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플 플러스
40년 만의 쾌거 '한국인' 세계의사회장 "의협이 보여준 신뢰 반영 결과"
전세계 의사를 대표하는 수장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박정율 국제협력위원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외과)이 그 주인공이다. 박정율 위원장은 지난달 8~11일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열린 제76차 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당선됐다. 1985년 문태준 전 의협 회장 이후 40년 만의 쾌거다.
WMA는 전 세계 118개국 의사 중앙단체를 회원으로 하는 독립된 국제 비정규기구로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연합(UN)과 함께 3대 기구에 속한다. WMA는 회원국의 회비,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만큼 독립성과 자주성, 자율성을 지키고 있다.
박정율 위원장의 WMA 회장 당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2019년 4월부터 4년 동안 WMA 재정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재정 및 전략 운영에 힘써왔다. 이후에는 이사회에 속한 30개국의 만장일치로 의장으로 선출 올해 4월까지 의료윤리, 공공보건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해 각국 의사회가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박 위원장은 가자와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전쟁에서 의료인의 안전과 인도주의적 의료제공, 신장 위구르 지역 등에서 분쟁 관련 의료윤리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다뤄지면서 회원국 입장 차이가 특히 컸다라며 그 과정에서 끈기를 갖고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의료윤리의 보편적 가치가 지켜질 수 있도록 중재하고 조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경험은 올해 10월 회장 당선으로 이어졌다. 회장직은 차기 회장, 현 회장, 직전 회장까지 회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3년 동안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
회장 당선 직후 앞서 세계의사회장을 지냈던 문태준 전 회장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박정율 위원장. 그는 고 문태준 회장은 한국 의료계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라며 WMA 회장 당선은 개인의 역량도 있었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의협이 보여준 역할과 신뢰 등의 내용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의사회장으로서 의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존중받는 환경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힘을 쏟으려고 한다라며 동시에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널리 알리고 공동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보건의료 불평등, 기후 변화, 고령화, 의료인력 부족 같은 전 지구적 과제에 대해 회원국과 협력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천적 정책 제안을 제시하는 조직으로 WMA를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정율 WMA 차기 회장과의 일문일답.
10월 8~11일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열린 세계의사회 제76차 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당선 소감 부탁드립니다.
매우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영광은 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대한의사협회와 우리나라 의사들이 세계의사회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세계의사회가 직면한 여러 글로벌 보건의료 과제에 대해 회원국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의료의 미래에 대해서도 적극 대비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한국 의료가 가진 높은 수준의 역량과 경험을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한국의 의료 현안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감하고 공동적으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의사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세계의사회는 1947년 9월 17일 27개국의 의사 대표들이 파리에서 열린 제1차 총회를 통해 전 세계 의사를 대표하는 유일한 비영리, 독립적인 국제민간의사중앙기구입니다. 2025년 현재 118개국 의사회가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2024년 기준 최소 1100만명 이상의 의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WMA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의사의 전문적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 의료행위와 의과학 연구, 그리고 의학교육 전반에 걸친 국제 윤리 기준과 지침,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전세계 의료계의 합의된 입장으로 채택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도입하고 반영하도록 중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사회는 그동안 의학윤리의 근간이 되는 여러 선언도 제정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제네바선언이 있는데 의사의 윤리적 서약인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한 문서로 의사가 인류 복지와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임상 연구의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헬싱키 선언, 어떤 상황에서도 고문이나 비인도적 행위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도쿄선언 등이 있습니다.
최근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AI 개발과 정밀의학, 표적치료를 통한 사람 중심의 치료, 팬데믹(pandemic) 발생시 백신 등 치료제의 공평한 분배와 제공 등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에 대해 시의적절한 필수 정책 개발과 적정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계의사회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에서 의협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관련 의협 입장 지지 성명서 ▲2022년 간호단독법에 대한 지지 성명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지지 성명서를 이끌어내기까지 어떤 노력들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현재도 여러 의료 현안에 직면해 있습니다. 2021년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2022년의 간호단독법 문제, 그리고 최근 의대 정원 확대 이슈까지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세계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나 영상 메시지를 발표해 주었습니다.
CCTV 법안과 간호단독법 관련 지지 영상은 WMA 행사 기간 중 갑작스럽게 의협 연락을 받았습니다. WMA 측과 사전 조율이 없었던 상황이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협회의 현안이 매우 긴급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WMA 임원을 접촉해 지지 영상을 요청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사전에 양해가 구해지지 않아서 부담스러운 요청이라고 생각 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인지도 덕분에 WMA 회장과 사무총장이 흔쾌히 응해줬고 지지 성명서와 더불어 영상까지 새벽 시간임에도 제작해 줘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WMA에서 지속적인 활동과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이는 단순 요청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협 대표단이 세계의사회 이사회와 총회에 꾸준히 참여해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진심으로 전달하고 회원국 대표들과 신뢰와 공감대를 쌓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사회는 각국의 현안에 관심을 갖고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만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 사람 간의 신뢰와 관계의 지속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협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국제무대에 참여하며 그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주요 현안에서 지지 성명서와 영상 발표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대한의사협회가 국제 활동을 어떻게 이어 나가면 좋을까요?
고(故) 문태준 회장님이 세계의사회장을 하던 시점에는 의협 회원의 국제협력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관심, 무엇보다 활동이 더욱더 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 현안으로 의협 내부에서도 국제활동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관계는 연속성과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동안 의협이 국제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왔기에 주요 현안이 발생했을 때 세계의사회나 각국 의사회로부터 신속한 지지 성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이전 못지않게 회복하고 신뢰를 얻고 있다고 믿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인력과 예산을 체계적으로 확보해 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의사회 안에서도 주요 임원직을 지속적으로 맡으며 자국 의사회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의협 역시 단기적인 실익보다는 장기적이고 미래전략적인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회 전반이 더욱 글로벌화 됨에 따라 젊은 의사들 중 해외로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국의 의료제도와 정책, 의료 인력 현황 등 외국에서 얻어야 할 정보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의협은 국제협력 역량을 보다 전문적으로 강화하고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에는 한 우물을 파라고 스승님들이 강조했습니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와 조언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 되는 것은 쉽지 않고 된다 해도 예전과 달이 금방 추월당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제2의 기회(second chance)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짧은 인생에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의외로 본인에게 흥미와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본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의사로서의 소명감과 보람도 중요하지만 젊은 의사 시절부터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교육, 의료, 봉사, 사법, 경제, 문화,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인턴십과 자원봉사활동을 통한 경험을 하고 리더십을 고취할 기회를 얻으면서 폭넓고 깊이 있는 삶을 터득합니다.
힘들고 바쁜 일과 속에서 최고의 의사가 되시고 아울러 틈을 내서 100세 이상까지 신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체력을 단련하고 어학을 비롯 다른 분야에서 한 가지 이상의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길러보면서 다양한 취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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