체계가 연결되는 응급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다.

사건의 출발점은 환자의 상태에 대한 초기 분류(triage, 트리아지) 오류였다. 구급대는 환자를 소아신경과 전문 진료가 필요한 환자로 판단해 여러 병원에 동일하게 접촉했다. 그러나 실제 임상적 판단은 전혀 달랐다. 추락으로 발생한 중증 외상이 우선 고려되어야 했으며, 이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즉각적인 외상 처치와 신경외과의 1차적 개입이 필요한 범주였다. 단순 경련에 대한 소아신경과 진료 요청으로 왜곡된 상황 자체가, 초기 triage에서 발생한 연쇄적 오류의 결정판이었다.

Triage는 응급현장과 응급실에서 환자의 생리적 상태와 손상 정도를 평가해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절차다. 외상인지, 신경계 문제인지, 심혈관 문제인지, 즉각적 처치가 필요한지, 전문센터로 이송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환자의 생존 가능성과 직결된다. 정확한 triage는 생명을 살리지만, 잘못된 triage는 치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병원의 대응 자체를 왜곡한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다.

필자는 과거 응급구조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응급구조사 교육을 지도했고, 동시에 정형외과학 교육도 수년간 진행해왔다. 이 경험을 통해 볼 때, 현행 응급구조사 교육체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응급구조학은 4년 과정이지만 해부학생리학병리학 등 기초의학 교육의 깊이는 제한적이고, 실제 환자를 다루는 임상훈련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중증 외상 분류나 신경학적 손상 판단은 강의와 교과서만으로는 부족하며, 현장의 변수와 임상적 뉘앙스를 반복 경험하지 않고는 체화될 수 없다.

그런 교육 현실 속에서 중증도 판단 전문과 선택 최종 이송 결정이라는 막중한 triage 책임을 응급구조사 개인에게 전적으로 부과하는 현재의 구조는 현실적이지 않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triage 오류 역시,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허용하는 역할과 책임의 범위가 이미 한계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젊은 환자소아산모 환자의 배상금 규모는 10억~15억 원에 달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이며, 의료진에게 극단적 방어적 진료를 강요한다. 특히 전공과 외 진료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 혹시 이 진료가 나중에 형사민사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즉각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병원들의 판단은 단순한 거절 의사표시가 아니라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생존형 방어적 판단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원에 수용 의무만 강화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법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처벌과 규제로 필수의료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응급실 폐쇄, 필수의료 인력 이탈이라는 역효과만 키울 뿐이다. 환자를 밀어 넣는 법보다, 의료진이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현실적 해법을 두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구급대원의 응급실 의무 근무제 도입
구급차를 운행하는 소방관응급구조사가 중증 외상 환자의 흐름, 진료과별 우선순위, 응급실의 실제 작동 방식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병원과 소방은 절대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 구급대원이 1년간 응급센터에서 실제 근무하도록 하면 triage 오류 감소, 외상신경정형 환자 분류 정확도 증가, 소방병원 간 소통 체계 강화가 가능하다. 이는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이며 우리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2) 구급대 이송 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제 도입
초기 triage와 이송은 국가 시스템이 설계하고 운영하는 절차다. 그럼에도 결과 책임은 의료진 개인이 10억~20억 원씩 떠안는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구급대가 이송한 환자에 대해 중과실을 제외하고 국가지자체가 일차적 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면 병원은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 이른바 리스크 셰어링(risk-sharing)의 관점에서 필수의료 분야만큼은 국가가 더 많은 위험을 떠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문제는 의사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번 고교생 사망 사건은 의료진의 무책임이 아니라 부정확한 triage 법적 리스크를 피하려는 방어적 거절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겹쳐 만든 구조적 실패였다. 필수의료는 의료진의 희생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소방병원국가가 위험을 공유하고(risk-sharing), triage부터 사법 리스크까지 연결된 전체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이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손대야 할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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